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의지 확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언급할 때마다 언론이 먼저 비명을 지른다. 통신사들도 엄살을 떤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주가가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경쟁이 과열되고 시장이 혼탁해진다는 게 방통위가 보조금을 규제하는 명분이지만 보조금을 못 주게 한다고 해서 통신요금이 내려가는 건 아니다. 통신사들의 이익이 늘어나고 주주들이 그 몫을 챙긴다.

방통위는 6일 “지난달 단말기 보조금 규제 이후 시장이 다소 안정화 추세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KT가 영업정지됐던 지난달 30일부터 5일까지 통신 3사의 번호이동 규모는 1만9000건으로 영업정지 직전 1주일과 비교해서 14.2%나 줄어들었다. 올해 초 통신 3사가 순차적으로 영업정지 됐을 때와 비교하면 32.1%나 줄어들었다. 특히 KT는 지난 1주일 동안 번호이동 가입자가 8000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언론 보도에서는 일련의 유사한 패턴이 발견된다. “역대 최대 규모 제재”라거나 “철퇴를 가했다”거나 “초유의 고강도 징계”, “본보기” 또는 “일벌백계”라는 표현도 있고 특히 이번에 단독 영업정지를 맞았던 KT와 관련, “가입자 이탈하나 전전긍긍”이라든가 “하루 영업손실 31억원” 등의 호들갑스러운 전망이 쏟아졌다. “통신사가 방통위 존재를 가볍게 여긴다는 당국의 자존심도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오히려 주가가 뛰어올랐다. KT는 지난달 17일 3만3800원을 저점으로 30일에는 3만6700원까지 뛰어올랐다. 6일 종가는 3만5800원이다. 김동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KT의 경우에도 시장의 우려와 달리 영업정지 일수가 7일 밖에 안 되는 데다 가입자 이탈도 최대 10만명 수준으로, 오히려 마케팅 경쟁이 완화되면서 주가에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통신 3사의 과징금은 669억6000만원으로 올해 초 118억9000만원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났지만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1.8%와 1.7% 수준이다. KT의 경우 과징금은 영업이익 대비 1.4% 수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영업정지 7일 동안 KT는 가입자가 6만66명 빠져나갔다. 가입자 유치 비용을 25만원이라고 계산하면 150억1650만원 수준, 모두 더해도 영업이익 대비 1.7% 수준에 그친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6월 SK텔레콤에 이어 지난달 LG유플러스가 LTE-A를 출시한 데다 KT가 1.8GHz 대역 주파수 확보해 광대역 LTE 서비스를 시작하면 마케팅 경쟁이 과열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번 제재는 이러한 우려감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마케팅 비용이 절감되고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3사 동시 영업정지보다 단독 영업정지의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통신3사 시장 점유율 추이
©KTOA, KTB투자증권
 

방통위가 설정한 불법 보조금의 기준은 27만원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이번에 KT 영업정지 기간 동안 단말기 보조금은 22만7000원으로 올해 초 통신 3사가 동시 영업정지 됐을 때 27만2000원보다 크게 낮아졌다. 과열 경쟁이 줄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줄어든 이익은 고스란히 통신사들 영업이익으로 돌아가게 된다. 역대 최대 규모 제재를 맞았다는데 오히려 주가는 뛰어오르고 통신사들은 표정 관리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 규제의 역사는 200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무역적자를 유발하는 단말기 부품 수입을 줄여보자는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도입된 법이 일몰을 연장하면서 살아남다가 2008년 3월에서야 폐지된다.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방통위 관계자도 “단말기 보조금 자체가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하는 명분은 “이용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말기를 자주 바꾸는 사람이 보조금을 많이 받으면 자주 안 바꾸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게 된다는 논리다.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42조 “전기통신 서비스의 요금, 번호, 설비, 또는 그 밖의 경제적 이익 등을 다른 이용자에 비하여 부당하게 차별적으로 제공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방통위가 불법의 하한으로 잡고 있는 27만원은 아무런 근거도 없다. 전응휘 오픈넷 대표는 “정부가 가격 결정에 개입하려면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방통위의 보조금 규제는 사실상 경쟁제한적인 규제수단으로 활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전 대표는 “입구 규제가 아니라 출구 규제는 실효성이 없다”면서 “방통위가 정말 통신 요금 절감을 고민한다면 보조금 규제가 아니라 가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높은 보조금이 단말기 교체 주기를 짧게 만들고 과소비를 유발한다는 우려도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1년 이내 단말기를 교체하는 비율이 67.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LTE 보급과 함께 단말기 가격이 뛰어오르면서 통신장비 지출 비용도 2011년 월 2500원에서 지난해에는 6700원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알뜰폰이나 자급 단말기 시장이 부진한 것도 과도한 보조금이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진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원은 “보조금을 지급받지 않은 가입자에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 할인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신규 가입을 할 때 단말기 할인과 요금 할인 가운데 선택을 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도 공기계를 구입해 가입하는 SIM 전용 요금제는 단말기 보조금을 제공하는 일반 요금제 보다 월 평균 1만2000원 이상 가격이 낮다.

정 연구원은 “통신사 대리점이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고가의 요금제를 강요하거나 부가 서비스 의무사용 조건을 내거는 등의 부당한 계약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또 “신규 가입이나 번호이동을 차별할 수 없도록 하고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면서 “통신사 홈페이지에 단말기 출고가와 보조금, 판매가를 공시하도록해서 보조금 지급의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 상반기 보조금 과열경쟁을 벌인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총 669억6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보조금 과열경쟁을 주도한 KT에 대해서는 추가로 7일간의 영업정지에 처하는 제재조치를 18일 의결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용산의 한 휴대전화 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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