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정조사를 두고 야당이 장외투쟁까지 벌어지는 등 반발 여론에 몰리던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세대 인사를 자신의 최측근에 중용하는 ‘충격’ 인사를 단행해 국면전환용 노림수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은 깜작 인사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책임있는 언급대신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을 질타해 국정원 문제 해법의 방향을 엉뚱한 쪽으로 끌고 가려한다는 평이 나온다. 그러면서 그는 “민생을 위한 강력하고 추진력있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해 향후 국정운영의 일방독주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장외투쟁에 ‘우리가 남이가’ 대선개입 원조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갑작스런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 김기춘 전 한나라당 의원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김 신임 비서실장은 박정희정권 시절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한 인물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을 거쳐 전두환정권 땐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을, 노태우정권 땐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연합뉴스
 
김 실장은 1992년 12월 법무장관 재직시절 부산지역기관장과 모임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대책을 논의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지역감정을 조장하자’는 언급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인연으로 1996년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3선을 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안을 직접 헌재에 접수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비서실장과 함께 교체된 정무수석(박준우)과 민정수석(홍경식)의 경우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윤창번 미래전략수석도 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법대에 육사출신, 이른바 ‘육법당’ 인사들이 청와대 비서실 뿐 아니라 정부조직의 내각에 다수 포진됐다. 

박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인사에 대해 “새로운 변화와 도전의 길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인사대상자들이 이런 인사배경에 걸맞는 인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중평이다. 김기춘 실장의 경우 1939년생으로 이제 나이 80을 바라보는 연치(年齒)에 대통령 보좌와 대국민소통에 힘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무리한 인사 노림수는 “국면전환” “국정 독주 예고”=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깜짝 이벤트 또는 충격요법의 성격을 지닌 이번 인사가 국정원 국정조사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정조사 특위 위원을 맡고 있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6일 인터뷰에서 “소통, 개방, 민주주의 회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김기춘 실장의 경우 대부 가운데서도 ‘왕대부’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며 “해임하라는 남재준 국정원장은 놔두고 엉뚱한 비서진만 교체한 동문서답식 인사”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검찰의 수사태도 뿐 아니라 전임 비서진이 검찰 장악을 잘 못한데 따른 불만인지, 야당에 끌려다니는 데 따른 불만인지 의문”이라며 “박 대통령이 이런 의도를 갖고 밀어붙인 것이라면 끔찍한 일이자 비극”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의 입맛대로 강압적으로 과거처럼 공안정국을 몰고가려 한다면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레임덕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며 “정권 초부터 국정운영의 추진동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단기적으로는 야당의 장외투쟁을 흐트러뜨리고자 한 것이겠지만, 이번 인사로 국면전환이 될 것 같지는 않다”며 “조직 내부용으로는 모르겠으나 대국민 메시지 측면에서는 거꾸로 간 인사이자 ‘통합’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만흠 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내부적으로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는 있겠으나 대국민메시지는 준 것이 없으며 오히려 긍정적 의미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가운데 아마도 최고령일 정도로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김기춘 실장의 경력은 박근혜 정부 주요 메시지인 ‘미래’와 ‘통합’과도 전혀 무관하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향후 국정장악을 통해 일방독주로 흘러갈 우려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정원 문제 침묵 ‘사초증발 국기문란’?…“국정운영 일방독주, 레임덕 앞당길 것”= 박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잘못된 일들이 많았다”면서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비난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이 비리와 부정부패의 수준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앞으로 민생을 위한 강력하고 추진력 있는 정부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6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회의를 진행했다. 왼쪽은 정홍원 국무총리. ⓒ청와대
 
이를 두고 박범계 의원은 “박 대통령이 대화록의 유출사건보다 실종사건에 더 큰 파괴력이 있으며 민주당에 타격을 줄 걸로 판단하고 이렇게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그래서 민주당 장외투쟁 국면에 대한 정면승부의 의미로 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의원은 “그러나 그런 성급한 판단과 언급을 하면할수록 대화록 유출 사건이 더욱더 도드라질 것이고,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언주 원내대변인도 “우리가 특검까지 하자고 했던 ‘대화록 유출사건’에는 언급없이 대화록 실종 문제를 뜬금없이 꺼낸 것은 철저히 기획된 발언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만흠 정치아카데미 원장은 “(국정조사) 문제를 푸는 과정이라면 껴안을 수도 있었는데 되레 공세적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정면돌파하겠다는 것 아닌가 싶다”며 “이래서 국민적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며, 무리하게 가다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철희 소장도 “단기적으로 여론이 안좋으니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의도도 있어보이지만, 국정원 사건의 본질을 잘못짚고 있다”며 “그런 발언은 대통령 리더십에 걸맞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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