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의 외부필진인 김성구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을 통해 '강신준 교수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연재된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해 비판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자본을 읽다'의 필자인 강신준 교수가 김성구 교수의 비판글을 반박하는 '경향신문 연재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글'을 미디어오늘에 보내와 게재하였습니다. 이후 강 교수의 반박글이 게재된 후 다시 김성구 교수가 반박에 대한 재반박글을 보내왔고 다시 강신준 교수가 재반박글에 대한 반론을 보내, 게재 했습니다. 또 다시 김성구 교수가 강 교수의 재반박글에 대한 반론을 보내와 싣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경제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전세계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인 맑스주의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두 노장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자본론 해석에 대한 학문적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며 두 경제학자의 논쟁을 지면을 통해 이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논쟁 글 순서>
1. 강신준 교수의 이상한 자본론 강의
2. 경향신문 연재 ‘오늘 자본을 읽다’에 대한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글
3. 강신준 교수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4. 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두 번째 답글

강신준 교수는 두 번째 답글(‘김성구 교수의 비판에 대한 두 번째 답글’)에서 내가 재반론을 통해 비판한 <자본> 곡해의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쟁점을 수정주의·교조주의 문제로 이동시켰고, 엉뚱하게도 생산적 논쟁을 제안한다며 실천영역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더구나 경향신문(2013. 8. 6)에서 이 논쟁을 기사화하면서 ‘수정주의·교조주의 논쟁 재현’이라는 제목을 붙여 쟁점의 왜곡을 부추겼는데, 이는 물론 담당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강 교수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었다. 경향신문이니까 <자본> 해설자로서의 강 교수의 특권이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강 교수와의 논쟁의 핵심은 수정주의·교조주의 문제가 아니라 강 교수에 의한 <자본> 곡해의 문제였다. 맑스가 강 교수의 주장처럼 자본주의의 변혁이 아니라 개혁을 위해 <자본>을 집필했는가, 변혁과 개혁이 같은 개념인가, 또 봉건제가 착취체제인가, 맑스가 봉건제를 착취체제로 보았는가 하는 문제가 수정주의나 교조주의의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는 다만 사실관계의 확인 문제 즉 왜곡과 날조 여하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수정주의를 거론했던 것은 이들 문제에 대한 강 교수의 주장이 수정주의자들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수준이었지 강 교수의 수정주의를 쟁점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쟁점의 왜곡과 이동은 논쟁에 대한 강 교수의 이해부족을 보여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쟁점을 피해가고자 하는 강 교수의 꼼수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강 교수는 <자본> 곡해와 관련된 해결되지 않은 쟁점들을 그대로 두면서 새로 수정주의 쟁점을 또 제기했는데, 여기서도 강 교수는 맑스 이론의 왜곡과 날조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강 교수가 입을 열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왜곡과 날조가 끊이지 않는다. 이 상습적인 날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지 강 교수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원래의 쟁점은 아니었지만, 지난 글에서 강 교수가 새로 제기한 쟁점들, 수정주의 문제와 실천문제도 아래에서 검토해보도록 한다.
 
1. 지금까지 논의의 중간정리에 대하여

강 교수는 내 재반론 글에서 변증법의 긍정적 이해와 부정이 어떻게 관련되어있는지 설명되어있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그 글에서 자본주의하에서의 사회화의 발전과, 자본주의적 사회화의 사회주의적 사회화로의 전화에 대해 이미 설명을 했는데도 말이다. 강 교수의 이해가 부족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시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강 교수의 이해력을 이유 없이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강 교수는 ‘수정주의’ 딱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지금까지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처음 글에서 강 교수의 수정주의를 지적하면서 쓴 문장은 이러하였다.

베른슈타인 같은 대표적인 수정주의자들이 19세기 말이래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를 배경으로 유물론과 변증법으로부터 <자본>의 경제법칙들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경로에 이르기까지 맑스 이론에 오류가 있다면서 그 이론적 수정을 시도했다면, 강 교수는 유물론과 변증법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이행경로를 수정주의로 각색하면서도 이게 수정이 아니라 원래 맑스의 이론이 그러한 것이라고 곡해하는 것이다.

