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가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재승인 거부’(탈락) 없는 심사기준안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방통위는 오는 22일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이 같은 안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16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종편 재승인 연구반’의 심사기준안에 따르면, 연구반은 당초 “지상파 재허가 기준을 바탕으로 작성했다”는 설명과 달리 ‘종편 맞춤형’ 기준안을 설계했다. 지상파 재허가 심사항목과 배점표와 달리, 연구반 안에는 ‘거부’가 없다. 특정항목 점수가 낮을 경우 적용하는 ‘과락’ 제도도 크게 줄었다. 승인조건 이행실적에 대한 평가는 60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자료 제출 여부 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연구반에서 최종 조율 중인 안에 따르면, 재승인 심사항목은 △방송평가위원회 방송평가 300점(계량)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현가능성 180점(비계량)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180점(비계량) △지역사회 발전 및 지역적·사회적·문화적 필요성과 타당성 50점(비계량) △조직 및 인력운영 등 경영계획의 적정성 80점(비계량) △재정 및 기술적 능력 80점(계량/비계량)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계획 70점(비계량) △승인시의 승인조건 이행여부 60점(비계량) 등이다. 총점은 1000점.

   
▲ 연구반이 조율 중인 종편 재승인 심사안. 승인조건 이행실적에 대한 평가는 60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행여부 제출이나 방통위 협조 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연구반이 벤치마크했다는 지상파 재허가 심사항목(총점 1000점)은 △방송평가위원회 방송평가 400점(계량)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 150점(비계량)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의 적절성 75점(비계량) △지역사회 발전 및 지역적·사회적·문화적 기여 75점(비계량) △경영의 적정성 50점(비계량) △재정 및 기술적 능력 65점(비계량) △방송발전 지원계획 및 이행여부 50점(비계량) △시청자의 권익 보호 85점(비계량) △허가 시 부과된 조건, 권고 이행여부 등 기타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 50점(계량) 등이다.

두 심사안은 방송평가위원회 방송평가 배점 차이(종편 300점, 지상파 400점)를 빼면 거의 유사하다. 다만 승인(허가) 조건 이행 여부에 대한 평가를 종편은 비계량으로, 지상파는 계량으로 한다는 차이가 눈에 띈다. 지상파 재허가가 ‘계량 평가’ 비중이 조금 더 크다. 두 심사안은 공통항목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시정명령 횟수와 시정명령 불이행 사례를 ‘감점’ 사항을 두고 있다. 종편 심사안의 경우 ‘방송법 및 관련법령의 준수 여부‘가 감점 사항으로 추가됐다. 불공정 보도로 방송사업자 중 가장 많은 법적 제재를 받은 종편 입장에서는 불리한 기준이다.

그런데 종편 심사안에는 ‘재승인 거부’가 없다. ‘과락’ 제도도 축소됐다. 지상파 재허가 심사시 총점 650점에 미달한 사업자에 대해 방통위는 재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12월 방송위원회는 경인방송에 대한 재허가를 거부하면서 그 이유로 △사업수행을 위한 재정적 능력 부족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 계획 및 방송수익 사회환원 불이행 △협찬 및 간접광고 규정 반복적 위반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연구반 안은 사업자가 0점을 맞더라도 조건부 재승인이 된다.

   
▲ 왼편은 지난 2010년 승인 심사 당시 심사항목과 배점, 오른편은 연구반이 새로 설계한 심사항목과 배점이다. 과락제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연구반 총괄책임자인 숙명여대 도준호 교수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재허가 거부 기준은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과락에 대해서도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심사안에는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현가능성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이 두 항목에서 60%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 ‘조건부 재승인’을 하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종편은 그동안 ‘맞춤형 심사기준’을 원했다. 지난 9일 종편 4사는 도준호 교수와 만난 자리에서 각종 민원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적 제재를 가장 많이 받은 채널A는 ‘감점 사항’ 축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편 4사 중 적자 폭이 크고 재방 비율이 높은 JTBC도 관련 항목 축소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반이 ‘종편 맞춤안’을 내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지상파도 650점을 겨우 넘기는데 이 기준으로 종편은 어림없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재승인을 위해 맞춤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일부 종편 관계자들은 “650점을 넘기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방통위가 결국 종편이 100점을 맞더라도 재승인 해주는 안을 내놨다”고 평가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저널리즘과 재정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업자를 시장에서 나갈 수 있도록 있게 해야 하는데 ‘재승인 거부’와 기준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퇴출 기준 없는 재승인 심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최근 ‘종편 검증 TF’에서 제기한 바 있는 종편의 ‘수상한 주주’ 등 주주 및 재정 적정성에 대한 평가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추혜선 총장의 의견이다.

성공회대 최진봉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재승인 거부 기준이 포함되어야 하며 승인조건 이행실적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지금도 종편 탄생 과정의 불법성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또 다시 이런 우려를 안고 가면 안 된다”며 “방통위가 종편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지상파보다 더 강력한 잣대로 종편 맞춤형 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편 4사의 민원제기에 방통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중요해 보인다. 도준호 교수는 “(지난주 금요일) 종편 4사의 의견청취를 진행했다”며 “사업자들이 지상파 심사항목이 다수 이용되는 것을 부담스럽다고 했다. 연구반에서 사업자들 의견청취를 회람하는 중이고, 배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 최종 결정은 방통위 내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반은 빠르면 16일 이 같은 안을 방통위에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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