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개입이란 명백한 국가문란 범죄행위에 국민들은 연일 촛불을 들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민의를 보도해야 할 언론 대부분이 국정원 사건을 축소 보도하거나 정치적 공방으로 치부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대표적 보수언론인 조선·중앙·동아일보와 공영방송 KBS·MBC는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거의 다루지 않고 있어 시민사회의 분노가 정점에 도달했다.

조중동의 경우 1차 범국민 촛불집회가 열렸던 6월28일부터 8월6일까지 일간지면에서 시국선언이나 촛불집회 내용을 다룬 기사가 단 한 건도 없었다. 대신 ‘촛불집회는 대선 불복 움직임이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한 세력과 주최 측이 같다’, ‘진보와 보수의 맞불 집회다’라는 식으로 사태의 본질을 흐렸다.

공영방송의 경우도 6월 28일부터 8월 5일까지 메인뉴스를 분석한 결과 시국선언이나 촛불집회내용을 다룬 리포트가 MBC는 0건, KBS는 단신 2건에 불과했다. MBC에선 <시사매거진2580> ‘국정원에 무슨일이?’편이 당일 불방되며 논란을 낳았고, KBS에선 자사의 국정원 보도를 비평한 제작진에게 압력이 있었다.

YTN은 국정원의 SNS 정치개입 정황을 단독 보도한 리포트가 석연찮은 이유로 돌연 방송이 중단됐다. 하지만 해당 리포트는 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지지부진한 국정원 정치개입 진상규명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언론보도에 또 다시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88개 시민사회단체로 결성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는 6일 기자회견에서 “공영방송이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 국정원 대선개입이 사실로 확인되고 지난해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조작된 것이 입증되었지만 이를 축소하거나 은폐·누락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가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사태에 대한 공영방송의 편파 왜곡보도를 규탄하고 있다.(왼쪽) 이날 시국회의는 기자회견 뒤에 편파적인 공영방송을 상징하는 TV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기자회견에선 “KBS와 MBC는 앞으로 공영방송이란 말을 쓰지 마라”(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민주주의가 망했다. 공영방송이 망했다”(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등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시국회의는 “공영방송은 정부여당이 국면전환을 위해 NLL논란을 재점화 시키자 충성경쟁을 하듯 물타기에 앞장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시국회의는 이날 민의를 담아 “양심이 살아있는 언론사 내부 구성원들은 더 이상 굴종하지 말고 적극적인 보도투쟁에 나서라”고 호소했다.

박래부 새언론포럼 회장은 국정원 사건을 외면하고 있는 언론인을 향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사정권에 부역했던 광주MBC가 시민에 의해 불탔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6일 언론시민단체와 KBS의 면담 자리에서 이준안 취재주간은 “오늘 면담이 외부에서 KBS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어 유감스럽다”고 밝혔으며, 최재현 대외협력실장은 “국정원 사안에 국민들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쪽 입장만 전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공영방송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보도해야 한다. 현재 KBS의 편파보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제 교수는 이어 “언론이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세력은 언론의 논조를 왜곡할 힘을 가진 권력이다. 언론의 수용자집단인 시청자들이 알권리를 위해 제대로 보도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권력의 압력과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은 “현 사태는 정권이 필요에 따라 언제든 언론을 조종할 수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자발적으로 권력에 야합하는 간부, 그리고 자기검열에 빠진 언론인이 결합된 결과”라고 지적한 뒤 “국민이 언론을 외면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면 현장 기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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