즉, 강 교수는 맑스의 이론을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원래의 맑스의 이론이 수정주의자들의 견해와 같은 것처럼 그렇게 강 교수가 맑스의 이론을 해석, 각색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변 글에서 강 교수는 자신은 맑스의 이론을 수정한 일이 없고 변혁의 목표를 밝히고 있는데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을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한 재반론 글에서 강 교수가 맑스의 이론을 수정했다고 내가 말한 적이 없고, 강 교수가 맑스의 이론을 수정하지 않고서도 맑스의 이론을 수정주의적으로 각색했다고 하면서 위의 문장을 인용해주었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 강 교수는 어이없게도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곧바로 수정주의인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에 대해 수정주의적 색채를 입히려 하였다고 한 발 물러섰는데(같은 말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한 까닭은 내가 지난번에 정의한 수정주의 개념 때문인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인가? 두 번씩이나 내가 이미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 이렇다. 자신이 맑스의 이론을 수정하지 않았음을 내가 이제 인정(?)하고 한 발 물러선(?) 게 강 교수가 나한테 가르쳐준(?) 수정주의 개념 때문이라고. 이 정도면 강 교수의 이해력은 중학교 수준의 학생만도 못한 것이다. 내가 또 한 번 해명을 해야 하나?

강 교수는 논쟁을 중간 정리한다면서 내가 제기한 <자본> 곡해 비판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고 이건 수정주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며 쟁점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앞서 말한 바처럼 맑스의  <자본> 집필 동기가 변혁을 위한 것이었는지 개혁을 위한 것이었는지, 또 변혁과 개혁이 같은 개념인지 이 문제는 수정주의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답변해야 한다. 나는 맑스의 문헌을 근거로 해서 맑스가 자본주의의 개혁을 위해 <자본>을 집필한 것이 아님을 밝혔는데, 그럼에도 강 교수가 나의 비판을 반박하고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려면, 맑스의 어떤 문헌에 자신이 근거하고 있는지를 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봉건제의 문제에 대해서도 강 교수는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반복하면서 이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여서 더 이상 논의하지 말자고 한다. 이 문제가 제기된 것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 때문인데, 강 교수의 <자본> 해설에서 이 우화는 단순히 비유를 위해 삽입된 게 아니라 안내판 못지않은 하나의 설명축 역할을 하고 있어 부차적 문제로서 접고 갈 문제가 아니다. 강 교수는 내가 봉건제의 후기 형태만을 문제로 삼으면서 봉건제가 착취사회라고 주장한다는데, 이것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문제는 봉건제의 전형적인 형태가 착취에 기반한 생산양식이라는 점이다.

맑스는 <자본> 제3권 제47장에서 봉건제의 전형적 형태에서의 지대 즉 노동지대가 경제외적 강제(영주권)에 의한 착취라는 것, 이 부역노동이 부불잉여노동 전체를 나타낸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나아가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라 경제외적 강제가 약화되고 지대형태도 변화한다고 말한다.

이 역사과정에서 소토지 농민소유의 경작이 발전하였고, 예컨대 영국의 부농계층(요먼)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맑스와 정반대로 이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봉건제는 원래 착취가 (별로) 없는 경제구조인데,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라 영주의 사치재 욕구의 증대 때문에 착취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영주의 착취가 강화되는데 어떻게 부농계층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도 지난 글에서 강 교수는 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라 영주권이 약화되었다고도 한다.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라 영주의 착취가 강화되었다고도 하고, 또 약화되었다고도 하고 완전 횡설수설을 하고 있다. 명색이 <자본> 해설자로서 강 교수가 <자본>을 강의하면서 <자본>에 나와 있는 봉건제에 대한 맑스의 설명을 완전히 뒤집고자 한다면, 해설의 안내판에서 이를 밝히고 맑스가 틀렸다고 말하고 그 논거를 밝혀야 하는데, 여기서도 강 교수는 맑스의 설명이 자신의 설명(맑스의 설명을 뒤집은 것인데)과 똑 같은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또 왜곡이고 날조다.

