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데 10일이 걸렸는데 내려오는데는 1분도 안 걸리네요”(천의봉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장)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울산 현대차 공장 앞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여온 최병승(38)·천의봉(33)씨가 8일 오후 1시25분쯤 고공농성을 멈추고 내려왔다. 철탑에 오른 지 296일만이다.

8일 오후 1시 20분. 울산 현대차 공장 앞 명촌주차장에 대형 크레인이 들어왔다. 크레인은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6명을 태우고 주차장 앞 송전철탑을 향했다. 송전탑 위 천막에는 최병승·천의병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크레인을 타고 올라간 이들은 최씨와 천씨를 부축해 크레인에 태웠다.

   
▲ 8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명촌주자창 송전철탑에서 최병승, 천의봉씨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이하늬 기자 hanee@
 
296일 만에 땅을 밟은 두 조합원은 내려오자마자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이에 최씨는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오셨는데 조금만 일찍 이렇게 오셨더라면 저희가 내려오지 않았을 거다”라면서 “2010년에 당신들이 한 줄만 썼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2010년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이들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최씨는 “(철탑에) 올라가서 왜 우리가 싸우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이야기를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정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계셨기에 이곳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이 개같은 세상, 이 개같은 땅, 이 땅을 다시 밟고 지긋지긋한 싸움을 하려고 한다”면서 “어차피 정권이 자본편인걸 알고 시작했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싸웠다, 길어봤자 또 10년 아니겠나, 우리 포기하지 말자”고 말했다.

이들이 갑자기 내려오게 된 이유는 건강 때문이다. 고공농성 해제가 결정된 7일 금속노조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서 있기도 불편할 정도로 두 분이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가 심하다”면서 “7월 20일 희망버스 때도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제대로 인사를 못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8일 천씨는 제대로 서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악화돼 의자에 앉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8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명촌주차장에서 296일만에 고공농성을 중단한 최병승, 천의봉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하늬 기자 hanee@
 
그러나 이들이 조합원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50여명의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계속 길을 막아 논란이 됐다. 이 과정에서 몇몇 조합원들은 “카메라 기자들 빠져라, 동지들과 인사할 시간이다”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이다, 제발 빠져달라” “그만 밀어라, 압살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조합원들은 착찹한 마음을 타나냈다. 강성구(35) 조합원은 “진작에 와서 우리가 떠들 때는 안 하고 이슈화가 되고 다 끝나니까 와서 카메라만 찍는다”면서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아무개(36) 조합원도 “지금까지는 취재도 안 오다가 두 동지가 건강이 안 좋은데 들러붙어 있으면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행태를 꼬집는 지적도 있었다. 최상하(40) 조합원은 “많은 언론이 연합뉴스에 기사가 뜨면 그거 보고 의견을 덧붙여서 기사를 쓰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권아무개(30) 조합원도 “기사를 보면 중간 내용은 다 삭제되서 나간다”면서 “우리가 보기에는 회사(현대차)에서 돈 받아먹은걸로 밖에 안 보인다”며 비판했다. 권씨는 “시민들은 뉴스만 보는데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8일 현대자동차 공장 앞 송전철탑 고공농성을 끝낸 최병승, 천의병씨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하늬 기자 hanee@
 
이날 송전탑 앞 주차장은 노조원과 가족, 그리고 두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온 장하나 민주당 의원,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와 희망버스 참가자 등 800여명(주최측 추산·경찰추산 500명)으로 가득찼다. 2011년 한진중공업 앞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최고위원, 쌍용차 복직을 요구하며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복기성씨도 보였다.

김진숙 위원은 “내려와서 다행이다, 저 몸으로 어떻게 296일을 버텼는지 모르겠다”면서 “두 사람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내려온 것을 승리나 실패로 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술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두 조합원이 내려올 동안 화단 한켠에서 지켜보던 복기성씨는 “땅에서 차별받고 서러움에 억눌린 비정규직들이 목숨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몸과 마음 모두 잘 추스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두 조합원은 이날 오후 1시 40분쯤 동료 조합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체포영장이 발부된 경찰로 자진 출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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