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제 65주년 제헌절을 맞아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에 맞서 전국적으로 국정원 규탄과 대통령 책임촉구 시국선언 및 기자회견이 줄을 잇고 있는데 반해, 정작 헌법수호의 책무가 있는 대통령이 공식 행사 및 저녁 행사 뿐 아니라 ‘헌법’ ‘민주주의’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17일 국회 사무처 주관으로 국회에서 개최한 제65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통해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내년부터는 개헌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제헌절 ‘개헌’론을 폈다.

이날 행사에서 행정부를 대표해서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참석했으며, 박 대통령은 축사 대독이나 별도의 전달말씀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배성례 국회의장 대변인은 17일 “통상 다른 국경일 의전 때는 행정부에서 주관하고 참석과 축사를 국가서열 1위인 대통령이 하지만, 제헌절 의전의 경우 국가서열 2위인 국회의장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참석 자체를 안한다”며 “대신 행정부 대표로 총리가 참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임 첫 제헌절인데다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가 요구되는 시기에 대통령이 참석은 못해도 아무런 관련 말씀을 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일과시간 내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화 청와대 춘추관장은 17일 오후 일과시간이 끝날 무렵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원래 예전에도 제헌절에 대통령이 행사 참석을 안한 것으로 안다”며 “오늘 전혀 그런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제1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
 
최 관장은 “오늘 (관련행사를) 안한다는 얘기만 들었다”며 “저녁 행사도 없고 말씀도 없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취임 첫 제헌절을 맞아 대통령은 가만히 있고, 강창희 국회의장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형국”이라며 “헌법수호 책무가 있는 대통령이 왜 취임 첫 제헌절에 왜 아무 말도 안하느냐”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통상 대통령이라면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재확인하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이 어떻게 가야할지 방향을 얘기하면서 포부와 비전을 밝혀야 한다”며 “이를 안했다 해서 비난까지 할 수는 없겠느나 이는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취임 첫 제헌절에 아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 의원은 “논란이 있는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으려는 포석이 아닌가 한다”며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굵직한 국가적 현안, 미래 비전 제시에 대한 언급은 일체 안하는 반면, ‘귀태’ 발언과 같이 부친에 관한 말이 나올 때만 말을 한다. 정치이슈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지 않는 대통령은 역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제1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
 
헌법유린으로 지적받고 있는 국정원댓글사건에 자신이 책임을 요구받고 있으니 답하기 곤란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고 우 의원은 전했다.

이에 대해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제헌절 행사는 이미 1988년 정부에서 국회로 행사주체가 넘어간 이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일도 없으며 이는 입법기관인 국회를 존중한다는 의미”라며 “헌법가치를 지켜야한다는 것은 꼭 제헌절이 아니어도 취임식에 이미 선서까지 하면서 지켜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제헌절에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민주주의, 헌법’ 언급이 없다고 이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자꾸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굴절되게 보려는 것과 같다”며 “그럼 제헌절을 다시 정부행사로 바꾸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헌법유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국정원선거개입 사건에 빗대어 언급하기 곤란한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김 대변인은 “어떻게 그런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느냐”며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으로, 특별히 말을 안해도 늘 그렇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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