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8월 19일자 <수지 좋아하면 좌파? 크레용팝 팬이면 우파?> 기사에서 “어느 연예인을 좋아하고 싫어하느냐에 따라 좌빨(좌파 빨갱이)·일베충(일베 회원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욕을 먹기 십상이다”라고 보도했다. 이 문장만 봐서는 좌우를 떠나 특정연예인에 대한 호불호로 정치적 성향을 결정짓는 세태에 대한 분석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기사는 시종일관 일베 회원에 대한 여론의 뭇매를 반박하고 있다. 우선 리드 문장에서 일베충의 경우 ‘일베 회원을 비하하는 말’이라 설명했지만, 좌빨에 대해선 어떤 설명도 없다. ‘좌빨’이란 단어는 정치·자본 권력을 비판하는 이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 기사의 부제는 ‘청소년 사이에 번지는 색깔 논쟁’인데, 정작 기사에선 논쟁이 드러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인터넷에는 유독 수지를 싫어하고 크레용팝을 좋아하면 일베라는 식의 일베 확인 요령까지 나돌고 있다”며 일베 회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뒤 “일베 용어는 한 번만 써도 곧바로 공격 대상이 된다. ‘민주화’란 말을 원래 뜻과는 달리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화함’ ‘소수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함’이라는 뜻으로 쓰면 ‘일베’라는 낙인이 찍힌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25면 기사. | ||
일베에서 공유되는 가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그들을 설득하려 할 때 일베는 “민주화하려고 한다”는 표현을 쓴다. 일베에선 특정 글의 내용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민주화’란 이름의 버튼을 누른다. 회원 일부는 ‘바보처럼 당했다’는 의미를 전할 때도 ‘민주화 당했다’는 표현을 이용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민주화’란 단어의 상징적 의미를 붕괴시킨 것이다.
권위주의의 반댓말인 민주주의를 권위주의에 등치시킨 결과 많은 언론이 일베를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같은 배경 설명은 전혀 없이 일베 용어를 쓰면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다며 그들을 이념대립에 의한 희생양인 양 묘사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한 청소년은 네이버 지식iN에 올린 글에서 ‘저희 반 친구 중에 일베하는 걸 들켜서 왕따 당하는 애들이 있는데…. 왜 일베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때리고 뺏고 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이 신문은 이어 조규익 숭실대 국문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우리 사회에서 이념의 틀이 전 세대에 걸쳐 고착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기사를 관통하는 전제는 결국 “이념대립은 나쁘다”는 이데올로기이며, 이념대립의 결과로 일베 회원에게 무조건적인 부정적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한국은 반공이데올로기의 결과 정치의 표출이 봉쇄당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익의 담론은 과잉·왜곡되었으며, 좌익의 담론은 억압·검열되고 있다. 일베 현상과 일베를 둘러싼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같은 한국 사회 정치지형의 특수성을 우선 전제해야하지만 기사에는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현대사 왜곡·독재 찬양 등 일베를 비판하는 다양한 논거 역시 기사에선 모두 생략됐다.
▲ TV조선 19일자 '뉴스7'의 화면 갈무리. | ||
TV조선은 19일 <뉴스7>에서 신문기사와 같은 내용을 전하며 “우파·좌파가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비판받아야 하는지 내용도 잘 모르는 가운데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이미 색깔 논쟁, 즉 편 가르기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 같은 사고가 왜 벌써 청소년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지 어른들이 한 번 생각해 봐야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일베 회원에 대한 ‘낙인’을 비판하기에 앞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