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공식출범하기 전인 지난 2월 김용준 당시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 관련 의혹을 적극 검증하면서 언론계 주목을 받았던 동아일보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아는 박근혜 정부에 참여할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검증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조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등 진보진영 인사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이를 두고 언론계에선 동아가 보수 일색에서 벗어나 중도 쪽으로 지면변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동아는 공직자 인사검증을 ‘신상털기’라고 비판한 조선일보를 지면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으며, 대북 문제와 관련 보수진영 일각에서 제기됐던 ‘애국적 핵무장론’을 비난하는 등 기존 지면과는 차별화된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정부 초기 보여준 동아의 지면변화는 일시적 현상? 
 
최영훈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아일보가 변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면서 “그럴수록 더욱 낮은 자세로 열심히 좋은 신문을 만들도록 배전의 노력을 하겠다. 많이 성원해주시고 좋은 의견, 쓴소리도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글을 남겨 주목을 받았다.
 
   
동아일보 2013년 1월30일자 3면
 
하지만 최근 동아일보 지면에서 이 같은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발생한 ‘노무현 전 대통령 NLL발언 파문’이 대표적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짜깁기 논란을 빚은 국정원 요약본을 거의 기정사실화 한 채 <‘대통령의 직분’ 망각한 2007년 노 발언>(6월26일자 1면) <김정일 앞에서 한없이 비굴했던 대한민국 대통령>(6월26일 사설)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박근혜 대선캠프 총괄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대선 때 ‘대화록’ 입수해 읽어봤다”는 발언이 공개되는 등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둘러싼 후폭풍이 일었지만 동아는 의혹을 파헤치기보다 여야 논란으로 부각시키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조중동과 KBS MBC 등을 겨냥해 “새누리당에 불리한 사안은 희석시키고 야당에 불리한 사안은 확대시키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동아일보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최근 주말 저녁마다 서울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동아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최근 불거진 굵직한 현안들에서 동아일보의 차별화 된 지면변화를 찾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동아일보 2013년 6월26일자 1면
 
‘아시아나 항공 파문’과 관련한 채널A의 방송사고 이후 동아일보 ‘위축’이 심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채널A는 지난 7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착륙 사고를 보도하면서 ‘사망자가 한국인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앵커의 발언을 방송해 물의를 빚었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 사고 파문 이후 지면 보수화 심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해설위원실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채널A 방송과 관련한 발언이 소개된 이후 ‘지면 보수화’가 더 심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겨레 2013년 7월11일자 6면
 
박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몸에 주는 상처보다 마음에 주는 상처는 더 오래가고 치유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한-중 국민 사이에도 우호적인 관계가 되고 발전해 나가야 하는데 이번에 앵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런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는지, 그 한마디로 그동안에 한국 국민에 대해서 갖고 있던 정말 좋은 우호적인 생각이 다 사라질 판이 되어버렸다”며 최근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와 관련 <채널A>의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인지 동아일보는 ‘아시아나 파문’ 이후 한국과 중국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하는 지면을 연일 선보였다. <총 겨눴던 한중 노병들 뜨겁게 껴안다>(7월10일자 1면) <‘메이드 인 차이나=싸구려’는 옛말 … 한국엔 중국풍 솔솔>(7월12일자 2면)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지난 17일 동아일보는 1면에서 검찰의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압수수색을 보도하면서 <전두환, 법과 원칙의 레드카드 받다>를 제목으로 뽑았다. 동아는 해당 기사에서 “이날 압수수색은 좌파들에 의해 ‘유신의 딸’로 매도됐던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그 어떤 진보성향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또 “‘민주주의 정통성을 지닌 보수정부’를 자임하는 박근혜정부가 권위주의적 우파 정권이었던 5공화국의 잔재에 대해 철퇴를 내리며 보수주의의 차별성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의 전두환 전 대통령 압수수색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칭송’으로 바꾼 것. 
 