상품교환에 의해 개미와 베짱이의 운명이 뒤집혔다 즉 착취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강 교수 스스로도 그런 게 아니고 착취는 교환과정의 배후에서, 생산과정에서 일어난다고 확인하는 만큼 명백하게 잘못된 것인데도, 강 교수는 이 주장을 정정할 생각이 없다. 그러기는커녕 그게 교환과정을 먼저 설명하고 다음에 생산과정을 설명하는 <자본>의 서술방식을 따른 것이라면서 내가 <자본>의 서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비판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이런 주장이 맑스에 근거한 것이라면서 <자본>을 왜곡하고 있다. 한 마디만 첨가한다면, 맑스는 교환과정을 먼저 설명하면서도 그 서술수준 어디에서도 상품교환에 의해 즉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의해 착취가 발생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맑스의 서술방식을 따라갔다는 인물이 없는 말을, 그것도 잘못된 말을 맑스의 말이라며 맘대로 집어넣어도 되는가?

2. 딱지의 종류와 기원?

강 교수가 자신에 향해진 내 비판을 수정주의 딱지 붙이기의 문제로 몰고서 쟁점을 피해가고자 하기 때문에, 수정주의 논의는 이제 불가피하다. 강 교수에 따르면 수정주의와 개량주의 그리고 사민주의는 서로 별개의 쟁점이고 각각 고유한 쟁점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맑스주의 운동의 역사를 보면 이 세 개의 쟁점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있고 사실상 같은 쟁점이다. 수정주의, 개량주의, 사민주의는 하나의 동일한 정치적 조류인 것이다. 강 교수는 볼셰비키가 다른 맑스주의자에게 붙인 딱지가 사민주의라고 한다. 상대를 입막음하기 위해 사민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고 좌파논쟁, 개혁논쟁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를 사민주의라고 비판하는 자는 강 교수에 따르면 볼셰비키가 되고 나도 볼셰비키가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민주의 쟁점을 빙자해서 볼셰비키라는 딱지로 딱지 붙이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은 강 교수 자신이 아닌가? 

   
 
 
먼저 맑스주의와 사민주의 그리고 볼셰비키에 대한 강 교수의 이해방식을 보자. 강 교수에 따르면 맑스주의는 원래 사민주의고 사민주의는 (사회화와 함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데 반해, 공산주의(=볼셰비키)는 맑스주의(=사민주의)를 왜곡한 것이고 전체주의와 독재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이해방식은 중등학교의 반공교육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의 반공교육은 맑스까지 싸잡아서 폭력사상으로 몰아가는 반면, 강 교수는 맑스가 통상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민주주의의 신봉자라며 반공교육의 대상으로부터 면해주고자 한다는 것뿐이다. 이런 유치한 이해방식이 맑스와 맑스주의 역사에 대한 왜곡과 날조에 입각한 것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민주주의냐 독재냐, 이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개념은 강 교수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이 개념의 기원을 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하지만 볼셰비키는 1918년 1월 6일 개원한지 하루 만에 의회를 해산시키고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연히 독재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만들어낸 개념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이고 그때부터 마르크스는 엉뚱하게도 공산독재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혁명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제헌의회를 해산한 후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이건 강 교수가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라 논쟁의 먹잇감이 되겠다고 자청하며 달려드는 거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맑스의 국가론의 핵심적 부분이고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기의 국가형태를 말한다. 맑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도 혁명적 독재의 과제를 선언하였고, 특히 프랑스 혁명에 관한 3부작 저작에서 이 개념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켰으며, 1875년 <고타강령 비판>에서 다음처럼 명시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전자로부터 후자로 넘어가는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놓여있다. 또한 정치적 이행기가 그것에 조응하는데, 이행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외에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K. Marx, 1875,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MEW Bd. 19, p. 28.)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둘러싼 카우츠키와 레닌의 논쟁에서 레닌은 이 개념에 대한 마르크스의 서술과 카우츠키의 해석은 하늘과 땅 만큼의 거리가 있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카우츠키의 이 저작을 번역해서 곧 간행한다고 선전하는 강 교수는 이 개념의 기원과 관련해 카우츠키조차도 왜곡하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맑스와 강 교수 사이의 간격은 지구로부터 은하계 저쪽 끝쯤까지 되지 않을까? 

