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사실상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됨에 따라 석 달 넘게 이어져왔던 ‘한국일보 사태’가 중대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최대주주인 장재구 회장은 일체의 경영권을 상실했다. 진행 상황에 따라 최대주주 지위를 박탈당할 가능성도 있다. 법원은 신문 파행 발행 사태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재산보전처분의 이유로 들었다. 법원이 선임한 보전관리인의 첫 업무도 편집국 정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관련기사:<한국일보 법정관리…장재구 회장 경영권 상실>)

 
‘짝퉁신문’ 40일째…편집국 정상화 급물살 탈까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2부(수석부장판사 이종석)는 1일 한국일보에 대해 재산보전처분을 결정했다. 본격적인 회생절차(법정관리)에 앞서 우선 법원이 선임한 보전관리인이 회사의 경영을 맡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과 박진열 사장의 모든 권한은 정지됐다. 보전관리인은 앞으로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한국일보에 상주하면서 법원과의 협의를 통해 회사의 인사와 지출 등을 결정하면서 사실상의 경영권을 행사하게 된다.
 
법원이 회생절차에 앞서 재산보전처분을 내린 배경에는 이날로 40일째 신문이 파행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구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으로 고발돼 현재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고, 경영진에 의해 기자 활동이 제한되고 신문이 파행적으로 제작돼 회사가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정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짝퉁신문’ 발행으로 인해 발생한 긴박한 경영위기 상황을 법원이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 지난달 17일, 검찰 조사를 마친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
 
 
한국일보 전·현직 기자와 사원 등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신청인들은 “아슬아슬하던 한국일보 경영 상태는 장재구 회장이 6월 15일 용역 인력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하고 기자들의 신문 제작을 차단함으로써 부도 상황으로 치달았다”고 밝혔다. 신문이 파행 제작되면서 “자연히 광고·협찬 매출은 전년의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감”했고, “장 회장과 경영진에 대한 여론 악화로 구독 중단도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비대위 호소문 바로가기)
 
이에 따라 보전관리인의 첫 업무는 신문발행을 정상화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보전관리인으로 선임된 고낙현씨는 1일 오후 한국일보를 찾아 노조(언론노조 한국일보사지부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와 면담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관계자는 1일 “관리인이 판단을 잘 내릴 수 있도록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A씨는 “관리인이 최우선적으로 새로운 편집국장을 선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영위기 초래한 장재구 회장 ‘빈털터리’ 되나
 
한국일보의 최대주주인 장재구 회장은 경영권을 상실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자신의 지분이 소각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통상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명령하면, 자체 구조조정과 부채 탕감 등의 과정을 거쳐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인수합병 절차를 밟아 새로운 투자자를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의 주식은 소각될 가능성이 높다. A씨는 “대주주로서 사실상 건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다른 채권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3~4주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다. 회생절차가 개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A씨는 “법정관리인 선임에 앞서 보전관리인을 선임한 건 최근 몇 년 사이 사례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법원이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으로도 읽힌다”고 말했다. 보전관리인은 법정관리인과 사실상 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다. 
 
한국일보는 수년째 경영 위기를 겪어 왔다. 2009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부채는 700억원에 달한다. 법원은 “법인이 부채초과 상태에 있는 경우 파산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신청인들은 “최근 4,5년 간 일상화된 부도 위기를 회사는 임금 체불, 어음 지급기일 연장, 국세 체납으로 모면해왔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출장비 등 수당을 지급받지 못했고, 건강보험료 회사 부담금도 연체가 반복됐다. 퇴직금도 적지 않게 밀려있다. 

‘부메랑’이 되어 날아 온 장 회장의 ‘무리수’

 
이 같은 상황은 장재구 회장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신청인들은 “한국일보사의 경영 악화는 신문산업 축소라는 외부 요인보다는 대주주인 장재구 회장의 비리와 부실 경영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재무제표에 따르면, 한국일보는 주주들에게 194억원 가량을 빌려주고, 이를 전액 ‘못 받을 돈’(대손충당금)으로 처리했다. 계열사에 ‘매출채권’ 형태로 외상을 준 금액도 265억원에 달한다. “회사 돈을 빌려가 갚지 않고 외상 장사만 한 것”이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줄줄 새는 회삿돈… 한국일보는 왜 이렇게 됐나>)

   
▲ 지난 5월21일 오후,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려던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오른쪽)을 정상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비대위 기자들이 가로막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장재구 회장은 그동안 수차례 ‘무리수’를 두면서 신문 파행 발행 사태를 방치했다. 기자들의 고발 이후 ‘보복인사’를 단행했고, 지난달 6월15일에는 용역직원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시켰다. 이후 법원 결정에 따라 편집국 폐쇄를 해제한 이후에도 기자들을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자신이 임명한 편집국장과 일부 부장들을 중심으로 ‘짝퉁신문’ 발행을 지속해왔다. 결국 거듭된 무리수로 인한 경영상 위기가 법원에 의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신청인들은 “법원에 회사를 맡기는 길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짝퉁신문’ 발행으로 인한) 경영 손실이 어마어마한데도 자신을 고발한 기자들이 괘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편집국 정상화를 외면하는 장 회장의 고집을 감안하면, 법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한국일보는 흔적조차 없어져 버릴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장재구 회장은 일부 경영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강경책’을 거듭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한국일보는 인건비 절감과 적자사업 정리 등 자구노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신청인들은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허가한다면 저희는 앞으로 인건비 절감을 포함한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만성 적자 사업 정리 등을 통한 비용 절감, 수익성 있는 사업의 적극 전개 등을 통해 한국일보 살리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관계사에 줬던 외상매출을 회수하고, 그 밖의 채권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회수에 나설 전망이다. 

경영권을 상실한 장재구 회장은 배임·횡령 혐의에 대한 법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놓은 상태다. 검찰은 노조가 고발한 200억원대 배임 혐의 외에도 추가 배임 및 횡령 혐의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2일로 예정됐던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1일 장재구 회장의 요청으로 5일로 연기됐다. 이에 따라 장 회장의 구속 여부는 5일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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