   
동아일보 2013년 7월17일자 1면
 
이와 관련, 국민TV 김용민 PD는 방송에서 “동아일보 기사는 ‘전두환 자택 등 압류’를 박근혜 대통령 칭송으로 연결시키는, 스트레이트와 용비어천가가 섞인 보기 드문 기사”라며 “국정원 선거 부정 등으로 정통성에 심대한 의혹을 사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지면변화? 외연 넓히려는 시도였을 뿐 본질적 변화 없었다” 
 
최근 동아일보 지면과 관련,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정확히 말하면 동아일보의 정체성이나 본질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동아일보가 지면에서 약간의 변화를 보였던 건 독자의 외연을 넓혀보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면서 “자신들의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바꾸려는 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대선 때 ‘2040 세대’의 현실적인 측면을 주목한 동아일보가 젊은 세대 입맛에 맞는 지면변화를 시도했다가 최근 그런 시도가 약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동아일보 지면은 앞으로도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시도를 할 것”이라면서 “그때마다 지면변화가 조금씩 있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본질적 측면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지면 변화가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2013년 7월1일자 1면
 
한 신문사 중견기자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이 기자는 “동아일보 내부 상황을 볼 때 편집국장의 의지만으로 지면 변화를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많다”면서 “최영훈 편집국장이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평가할 대목이지만 그런 시도가 계속해서 유효성을 가지기에는 동아 내부 인적구성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요즘 동아일보 젊은 기자들의 생각이 어떤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전제하면서 “오랜 기간 형성된 동아의 보수적 기질과 사내풍토가 단박에 잘 바뀔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동아일보 지면변화가 유의미성을 가지려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젊은 기자들의 쇄신 노력이 나와야 한다”면서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 당분간 그런 상황이 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동아의 지면이 크게 바뀐 건 없다는 입장이다. 
 
동아일보 한 기자는 “3월과 지금 편집방향이 달라진 건 없다. 인사검증은 예전에도 열심히 했었고 요즘엔 그런 이슈가 없으니 부각되지 않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이 기자는 “다만 인사검증 이슈가 사라지고 힘이 빠진 것 있다. 4월에 시작한 토요판의 경우 신선하지만 아주 파격적인 건 아니다. 아직은 외부에서 봤을 때 변화가 미흡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동아일보 기자는 “3개월 전 지면이나 편집방향이 달라졌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3월에는 인사검증 이슈가 드러났던 것이 지금은 다른 이슈가 있어서 부각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편집국장·부장이 달라지지 않았다. 큰 기조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운 적은 없다. 지난 5년 간 이명박 정부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전과 같은 검증보도를 하니 각을 세운 것처럼 비춰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기자들 “특별히 편집방향 달라진 건 없다… 인사검증은 원래 동아일보 강점” 
 
채널A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기자들이 불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력의 절반이 동아일보에서 파견된 기자들이다. 그쪽이 인력이 빡빡하다 보니 그런 실수가 나오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 기자는 “최영훈 편집국장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한 번에 변화가 어렵다는 판단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발간한 동아일보 노동조합 기관지 '동고동락'.
 
동아일보 노동조합이 6월 펴낸 ‘공정보도위원회광장’에선 보도편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았다. 동아일보 노조는 전문가 및 동아일보 기자 인터뷰 결과를 공개하며 “대부분의 답변자들은 몇몇 특정 기사가 문제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지면에 정파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며 “개별 기사 수준에서는 오류가 없어도 한쪽 진영에 유리한 기사는 크게, 불리한 기사는 작게 쓰는 편향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노조는 “특기할 사항은 전문가그룹 독자들이 최근 1년 동안 동아일보가 크게 바뀌었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일부 인사들은 이런 변화에도 숨은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며 전폭적인 지지는 유보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최영훈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노조에게 “중간층의 지지를 받는 합리적 보수가 돼야 한다는 게 개인 생각”이라며 “정치권력뿐 아니라 재벌로 상징되는 대기업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장경제 자체나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비판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아일보 노보에 따르면 한 편집국 조합원은 동아일보의 미래를 위한 방안으로 “조중동, 보수매체라는 틀이 아닌 동아일보만의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도 “조중동 중의 하나가 아닌 동아일보를 내세우고 싶다”고 밝혔다. 또 다른 편집국 조합원은 “매일 같이 자기 검열을 한다. 두려움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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