강 교수의 맑스에 대한 날조는 계속된다. 그에 따르면 맑스 생존 당시 맑스를 따르던 노동운동가들은 모두 사민주의임을 표방하였다는 것이다. 즉 사민주의가 원조 맑스주의고 공산주의는 러시아 혁명이후 맑스주의를 훼손한, 맑스주의의 왜곡된 명칭이란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의 주장과 달리 맑스는 사민주의라는 명칭에 비판적이었다. 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1848년 6월의 노동자봉기 진압 후에 새로 형성된 소부르주아적 정파인 신산악파를 사민주의라는 딱지를 붙여서 비판하였고, 또한 라쌀레 파의 사민주의 노동운동과도 논쟁하였다. 독일에서 사민주의의 원조는 맑스주의가 아니라 라쌀레 파였던 것이다. 다만 1875년 라쌀레 당과 아이제나흐 당의 통합 그리고 통합당에서의 맑스주의의 원칙의 관철이라는 현실 속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마지못해 사민주의라는 명칭을 받아들이게 된다. 1894년 엥겔스의 생생한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이 모든 글(1871~75년 사이 <인민국가>에 발표된 논문들)에서, 특히 마지막 글에서 내가 항상 나 자신을 사민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로 명명하고 있음을 사람들은 인지할 것이다. 이는 당시 여러 국가들에서, 사회를 통한 전체 생산수단의 인수를 결코 자신의 깃발에 써놓지 않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라고 명명했기 때문이었다. (…) 독일에서는 라쌀레 추종자들이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라고 불렀다. (…) 따라서 맑스와 나로서는 우리의 특별한 관점을 특징짓기 위해 그런 분명치 못한 표현을 결코 선택할 수 없었다.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그 경제 강령이 단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적일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공산주의적이고, 또 국가 전체의 극복, 따라서 또한 민주주의의 극복이 그 정치적 최종 목표인 당에 이 용어[사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용어는 그만 좋다고 하자. 당은 발전하고 있는데, 명칭은 그대로 남아있다.(F. Engels, “Vorwort zur Broschüre Internationales aus dem ‘Volksstaat’(1871~75)”, MEW Bd. 22, p. 417-418.)     

사민주의 및 공산주의 용어 사용에 관한 강 교수의 날조를 이것보다 더 명명백백하게 말해주는 것이 있을까? 독일 사민당은 19세기 말 수정주의 논쟁 이래 수정주의와 개량주의가 강화되었고, 제1차대전 때는 사회쇼비니즘으로 사회주의의 배반을 공식화했다. 사민당은 이념적으로, 이론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퇴보하였고, 이런 당에 사민주의라는 용어가 다시 어울리게 된 역설적인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레닌이 자신들을 더 이상 사민주의자로 부르지 않고 공산주의자로 명명하자고 한 것은 맑스주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사민주의로부터 맑스주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맑스와 엥겔스가 원래 명명하고자 했던 공산주의자 명칭을 다시 끌어낸 것이 무슨 맑스주의의 훼손인가?

