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태 릴레이 기고>
나는 왜 한국일보 기자들의 싸움을 지지하는가
- 조희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쫓겨난 한국일보 기자들, 그들은 기사를 써야 한다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국일보 기자들이 치열하게 써 낸 기사를 다시 보고싶다
- 한유주 소설가
“지켜보는 것만으로 기자는 많은 것을 지킬 수 있다”
- 육상효 영화감독
아, 한국일보!
- 손택수 시인·실천문학사 대표
사주 비리에 눈 감지 않은 ‘참 좋은 ’기자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창문 앞에는 무성한 은행나무가 있다. 아직 7월인데 은행 열매가 매실처럼 달려있다. 가을이 되면 저 열매는 황금색으로 변하겠지…. 법원이 한국일보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선 이제 한시름 놨구나 싶었는데, 내막을 알고 보니 정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온 몸에 기가 막혀 가슴이 답답했다. 울화통이 터지기 일보직전인데, 은행나무가 장맛비에 흔들린다. 비바람이 불어 심하게 흔들린다. 우두커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천둥번개가 친다. 
 

법원 결정 이후, 한국일보 사태를 정리한 문건을 보면서 이런 일이 언론사에서 벌어진다는 게 실망을 넘어서 절망스러웠다. 참, 세상은 이렇게도 굴러가는가 싶었다. 법원의 결정으로 편집국의 문은 열었지만, 사측은 기자들이 신문 제작은 하지 못하게 하는 꼼수를 두고, 기자들은 여전히 책상 앞에서 농성을 하는 형국이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오늘도 우리 집에 배달된 신문은 ‘짝퉁’이다. 구독자들이 모두 모여서 고소를 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일보 모든 독자들이 진짜 한국일보를 보고 싶다고 길거리로 나서야 되나? 이런 질문을 한국일보 사주에게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혹시 “그럼 다른 신문 보세요”라고 할까? 가끔 신문의 1면에 실리는 말도 안 되는 변명 글을 보면서,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인지 염려스러웠다. 이런 사정을 대학생이 된 딸에게 설명하니 딸은 “헐, 미친 거 아냐?”라고 답한다. 경영 파탄의 책임자가 반성을 하고, 지금이라도 신문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법원의 결정으로 잠시라도 마음을 놓았던 내 모습이 초라하다. 
 
문제의 본질은 너무나 간단하다. 경영 정상화를 하는 방법 또한 단순하고 명료하다. 사주가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한국일보는 지금 기자들의 문만 닫은 것이 아니라, 사주를 비롯한 그 호위병들 역시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작금의 한국일보 제작은 한국일보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는 것은 타인을 대하는 오만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약속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편법과 폭력으로 우리 시대의 정신을 유린하는 이 같은 모습은 미성숙한 자폐증상을 만천하에 펼쳐 보이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편집국의 문이 용역에 의해 무력 봉쇄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 번 한국일보사를 찾은 적이 있다. 세든 건물의 로비 바닥에 앉아 있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았고, 옛 한국일보 자리를 찾기도 했다. 뭐라고 적어야 할지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했다. 운전자들이 길거리에서 멱살을 쥐고 싸우며 ‘쌍욕’을 내뱉는 광화문 골목길을 지나면서는, 차라리 저렇게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어댄다면, 잠시 후 부끄럽기는 하겠지만, 속이라도 시원하겠지 싶었다. 

   
▲ 9일 오후 3시 10분경 언론노조 한국일보 지부 조합원들이 24일여만에 편집국에 들어서고 있다.
@이치열
 
 
서로의 입장이 다른 일은 유치원에서부터 재벌기업에 이르기까지 비일비재하다. 한국일보가 빨리 정상적인 신문 제작을 하기 위해서는 단 한 사람의 마음만 움직이면 될 것이다. 현재 종이신문의 길은 지난하다. 빨리 난국을 타개하고 한국일보 기자들의 편집국이 농성의 현장이 아닌, 신문 제작의 현장으로 되돌아가길 바란다.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자가 갑이고, 사주가 을이다. 사주는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신문을 보기 바란다. 다른 신문과 비교해서 보기 바란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다른 신문을 가판대에서 구입해서 보았다. 이런 일이 더 이상은 없기를 바란다. 기자는 활자이며, 기자는 지면이다. 그것을 무참하게 밟고 서서 무슨 부귀영화를 탐한단 말인가! 
 
한 원로출판인의 말을 떠올린다. “사업을 하건, 글을 쓰건, 서두르지 말고 원칙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인생은 짧고,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멀어요. 허허.” 이 말은 최근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갈 길이 멀고, 쓸 것도 많다. 그런데 시간은 짧다. 이 어려운 시대에 적어도 신문만은 서두르지 말고 원칙을 지키면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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