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HD(UHD) 방송을 두고 시끄럽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신경전을 벌였고,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방송사들이 서로 주도하겠다고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은 UHD 방송이 뭔지 잘 모른다. 정부와 업계가 방송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며 앞장서지만 국민들의 이해는 부족한 형국이다. 
 
일본을 제외하고 차세대 방송 기술인 UHD 방송에 관심을 갖는 국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콘텐츠 부족, 기술 표준 등 아직 상용화되기에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완료한지 이제 8개월이 지난 한국에서 정부와 방송업계가 유난히 UHD 방송에 집중하는 건 각자 나름대로 사연과 이유가 있다. 
 
UHD 방송은 풀HD 방송(1920 x 1080)보다 4배 이상 선명한 방송기술로 4K UHD 방송(3840 x 2160)으로도 불린다. 10채널 이상의 입체 음향을 제공하며, 화질이 좋은 만큼 50인치 이상의 큰 TV에서도 선명한 화면을 제공한다. 현재 주력 모델은 40~60인치다. 
 
   
▲ HD 방송과 UHD 방송의 차이
 
케이블과 지상파의 UHD 주도권 다툼
 
미래부는 케이블방송 등 유료방송을 중심으로 UHD 방송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4년 케이블방송, 2015년 위성방송에서 UHD 방송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는 '차세대 방송기술 발전전략'을 지난 6월 발표했다. 그런데 미래부의 계획(상용화 로드맵)에서 지상파 방송만 쏙 빠졌다. 
 
이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상파 4사는 지난 30일 미래부에 UHD 상용화 전략이 유료방송 중심으로 수립된 것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유료방송이 아닌 지상파 방송에서 UHD 방송이 우선 실시돼야 UHD 콘텐츠와 관련 산업 육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미래부가 지상파 방송의 UHD 상용화 시점을 밝히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주파수 할당 문제 때문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 디지털 전환으로 생긴 주파수 여유대역(700㎒)을 놓고 이동통신업계와 방송업계가 다투고 있다. 
 
   
▲ 지상파 방송에 대한 미래창조과학부의 'UHD 방송 상용화 로드맵'
 
4배 이상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UHD 방송은 4배 이상의 고용량 데이터 전송이 필요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UHD 방송을 위해 700㎒ 대역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미래부는 상용화 로드맵에서 지상파 방송에 대해선 "여유대역 이용 불가 시, 기존 방송대역의 주파수 효율화 추진 후 가용주파수를 확보해 상용화"한다고 밝혔다. 이는 여유대역을 통신(LTE)에 할당할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통신 주파수를 담당하는 미래부가 통신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문기·이경재 갈등의 배경 
 
앞뒤 과정을 보면 최문기 장관과 방송 주파수를 담당하는 이경재 방통위원장이 UHD 방송 추진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 것도 이해하기 쉽다. 
 
7월 말 미국의 방송규제기관과 미디어 기업들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경재 위원장은 지난 31일 "UHD 방송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을 펼쳤다. 그는 "출장에서 돌아와 보니 미래부에서 UHD 방송 추진계획을 발표했더라"면서 "사전에 방통위와 상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최문기 장관은 이틀 후 "아직 정부가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며 "검토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 사업자들이 기술적으로 (상용화가) 가능하니까 그러는 것"이라며 "UHD 방송은 정부가 하라마라 할 사안이 아니라 사업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7월 30일 방송업계와의 회의에서 밝힌 '매체별 UHD 방송 로드맵'. 지상파 방송의 상용화 계획이 없다.
 
