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 중인 코레일 사장 선임을 앞두고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가 ‘KTX 민영화를 잘 할 수 있는 후보’라며 임원추천위원들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보도 이후, 철도노조의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물론, 공공기관장 인사에 ‘낙하산은 없다’는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 14일, KBS <뉴스9>는 국토부 고위관계자의 외압 사실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3명으로 코레일 사장 후보가 압축된 가운데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임원추천위원회의 일부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후보 중 한 명인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을 도와 달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최종 후보 3인에 선정된 상태다. 
 
정 이사장은 국토부 교통정책실장을 지낸 인물로,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철도산업위원회에서 가결될 때 위촉직 위원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되기 시작한 KTX 민영화 추진 작업에 앞장섰던 인물로 평가된다. 16일 KBS <뉴스9> 보도에 따르면, 국토부는 ‘부적절한 전화통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외압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 KTX 열차
 
 
그러나 이 같은 외압 의혹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전국철도노조는 민영화 저지 투쟁을 확산시켜 나갈 방침이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은 18일 통화에서 “철도 민영화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나 국민적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8일부터 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철도노조는 이미 지난 6월말, ‘철도민영화’ 관련 파업 찬반투표에서 89.7%의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한 바 있다. 앞서 국토부는 6월26일 공개된 ‘철도산업 발전방안’에서 2015년 개통될 수서발 KTX 운영회사를 설립해 운영권을 넘기겠다는 ‘철도 경쟁체제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철도노조는 이를 ‘민영화 우회로’로 보고 총력 저지를 결의한 상황이다.
 
 
백 팀장은 “국토부가 민영화를 위해 신규 법인을 설립을 공식화하는 시점이 9월 초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9월 초에 파업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추석을 코앞에 둔 시점이다. 철도노조는 19일부터 집행부가 철야농성을 벌이는 한편, 24일에는 서울광장에서 ‘제2자 범국민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26일부터는 휴일근무 거부 등 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두 가지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먼저 ‘낙하산 사장’ 문제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11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산하 기관장과 공공기관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당시 “(박근혜 정부에) 낙하산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는 ‘KTX 민영화’ 문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이명박 정부의 KTX 민영화 추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4월에는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과 같은 KTX 민영화는 반대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민영화 자체를 반대한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18일 논평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천명한 ‘낙하산은 없다’라는 약속을 어긴 부처의 인사 부정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또 “국토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 민영화를 무리 없이 추진하기 위한 허수아비 같은 사장을 원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기획재정부가 20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사장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할 예정인 가운데, 절차상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소위원회를 열어 순위를 정한 뒤 다시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전체회의 없이 서면으로 위원들에게 1위 후보 동의를 받는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증언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박원석 의원은 “결국 내정된 한 사람을 사장으로 만들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국토부의 노골적 압력은 명백한 인사 부정이며, 이에 부응하여 서면으로 서둘러 부실한 공공기관 운영위를 추진하는 기재부도 부정행위의 공모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철도노조 백성곤 홍보팀장은 “사장이 선임되면 (KTX 민영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며 “운영위원회에서 사장 선임을 강행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BS 보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여름휴가와 을지훈련 때문에 회의를 서면으로 대체하는 것을 고려했던 것’이라며 ‘시기와 형식에 대한 다른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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