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벌어졌던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에 대한 광고 불매 운동이 이들 언론사에 대한 업무방해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애초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은 1심과 2심에서 신문사와 광고주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광고주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만 적용해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안승호 부장판사)는 13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언소주 회원 14명의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대법원이 언소주의 불매운동이 신문사들에 대한 업무방해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낸 지 5개월 만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들이 광고주 기업들에 수차례 전화를 하는 등의 기업들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이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직접 상대방(신문사)이 아닌 제3자라 볼 수 있는 광고주들에게 압박을 가해 광고주의 의사결정권, 영업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다.

이번 판결에 따라 언소주 개설자 이태봉씨는 징역 10개월에서 8개월 감형되었고(집행유예 2년) 양재일 언소주 사무총장 등 6명은 벌금 300만원에서 각각 200만원으로 감형됐다. 또 회원 김아무개씨 등 4명은 벌금 2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감형되고, 나머지 3명은 100만원에서 각각 벌금 70만원으로 감형됐다.

   
▲ 양재일 언소주 사무총장은 지난해 4월 30일, 총선 시기 조선일보 무료배포를 규탄하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방상훈 사장 등을 고발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에 따라 2008년 시작된 언소주의 광고불매운동 사건이 일단락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2008년 불매운동으로 2개월간 수감생활까지 했던 양재일(46) 언소주 사무총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양 사무총장은 업무방해 혐의로 2008년 8월 21일 수감돼 그 해 10월 21일에 보석 석방됐다.

“참 긴 5년 이었다” 양 사무총장은 19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입을 뗐다. 2008년 카페에 가입하고 광고불매운동에 처음 참여했을 때 그는 지금 상황은 상상도 못했다. 그는 한평생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포털은 네이버만 이용하고, 아침에 한의원으로 출근해 저녁이면 초등학생 2학년 딸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한창이던 6월, 우연히 네이버와 다음의 메인화면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다음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아고라에서 조중동 광고주 목록 리스트를 보고 퍼나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방통위가 광고주 목록 리스트 게시글을 규제하자 그는 방통위의 권한이 미칠 수 없는 ‘구글’에 광고주 목록을 올렸다. 국내 사이트가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 그의 글을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재판부는 이를 “불법적인 상황이 계속되게 하는 등 사건 범행이 확대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고 판단했고, 이는 구속수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군대 제대하고 나서도 종종 군대 가는 꿈을 꾸는데, 수감될 때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서 “제일 답답한 게 가족들이다. 특히 어린 딸... 딸은 아빠가 왜 안 오는지도 모르고 설명하기도 어렵다”면서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구속될만한 사안도 안 되는데 불매운동으로 가뒀다는 자체가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양재일 언소주 사무총장이 19일 서울 서대문구 언소주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 이하늬 기자
 
실제로 언소주 사건은 소비자 불매운동이 형사처벌을 받은 국내 최초의 사건이다. 2000년 가수 서태지 팬들이 SBS <한밤의 TV연예> 광고주 불매운동을, 2005년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이 MBC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였지만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풋힐타임즈> 사건이 언소주와 유사한 사례다. 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환경단체는 보수 성향의 <풋힐타임즈>의 편파적 논조와 왜곡보도에 항의하면서, <풋힐타임즈>에 광고를 하는 기업을 압박했다. 소비자들의 호응으로 이 신문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영업방해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양 사무국장은 “불매운동은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돈으로 하는 투표행위”라면서 “기업의 도덕적이고 도의적인 책임은 법적으로 따질 수가 없는데, 불매운동으로 기업의 정책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비폭력 운동이다, 자유경쟁체제에서도 이상적인 수단”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판결을 ‘절반의 승리’라고 말했다. 신문사에 대한 업무방해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광고주에 대한 업무방해는 여전히 유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대 언론, 기업과의 싸움에서 비긴 것은 곧 이긴 것이라는 격려도 듣지만, 그는 “아쉽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이번 판결이 앞으로 소비자 불매운동 표본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양 사무국장은 “언론사들이 광고에 의존을 많이 하는데, 기업이 언론사에 돈을 대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그래서 언론사에 문제가 있을 때 기업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언론에서 왜곡보도 허위보도를 했을 때, 기업에게도 영향이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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