조선일보가 지난 19일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에 최소 15군데의 왜곡이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언론보도 진상’이란 자료를 내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새누리당이 지난 16일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검찰의 수사결과 왜곡을 주장한지 3일 뒤인 19일 조선일보는 “검찰이 수사결과와 함께 공개한 CCTV영상 발췌 자료가 실제 원본과 상당부분 차이가 있다”며 “검찰이 분석관들의 발언 내용을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는 쪽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과장하거나 심지어 해당 문맥에서 나오지 않은 발언을 임의로 붙여넣기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CCTV영상은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6일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의 댓글 중 문재인 후보 비방 댓글은 없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127시간 동안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증거분석관들이 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삭제된 파일을 복구하는 작업 등을 촬영한 것이다. 이 영상은 경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수사의 축소·은폐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국정원 사건의 본질 대신 검찰수사결과 발표문에 나오는 세부 문구의 의도적 생략 또는 삽입 등을 주장하며 검찰이 경찰 분석관들의 동영상 내용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8월 19일자 1면 기사.
 
조선일보는 먼저 “검찰은 ‘노다지’라는 말과, 보도가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을 연달아 한 것처럼 발표해 증거를 상당수 발견했다는 뜻으로 오인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발표문에 나온 “대박 노다지를 발견했다”, “이거는 언론 보도에는 안 나가야 할 거 아냐”라는 분석관들의 대화 사이에는 “다 북한 핵실험 이런 글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북한 쪽이 아니라 선거 관련된 게 있냐는 거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조선일보가 삭제됐다고 주장하는 내용 중 ‘북한 로켓’, ‘선거 관련’ 등 문맥상 중요 표현은 이미 수사결과 자료에 나와 있다. 조선일보가 보도하며 오히려 이를 삭제했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가 왜곡을 지적한다면서 검찰이 ‘선거 관련’ 등 은폐 정황을 보여주는 표현이 포함된 검찰 자료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또한 “서울청 분석관들은 국정원 직원이 트위터에 접속한 기록을 찾았지만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대화를 했다. 그러나 검찰자료만 보면 국정원 여직원이 트위터에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오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도표에서 이 대목을 설명하며 “국정원이 SNS활동을 벌인 것처럼 오인 소지 있음”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서도 검찰은 “녹취 내용을 그대로 표현했으며, 국정원도 별도의 트위터 조직을 활용했다는 것을 시인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6월 14일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자료에는 국정원이 트위터를 활용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이 묘사됐다. “이것 다 트위터 같아요. 저것.”(분석관 1) “게시하는 것 아니에요? 우파글을. 우파 글을 만들어서 게시. 아까 그 MB 그것도 자기들 어디서 만들면 게시하는 사람들이 필요 하잖아요.”(분석관2)

   
▲ 조선일보.
 
더욱이 조선일보는 검찰 수사결과 발표문 중 “경찰이 ‘Got it’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지만, 검찰은 “‘Got it’이라고 발언한 사실은 2012년 12월15일 오후 7시15분 이후 4실 동영상에서 확인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부분은 국회 청문회에 과정에서도 존재가 확인돼 방송까지 됐다.

이밖에 조선일보는 국정원 직원 김 씨의 컴퓨터에서 텍스트 파일을 찾고 김씨의 닉네임을 확인한 15일 오전 4시께의 상황이 담긴 수사결과 발표문에 대해서도 “경찰이 발견한 닉네임은 컴퓨터에서 발견한 것인데, 검찰은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서 활동한 닉네임인 것처럼 오인할 소지가 있게 했다”고 검찰 발표를 비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도 “해당 아이디로 인터넷에서 활동했다는 표현은 없으나 해당 아이디로 인터넷에서 활동했다는 추론은 가능하다”고 전한 뒤 “경찰 분석관들은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에서 아이디와 닉네임이 기록된 메모장을 발견하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 사용한 닉네임을 확인하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하지 않고 은폐했기 때문에 김용판 전 서울청장이 기소된 것”이라 덧붙였다.

조선일보가 왜곡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부분들은 검찰의 반박과 실제 동영상의 내용을 비교해 보았을 때, 수사결과의 핵심인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경찰의 수사결과 은폐·왜곡을 뒤집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일보가 의도적 생략으로 본말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보도내용들로 보인다.

이 같은 조선일보의 보도를 두고 검찰 관계자는 “검찰에 충분히 사실 확인을 한 뒤 보도했으면 오보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유감이다. 중요하지 않은 몇 부분을 갖고 조선일보가 트집을 잡고 있다. 지엽적인 것을 넘어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강훈 조선일보 사회부 법조팀장은 “검찰 측 주장에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무리한 ‘검찰수사 비판’, 목적은 촛불 끄기?

조선일보의 검찰수사 왜곡보도 논란은 수사결과 발표시점부터 예고된 것

조선일보는 수사결과가 발표된 지난 6월 14일부터 수사결과를 축소·왜곡하려 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수사보고서를 입수해 “지난해 대선에서 정치 개입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작성한 댓글은 모두 1760개이며 이 중 선거개입에 관여한 글이 60여개에 불과하고 글의 내용도 대북문제에 집중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정원 직원이 올린 전체 글 중에 3.8% 정도가 대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67개 글 중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실명거론하며 비판한 글은 각각 3건이다”라고 보도한 뒤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 혐의를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황교안 법무장관과 일부 공안 검사들의 판단”이라고도 전했다.

   
▲ 조선일보 6월 14일자 기사.
 
하지만 검찰이 대선개입과 정치관여죄로 기소한 댓글은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70여명이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열심히 삭제하고 남은 것들 중 위법한 게시 글 2000여개를 골라 그중 공소시효가 남은 73개와 찬반클릭 1800여개만을 선정한 것이다. 더욱이 경찰의 증거 은폐·조작 과정 이미 CCTV로 드러난 상황이지만 조선일보 지면에선 이 같은 내용을 찾기 어렵다.

6월 17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원 수사를 맡았던 주임 검사가 운동권 출신”이라며 해묵은 색깔론을 펼칠 당시에도 조선일보는 기자수첩을 통해 “검사로 임관한 뒤까지 정치성 짙은 단체에 꼬박꼬박 후원금을 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 ‘운동권 출신 검사’ 문제는 수사팀을 꾸릴 때부터 논란의 씨앗을 뿌려 놓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이처럼 검찰수사를 무리하게 비판해온 배경은 무엇일까. 경찰은 대통령 선거 직전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선거개입 사실을 축소·은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용판 전 서울청장을 공직선거법·형법상 직권남용·경찰공무원법 등의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선거법 위반·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원세훈·김용판에 대한 기소를 기점으로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국민들의 촛불은 거세졌다.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도 늘어났다. 때문에 촛불을 끄고 현 정부를 유지하려는 세력의 입장에선 현재 국정원·정부 규탄의 합리적 근거가 되는 검찰 수사 결과를 무너뜨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검찰 기자실 내에서는 “수사에 김을 빼려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검찰수사 보도태도를 두고 정청래 국정조사특위 민주당 간사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법정에서 확정되면 사실상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은 흔들리게 된다. 보수언론은 박근혜정부의 인사 난맥이나 정책적 부분은 비판할 수 있지만 이 문제만큼은 잘못된 것이라도 어떻게든 정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간사는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다. 언론인들이 권은희 수사과장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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