독일 사민당의 수정주의와 개량주의는 사실 수정주의 논쟁 이전부터, 즉 맑스와 엥겔스의 생존 때에도 기회가 되는 대로 불거져 나온 문제였다. 라쌀레주의에서 비롯되는 독일 노동운동의 개량주의 전통을 생각하면 얼마든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강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맑스 및 엥겔스 그리고 사민당의 지도부 간에는 맑스주의 원칙과 강령 그리고 실천문제와 관련해서 긴장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고타강령 초안에 대한 맑스의 비판도 그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1875년의 맑스의 이 글은 1891년 엥겔스의 의해 처음 발표되었는데, 그것도 사민당 지도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랬던 것이고, 사민당의 이론적 권위자인 엥겔스조차 당 지도부를 고려해 문장을 순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비단 <고타강령 비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엥겔스의 사후 이 경향은 강화되었고,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와 함께 수정주의 논쟁으로 발전하였으며, 제2차대전 종전 후에는 개량주의 노선이 가속화되었다. 급기야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독일 사민당은 최종적으로 맑스주의의 흔적을 완전하게 지워버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사민당은 사회주의라는 수사를 버리지 않았는데, 이게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기만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한심하게도 이런 사민주의를 강 교수는 맑스주의의 전형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3. 생산적 논쟁을 위한 제안?

강 교수는 이론적 쟁점들을 피해가면서 실천의 영역으로 가면 자신의 주장이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다. 말하자면 실천 영역은 강 교수에게 수정주의를 승인하는 특권 영역인 것처럼 보인다. 이를 비판하는 좌파 논자들에게 강 교수는 단순한 부정의 전술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당신의 전술이 무엇인지, 그게 현실에서 어떻게 타당한지 밝혀보라고 요구한다. 실천의 영역으로 오면 강 교수에게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나? 강 교수에 따르면 높은 추상수준(이른바 하늘)에서는 이론적 차이가 없고 다 같은 맑스주의자인데 실천 영역(땅)에서 구체적인 전술을 놓고 대립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강 교수가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이론은 현실을 추상화한 것이고, 현실의 쟁점은 이론적 추상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사민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추상적 이론 수준에서 동일한 맑스주의 이론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 수준에서도, 정치적 수준에서도, 실천적 영역에서도 양자 간에는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이 존재한다.

강 교수가 단순한 부정과 긍정적 이해가 결합된 입체적(?) 전술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제출하는 과제를 보면, 임금체계, 월급제, 산별노조의 교섭정책, 주간연속2교대제 등이다. 이 투쟁과제들은 모두 개혁투쟁에 속하는 것들이고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의 변혁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논자들에게 강 교수는 부정의 전술로는 안 된다며 긍정적 이해가 결여되었다고 반박하면서 정작 강 교수 자신에게 부정의 전술은 완전하게 결여되어있다. 결국 앞서 이론적 논쟁에서 제기되었던 문제가 실천영역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뿐이다. 이론 영역에서 강 교수는 변증법에서 부정의 측면을 제거하고 자본주의의 변혁은 곧 자본주의의 개혁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는데, 이제 실천영역에서 그는 똑 같이 부정의 전술을 전면 부정하고 긍정적 이해의 전술만을 강요하고 있다. 이론 영역에서나 실천 영역에서나 강 교수는 일관된 수정주의자인데, 수정주의라는 비판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발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그러면 실천 영역에서의 내 전술은 뭐냐며 정체를 밝히라고 강 교수는 몰아세우는데, 이런 문제까지 논의할 지면도, 시간도 나에게는 없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기왕에 발간된 내 책이나 발표된 글들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미디어오늘과 이 논쟁의 독자들을 위해서 굳이 글 하나는 밝혀두고 싶다. 내가 단병호 위원장 시기 민주노총의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2000년)에 참가해서 작업했던 결과물인데, 거기서 개혁과 변혁의 변증법을 현대자본주의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김성구, “한국에서 사회화와 이행의 경제전략”, 김성구 편, <사회화와 공공부문의 정치경제학>, 문화과학사, 2003에 수록.) 

지금까지의 논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비판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는 강 교수에 대해 다시 한 번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새롭게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답변이 필요하다. 답변을 피할 수 없게 내가 제기한 비판과 질문을 다음처럼 정리해 놓도록 한다. 강 교수의 이해력 수준을 감안하여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정리한 것이다.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답변하지 않겠다면, 강 교수가 더 이상의 반론 글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