두 정부 부처 수장의 신경전은 한국과 미국의 방송시장 현황을 보여준다. 이경재 위원장이 이런 발언을 한 이유는 실제 미국은 UHD 방송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월트 디즈니 등 세계적 콘텐츠 제작 업체는 UHD 방송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면서 UHD 방송을 시기상조로 보는 미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한국에선 미래부와 케이블방송업계, 지상파 방송사가 적극적이다. 창조경제 전담부처인 미래부 입장에선 새로운 성장동력과 먹거리 산업을 찾아야 한다. 케이블업계는 IPTV로 점점 넘어가는 유료방송시장을 지켜내기 위해서, UHD 방송이라는 새로운 방송기술로 승부수를 띄웠다. 또한 지상파 방송사는 700㎒ 대역 주파수 확보와 UHD 방송 추진계획에서 배제될 수 없다며 사활을 걸고 있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처럼 토목산업을 할 수는 없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에 방점을 찍었는데 미래부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가장 먼저 추진해 세계 UHD 방송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미래부의 계획엔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이 읽힌다"고 말했다. 
 
UHD 시장 열리면 돈 버는 건 일본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UHD 방송을 추진하는 나라다. 방송업계에선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UHD 방송을 위해선 카메라부터 편집기기, 송출기기 등 방송장비를 바꿔야 하는데 일본은 이 시장의 강국이다. UHD 방송 시장이 열리면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일본이다. 
 
게다가 한국에 전세계 TV 시장을 빼앗긴 소니와 도시바, 샤프 등 일본 가전업체들도 UHD TV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가세했다. 이상진 SBS 뉴미디어개발팀 박사는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4K 카메라, 레코더 등 UHD 방송 장비별로 제조업체를 분류해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전자업체의 4K UHD 카메라
 
사실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UHD 방송을 준비해 왔다. 일본의 지상파 방송사인 NHK는 1995년부터 UHD 방송 콘텐츠 제작을 준비했고, 애초 계획에서 2년 앞당겨 내년부터 UHD 본방송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미국 방송업계가 UHD 방송에 소극적인 것은 수익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상진 박사는 "미국의 방송은 상업적인 논리로 운영되는데, 고용량 데이터 전송이 필요한 UHD 방송 채널 한 개를 운영하기 보단 같은 비용으로 4개의 HD 방송 채널을 선호한다"면서 "광고 수익이 4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UHD 방송이 유럽식 방송방식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것도 미국이 소극적인 배경이라는 주장도 있다. 동호회 'HDTV & HTPC 사용자 모임'의 이군배씨는 "전세계 UHD 방송 기술은 유럽식(DVB)으로 가는 추세"라며 "미국의 입장에서는 기술적 보완 시간을 벌어보려고 UHD 방송을 늦추려 하는 것"고 말했다. 
 
“‘깃발 꽂고 따라와라’ 정책은 지양해야”
 
이유는 다르지만 정부, 방송업계는 모두 차세대 방송기술인 UHD 방송을 한국이 선도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실 소비자인 시청자를 배제한 정책 드라이브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UHD 방송은 도입해야 한다"면서도 "보편성을 확보하려면 시청자와 같이 가야 하는데 정부와 방송업계의 '깃발 꽃은 후 따라와라'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케이블방송에 UHD 채널이 생기면 가격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방송의 보편적 측면에서 보면 지상파 중심으로 추진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 삼성전자는 지난 1월 85형 UHD TV(85S9)를 4000만원에 출시했다.
 
일각에선 UHD 방송 정책이 삼성, LG전자 등 가전업체의 이익만 올려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차세대 방송기술이라고 강조했던 3D 방송은 콘텐츠 부족 등으로 실패했지만, 가전업체들은 이미 3D TV 판매를 통해 충분한 이익을 얻었다. 이군배씨는 "가전업체들이 대부분 3D TV만 만들다 보니, 3D 기능이 필요 없는 사람도 비싼 TV를 사게 됐다"면서 "천만원까지 호가하는 삼성, LG전자의 UHD TV도 너무 비싸다.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UHD 방송 콘텐츠가 부족한 것도 과제도 꼽힌다. 비싼 돈을 주고 UHD TV를 구매했지만 막상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UHD 방송용으로 제작된 건 드라마 추노·공주의 남자·각시탈·아랑사또전과 다큐멘터리 색(White, Red, Green, Blue)정도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최대 프리미엄 유료방송 채널 HBO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로버트 지터(Robert Zitter)는 "UHD 방송은 시기상조"라며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만 5~10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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