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이동통신인 LTE(4세대·롱텀 에볼루션) 보다 데이터 속도가 최대 2배 빠른 LTE-A(어드밴스드) 시대가 열렸다. 이동통신사들은 3세대(3G) 보다 10배 빠르며, 가정에서 사용하는 유선 광랜(100Mbps)보다도 전송속도가 50Mbps 더 빠르다고 홍보하고 있다.
 
무선이 유선 보다 빠른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음성통화 위주인 2세대(2G)를 고수하는 이용자들이 있다. 대부분 011·016·017·018·019 등 전화번호 앞자리가 ‘01X’인 이용자들이다. 이들은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전화번호를 고수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인 김아무개(25)씨는 피쳐폰을 사용하고 있다. 01X 번호 때문이다. 화려한 스펙의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친구들은 김씨를 모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김씨는 피쳐폰을 바꿀 생각이 없다. 자신의 번호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김씨는 "2G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내 전화번호를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서 "왜 정부의 방침에 따라 내 전화번호를 강제로 바꿔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처럼 일부 이용자들은 010으로 전화번호 앞자리를 통합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를 구성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하는 등 01X 번호 사수 활동을 펼치고 있다.
 
   
▲ '010 통합반대 운동본부' 네이버 카페
 
이동통신3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01X 번호 이용자들은 272만명이다. 이중 3G, LTE에 가입해 올 연말 010으로 번호가 전환되는 것에 동의한 이용자들은 144만명이다. 나머지 128만명은 01X 번호를 고수하며 2G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국내 이통통신 가입자가 54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2.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이유로 01X 번호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송길용(60)씨는 16년째 016 전화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1999년 실종된 막내딸 송혜희(당시 송탄여고 2학년. 현재 30)씨에게 연락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송씨는 지난 15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전단지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설치하는 등 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에겐 현재 전화번호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끈이다. 게다가 이 번호는 1998년 혜희씨와 언니가 아버지의 생일선물로 개통해준 전화번호다. 송씨는 "혜희가 언제 이 번호로 전화를 할지 모른다"면서 "내 목숨이 끊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전화번호를 바꿀 순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 번호로 2, 3일에 한 번꼴로 제보 전화가 오고 있다.
 
사업상의 이유로 01X 번호를 고수하는 이용자들도 많다. 대구에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김창호(41)씨의 휴대전화 번호는 011으로 시작한다. 1992년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휴대전화를 개통해서 받은 전화번호를 22년째 이용하는 것이다.
 
김씨는 이 번호가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긴급하게 자동차 부품을 주문할 때, 처음 거래하는 경우라도 011 번호를 사용하면 입금 전이라도 부품을 선 발송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업용으로 011 번호를 사용하면 최소 10년 이상 사업을 했다는 걸 증명하기 때문에 신뢰를 받는다는 얘기다.
 
이들은 01X 번호를 사용하기 위해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신기술을 거부하는 괴짜'라는 주변의 시각과 더불어 더이상 2G용 단말기가 출시되지도 않는다. 또한 정부의 통합 정책에 따라 2004년부터 신규 가입자는 010으로만 휴대전화을 개통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소수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오랜만에 2G 휴대전화 ‘와이즈Ⅱ 2G(WISEⅡ 2G, SHC-Z160S)’를 출시했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미국에서 팔리는 2G 스마트폰을 개별적으로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조아무개(35)씨는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삼성전자 '갤럭시 S3'를 사온 후 국내 통신사에 별도 등록해 사용하고 있다.
 
조씨는 "미국에서 팔리는 스마트폰은 2G, 3G, 4G(LTE)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막기 때문이지 기술적으로 한국에서 팔리는 스마트폰이 2G망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국내 2G망으로 이용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환경에 맞게 일부 코딩을 수정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일부 단말기는 한국 내 단말기와 일련번호가 겹쳐 통신사에 등록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또 일부 01X 이용자들은 '데이터 쉐어링' 요금제를 이용하기도 한다. 2G망을 쓰는 피쳐폰은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용으로 사용하고, 데이터 쉐어링으로 추가 구매한 유심(USIM)을 공 단말기인 스마트폰에 넣어 데이터 통신용(카카오톡, 인터넷 등)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2G와 3G, LTE에 2번 가입하는 통신요금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물론 그냥 010으로 번호를 바꾸고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복잡하고 번거롭다.
 
여러 이유로 01X를 고수하는 이들은 정부의 010 번호 통합정책은 번호 이동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010으로 통합하기 위한 공권력 행사는 01X 이용자들의 재산권, 인격권, 행복추구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01X 이용자는 “01X 번호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통신사 입장에선 10년 이상 사용한 장기 고객인데 통신사에게도 버림받았고, 정부도 강제로 전화번호를 통합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전화번호를 물려받아 사용 중인 B씨는 "피쳐폰, 태블릿 PC, 에그를 모두 들고 다녀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다"면서도 "그 번호를 없애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헌법소원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합헌이 되더라도 어차피 01X 번호는 통신사 망 유지에 따라 2018년까지는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적인 문제로 01X번호가 3G, 4G를 쓸 수 없는 게 아니므로 그 때까지 자유롭게 01X 번호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