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5일 단행한 청와대 핵심 참모진 개편을 통해 ‘육법당’이 30여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느낌이다.

청와대의 주요 보직, 즉 경호실장(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 육사28기), 안보실장(김장수 전 국방장관: 육사 27기), 비서실장(김기춘 전 법무장관: 서울법대), 국가정보원장(남재준: 육사 25기), 국무총리(정홍원: 성균관대 법대), 새누리당의 대표(황우여: 서울법대) 등 집권세력의 거의 모든 핵심 보직이 육군사관학교(陸士) 출신들과 (서울)법대(法大) 출신들로 채워졌다. 새로 임명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중에서도 서울법대 출신들이 눈에 띈다.

게다가, 국회의원들이 직접 선출하기는 했지만, 입법부 수장인 강창희 국회의장이 육사 25기 출신이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맡은 현경대 전 국회의원이 서울법대 출신이다. 이 정도면 육법당의 부활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육법당(陸法黨)’은 새누리당의 전신이랄 수 있는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을 출입하던 기자들이 1980년대초에 엄혹한 철권통치 속에서 냉소적으로 부르던 이름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육사 2기) 대통령의 피살로 생긴 권력 공백을 틈타 당시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육군 소장: 육사 11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뒤 국가안전기획부(약칭 안기부; 전 중앙정보부, 현 국가정보원) 등을 통해 만든 집권당이 민정당인데, 육사(陸士) 출신들이 실권을 휘두르고, 그 밑에서 서울법대(法大) 출신들이 마름 노릇을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자와 육영수 여사의 ‘수’자를 따서 ‘정수장학회’라 이름붙인 것과 비슷하다.

당시 집권당 뿐만아니라 나머지 3개의 야당마저 전두환 대통령의 안기부가 만들었다고 해서, 민정당은 1중대, 형식상 제1야당인 민한당은 2중대, 한국국민당(약칭 국민당)은 3중대, 신정사회당은 4중대로 불리던 시절이다. 여야 정당 모두가 ‘관제정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청와대 참모진 개편으로 부활하고 완성된(?) 육법당과 30여년전 전두환 시절의 육법당 사이에 표면적인 차이가 있다면, 육사 출신과 (서울)법대 출신들의 위상과 역할이 뒤바뀐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도 피상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고 실제 상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육사 출신인 아버지 박정희의 피를 이어받았고,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박지만(1958년생)이 육사 37기 출신이기 때문이다. 

집권당과 정부와 청와대의 요직을 육사와 서울법대 출신들로 채운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정책만으로 그와 나라의 미래를 단정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정책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인재 창고(pool)는 여전히 제한돼 있고, 그의 생각도 매우 닫혀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서 다른 것은 다 제쳐 두더라도,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은 누가 봐도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국민들의 정서나 눈높이는 말할 것도 없고, 변화된 정치사회 환경이나 야당과 관계 등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력을 새삼스럽게 자세히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사로 법무부에 파견돼 유신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긴 이른바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핵심 당사자란 사실만으로 그의 발탁은 부적절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국정 주요 지표 중의 하나인 ‘창조경제’ 취지와도 거리가 먼 인물이다. 원래 변화와 창조보다 질서와 체제(유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쉬운 법대 출신들과 ‘나라의 안보’보다 ‘정권의 안보’를 더 신경쓰는 인사들로 무슨 창조경제를 이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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