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클리어쾀을 이르면 오는 9월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클리어쾀은 셋톱박스 없는 디지털 케이블TV를 말한다. TV 안에 셋톱박스 기능을 내장해 케이블만 꽂으면 바로 방송을 볼 수 있게 된다. 미래부는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디지털 케이블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허용해달라는 케이블 사업자(SO)들의 요구를 수용할 계획이다.

이재범 미래부 디지털방송정책과 과장은 19일 전파진흥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워크샵에서 “지상파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저소득 계층에게 전환 비용을 지급했는데 지상파 직접 수신이 안 돼서 케이블 방송에 가입한 가구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에머물러 있다”면서 “어디는 지원하고 어디는 지원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이르면 오는 9월 클리어쾀 서비스 시행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따르면 4월 기준으로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가 2407만명, 이 가운데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는 941만명, 39.1%에 이른다. 한상혁 케이블TV방송협회 미디어국 정책팀 팀장은 “해마다 평균 84만명씩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완전한 디지털 전환까지 10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이 가운데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전환을 지원한다면 16만명 정도가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클리어쾀이 SO들에게는 아무런 수익이 안 된다”면서 “지원 대상이 많아봐야 16만명 정도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다른 유료방송에서 빼앗아 오는 게 아니라 가장 늦게까지 아날로그 케이블에 남아있을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한 팀장은 “심지어 디지털 케이블의 리모컨이 쓰기 어렵다면서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사람들까지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추이.
 
미래부는 케이블 디지털 전환을 위해 클리어쾀 도입과 함께 저가 디지털TV를 대량 보급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미래부 이재범 과장은 “클리어쾀은 기술 표준이 아니라 딱히 막고 있는 법은 없다”고 밝혔지만 유료방송 업계에서는 지난해 12월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특별법이 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유료방송 업계에서 클리어쾀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소득 계층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을 저가 디지털 케이블로 유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IPTV나 위성방송을 선택할 수도 있을 텐데 이들을 케이블에 붙잡아둔다는 이야기다. 클리어쾀이 양방향 서비스나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를 지원하지 못하는 짝퉁 디지털 방송이라는 비판도 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신중현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부장은 “저가 유료방송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면서도 “저소득층 지원이 명분이라면 기초생활 수급자로 한정하고 채널도 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지상파와 공익채널, 보도·종편 채널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부장은 “디지털 케이블 전환 뿐만 아니라 IPTV와 위성방송으로 전환도 동시에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SO를 대표하는 케이블TV방송협회와 유료방송을 대표하는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클리어쾀의 지원 범위와 채널 구성 등을 놓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케이블TV방송협회 한 팀장은 “아날로그에서 24개 채널을 보다가 클리어쾀 한다고 하면서 50% 싸게 해줄 테니 13개 채널만 보세요, 그런 조건을 어느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겠느냐”면서 “아무리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그렇게 굴욕감을 줘도 되느냐”고 반문했다.

노준배 KT스카이라이프 대외협력팀 팀장은 “위성방송은 SD 가입자를 HD 가입자로 전환해야 하는데 엄청난 비용 투자가 필요하지만 정부에 손을 벌리지는 않는다”면서 “UHD 방송에 몇 천억원을 투자한다고 하면서 그 돈으로 가입자 지원을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노 팀장은 “저소득층에게 케이블 뿐만 아니라 IPTV나 위성방송으로 옮겨갈 수 있는 매체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부 이재범 과장은 “김장실 법의 두 가지 함의는 첫째, 아날로그 케이블을 종료하려면 시청권을 보호해야 한다, 미래부 장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과 둘째, 클리어쾀을 도입할 때는 저소득층에 한정해서 제공해야 한다, 채널 구성과 운용을 대통령령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케이블TV방송협회 한상혁 팀장은 “클리어쾀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클리어쾀을 하지 말라는 법적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래부는 이날 클리어쾀 도입을 공식화했다. 김장실법과 클리어쾀은 무관하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 김장실법 통과 이전에도 클리어쾀을 강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래부가 지상파 디지털 전환 이후 무료 보편적 시청권 확대보다는 유료방송의 점유율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클리어쾀 도입 의지가 굳건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워낙 업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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