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댓글은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 등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8월16일 KBS <뉴스9> ‘댓글은 대북심리전’)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제기된 의혹을 적극 반박했습니다. 특히 경찰이 댓글 의혹 사건을 축소 수사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은 전면 부인했습니다.” (8월16일 KBS <뉴스9> ‘축소수사 전면부인’) 
 
16일 KBS <뉴스9> 리포트 가운데 일부다. KBS는 이날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 소식을 헤드라인부터 3꼭지에 걸쳐 전했다. 그동안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모른 척’과 ‘무시’로 일관한 것과 비교해 보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2013년 8월16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하지만 이날 KBS ‘국정원 청문회’ 리포트는 ‘김용판·원세훈을 위한’ 리포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해명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KBS가 보도한 세 리포트는 ‘김용만-원세훈 입장 전달’→‘여야 공방’이라는 구성까지 거의 동일했다. 논란을 빚은 증인 선서 거부에 대해서도 단순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진행 중인 재판을 이유로 증인 선서는 거부했습니다 … 현행법상 증인은 형사상 처벌을 받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대놓고 거짓말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히 비난했고, 새누리당은 선서 거부는 증인의 기본적 권리라고 맞섰습니다.” (8월16일 KBS <뉴스9> ‘원세훈 김용판 출석…증인 선서 거부’) 
 
KBS 리포트의 문제점은 같은 날 SBS <8뉴스>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은 재판에 불리할까봐 증인 선서를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 국회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본인이 유죄 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을 경우 선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점을 활용한 겁니다 … 지난 2004년 대선자금 청문회 때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이 수사진행을 이유로 증인 선서를 거부한 사례는 있지만 당시에는 여야 동의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번과는 다른 것으로 평가됩니다 … 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권위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8월16일 SBS <8뉴스> ‘법적 권리’vs‘위증죄 회피용’)
 
   
2013년 8월16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KBS는 “현행법상 증인은 형사상 처벌을 받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근거만 친절히(?) 설명해 준다. 증인 선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는 점, 법의 허점을 이용해 국민과 국회를 무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언급도 없다. ‘김용판·원세훈을 위한’ 리포트였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MBC는 어떨까. MBC도 KBS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원세훈 전 원장에서 앞서 청문회에 출석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자신은 떳떳하다면서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 오늘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는 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 모두,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전례없이 증인 선서를 거부해 여야 공방이 일었습니다.” (8월16일 MBC <뉴스데스크> ‘공소장 내용 모두 부인’) 
 
사실 이날 청문회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내용은 지난해 12월15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누구와 점심을 먹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2013년 8월16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김민기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15일 김용판 전 청장이 청와대 인근에서 점심을 먹은 사실을 지적하며 의혹을 제기했지만 김 전 청장은 그날 저녁을 먹은 일에 대해서는 “기억한다”고 말하면서도 점심식사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라고만 답했다.
 
특히 김민기 의원은 김 전 청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점심, 경찰의 업무추진비로 서울경찰청 직원들과 밥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해당 직원들이 김 전 청장과 밥을 먹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음을 지적하며 “청와대 근처에서 누구와 밥을 먹었냐”고 집중 추궁했다. 문제의 12월 15일은 경찰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날의 바로 전날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KBS MBC SBS에서 모두 언급되지 않았다. 놀라울 일도 아니다. 김용판·원세훈 모두 증인선서를 거부했고, 검찰 수사로 드러난 기본적인 사실조차 부인으로 일관했지만 두 사람의 대변인이나 된 듯이 입장을 그대로 전달한 게 KBS MBC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위증을 하겠다는 ‘오만한 증인’에 대해 문제제기도 없고, ‘오만한 증인’의 불성실한 답변으로 청문회가 성과 없이 끝났음에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다. 한겨레가 오늘자(17일) 사설에서 “진상규명을 바라는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격발시키는 ‘함량미달 청문회’의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지적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격발시키는 ‘함량미달 청문회 보도’ 후유증이 더 우려될 정도다. 
 
KBS MBC 기자들이 ‘국정원 진상규명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고 쫓겨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정작 항의를 받아야 할 보도국 간부들은 ‘아늑하고 시원한 사무실’에서 ‘왜곡된 여론’을 전달하고 있다. 이러다 서울시청 광장 촛불이 여의도로 향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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