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7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조건 없이 제안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언론에서는 우리 측 정부가 경협보험금 지급 기자회견을 한 직후 북이 태도변화를 보임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은 분명 이번 대화제의를 통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조평통은 회담에 응하겠다는 뜻과 함께 개성공단의 잠정 중단 해제 및 남측 인력 출입 전면 허용키로 했으며, 우리 정부가 요구했던 재발 방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은 1면에 ‘개성공단 문을 닫으려는 순간 북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취지의 제목을 썼다.

경향신문은 2면 <‘악순환 끊겠다’ 박근혜 원칙론 통했나> 제하 기사에서 “정부는 내심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는 듯하다”며 “현재로선 ‘원칙과 신뢰’를 내건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 기조가 효과를 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청와대 자평과는 별개로 꼬일 대로 꼬인 개성공단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박근혜 정부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가 정국을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반전의 계기가 생긴 셈이다. 남북당국회담이 예정된 14일은 우연찮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국정조사 증인 심문이 예정돼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15일 오전 북한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3차 실무회담에서 김기웅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오른쪽)과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 등 북측 대표단이 회담을 시작하며 자리에 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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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전히 남북관계는 풀렸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이 급변한 것도,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 개성공단 재개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즉 여러 요소들이 결합된 북한의 태도변화에 대해 국내 언론들이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정국 반전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북한이 남북당국자회담을 제안했을 당시에도 청와대는 “대북 대응원칙이 통했다”고 자평했다. 남북당국자회담은 ‘격’이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개최도 안됐지만, 당시 국정원 사태나 윤창중 파문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껑충 뛰었다.(리얼미터 5월 5주 55.4%→6월 1주 61.5%)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입장은 개성공단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 한 켠에 대외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을 쌓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며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제안을)받을 마음이 있었으면 바로 (개성공단을 가동)할 수 있었을텐데, 그동안 협상과정은 우리가 계속 조건을 하나씩 더 붙여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국제적 수준에 북한이 맞추면 된다고 했다가 재발방지를 언급했다가 이번에는 책임소재로 갈 것 같다”며 “어느 정도 쌍방이 타협을 해야 하는데, 사실 정부의 태도에 달려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북한의 입장은 유연하게 변해왔기 때문에 이번 대화제의를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지난 5월 북한이 남북당국회담을 제안할 때부터 북한에서는 이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역시 “오히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보다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에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내부 상황으로 봐도 5만3천여명의 개성공단 노동자들까지 고려해서 북이 움직인 것이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아직 박근혜 정부를 신뢰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개성공단 정상화가 비로소 이루어져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욱식 대표는 “7일 조평통에서 나온 것이 북한이 말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라며 “남쪽이 사과를 요구하거나, 피해보상을 요구하거나, 북측 책임을 명시하자고 하면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교수는 “북한이 책임소재로 간다고 해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백기들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 언론들은 (개성공단 문제가)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보도하는데 이것이 잘 이해가 안 된다”며 “북한이 양보만 하면 우리가 잘했다고 하는데 그게 올바른 판단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언론이 협상이 잘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북한에 대해서도 협상의 폭을 좁히는 것 같다”며 “협상과정에서도 전반적으로 우리 쪽 정부의 협상안에 대해서는 보도가 안되고 북한의 제의가 보도되는 경향이 있는데 북한이 협상에서 굽히고 들어온다고 그 협상이 잘 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몇 달 동안 북을 압박하는 과정 속에서 여차하면 닫아도 좋다는 배짱을 가졌던 것이 남쪽 입장”이라며 “북은 특사를 중국에 보내 남북대화 재개 의지를 밝혔고 그 이후에 개성공단을 살려내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을 해 왔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이 희생해도 좋다’는 입장을 갖고 밀어붙인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이나 학자들이 각자 나름대로 의견을 낼 수 있고 해석을 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 일일이 답변을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남북회담 관련)일은 기본적으로 통일부가 하는 것”이라며 “청와대는 7차 회담과 관련해 언론에 어떠한 의견도 제시한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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