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시장은 주연급 출연료와 작가료 등 제작비가 급등하면서 위험 부담도 그만큼 커져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7월23일 SBS가 <8뉴스>에서 보도한 ‘모래시계 김종학 PD 숨진 채 발견’ 리포트의 마지막 부분이다. 김종학 PD의 죽음을 보도한 방송3사 리포트 가운데 유일하게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리포트다. KBS MBC에는 ‘김종학’ ‘검찰 수사’ ‘고소고발’ 등의 표현만 등장할 뿐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김종학 PD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죽음 이면에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방송뉴스는 대부분 ‘출연료 미지급 등을 이유로 고소를 당했고 그에 따른 심적 압박’ 등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의 죽음 이면에 드리워진 드라마 제작 환경의 불합리성이다.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PD였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만연해 있었던 드라마 제작시장의 불합리적인 측면을 주목해야 했다는 얘기다. 
 
   
7월23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오늘(25일)부터 언론보도가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김종학 PD의 죽음엔 지상파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불합리한 계약관계가 있다. 방송사는 편성권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를 제작한 외주제작사 입장에선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방송사가 요구하는 불합리한 계약조건들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태왕사신기>나 <신의>와 같은 대작들로 승부를 걸다 곤경에 빠진 그의 상황을 구조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점을 따져보면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외주정책에 근본 원인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주제작 의무편성 비율확대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외주정책이 낳은 ‘예고된 참사’라는 얘기다. 
 
지난 1991년부터 정부가 추진한 외주정책의 핵심 목표는 지상파 독과점 해소와 프로그램 다양성 확보였다. 1999년 3%에 불과했던 의무편성 비율이 외주제작 확대 정책에 힘입어 30%를 상회하는 비율로 치솟았지만, 지상파 독과점과 프로그램 다양성 확보라는 핵심 목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한류 열풍 등의 요인으로 일부 톱스타들의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내 드라마에서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김종학 PD가 연출을 맡았던 <태왕사신기>의 경우 주연인 배용준 씨가 회당 받은 출연료는 2억5천만 원. 드라마 제작의 절반 이상을 출연료가 차지하는 상황은 굳이 외국의 드라마 시장과 비교해보지 않아도 문제가 심각하다. 그만큼 수익구조의 불균형이 심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13년 7월25일자 5면
 
경향신문은 오늘(25일)자 5면에서 “지상파 방송사는 3개이지만 교양프로그램 제작사 협의체인 독립제작사협회에 140개사, 드라마제작사협회에 24개사 등 외주제작사는 160여개에 달한다”면서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가 절대 ‘갑’일 수밖에 없어 ‘을’인 외주제작사가 불합리한 계약관계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방송계 일각에선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도입을 주장해왔고, 이런 요구가 빗발치자 문화부에서 최근 표준계약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방송사는 제작사와 자율적으로(?) 계약을 맺고 있다. 
 
말이 자율이지 시청률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외주제작사 입장에선 스타급 배우와 작가를 선호하는 방송사들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선 편성 후 제작’ 시스템이다 보니 제작사는 편성을 따내기 위해 방송사 입맛에 맞는 톱스타와 스타 작가가 부르는 ‘몸값’을 맞춰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7월23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하지만 김종학 PD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하는 방송뉴스에는 이 같은 점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잇단 흥행실패와 고소고발 사건으로 심적 부담을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KBS)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 사태로 경찰 조사를 받아온 데다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검찰로부터 구속영장까지 청구돼 오늘 법원의 실질심사를 앞두고 크게 동요했던 것으로 전해졌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가수 싸이가 미국 빌보트 차트 2위에 오르고, 신곡을 발표할 때 ‘한류 열풍’의 이면 등을 메인뉴스에서 다각적으로 짚었던 지상파 3사가 정작 ‘거장PD를 안타깝고 쓸쓸한 죽음에 이르게 한’ 근본 원인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고, 언론으로서의 기본 역할에 대한 고민도 없다. ‘김종학 죽음’을 전하는 방송뉴스를 전형적인 ‘갑질 보도’로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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