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 오랜만에 만난 형이 불혹의 끝자락에 있다는 말에 흠칫 놀랐습니다. 수습기자 시절을 기억하며 노상 젊은 후배로만 여겼기에 이형의 나이가 도통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장대비가 쏟아졌지요. 막걸리와 모듬전 앞에서 세월이 바람과 같다던 이형은 왜 젊은 기자들에게만 편지 쓰느냐고 힐난했지요. 공연한 변명이 아니라, 내심 형에게도 편지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리워서였지요. 다만 더 구체적 계기는 한국일보 기자들이 애면글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입니다. 특히 이형처럼 20년 넘도록 취재현장을 눈부시게 뛰던 후배를 오랜만에 만난 순간 먹먹했거든요. 성실한 언론인으로 살아온 그가 왜 사주의 몰상식 때문에 지쳐가야 하는지 새삼 분노가 일었습니다.

우리가 지켜보았듯이 사주의 편집국 폐쇄는 보수적인 법원도 지지할 수 없을 만큼 생게망게한 일이었지요. 법원이 해제 가처분 결정을 내리자 그때서야 사주는 편집국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눈 감고 아옹’입니다. 복귀한 데스크와 편집기자들이 신문을 만들 수 없도록 접속을 막더군요. 이미 기자들 투표에서 거부당한 ‘편집국장’ 지시에 따라 신문을 만들라는 강요 또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입니다. 사주와 기자들이 합의한 편집강령을 정면으로 짓밟는 작태이지요.

언론개혁 진영 붕괴와 한국일보 참극

이미 1년 전, ‘광고 수주 부족’이라는 해괴한 이유로 편집국장에서 해임된 이충재 논설위원은 언론정보학회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문제의 핵심을 날카롭게 제기했습니다. “한국일보 사태는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아무리 잘 만들어놔도 사주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한 그는 사주의 전횡을 막을 “강제적이고 실질적 수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기실 정곡을 찌른 말이지요. 바로 그렇기에 언론개혁에 나선 사람들은 편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입법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을 모두 쥐고 있었는데도 “편집규약을 제정할 수 있다” 따위의 있으나마나한 입법에 그치더군요.  편집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입법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모르쇠 했고, ‘누더기 입법’ 과정에서 언론개혁 진영은 분열되었지요. 이명박 정권이 국회까지 장악한 같은 조건에서 조중동에 아예 방송을 ‘선물’하는 ‘파격 입법’을 강행한 사실에 견주면 대조적입니다. 

언론운동은 분열로 힘을 잃어갔고, 결국 편집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입법 움직임은 한국일보의 참극 앞에서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 정치는 물론 한국 언론의 미래에 ‘값싼 낙관’을 건네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형. 그럼에도 저는 ‘한국일보 싸움’에서 ‘값진 희망’을 발견했답니다. 형이 잘 알다시피 저는 엉뚱할 만큼 종종 눈물 글썽이는 먹물이지요. 2012년에 입사한 17개 언론사 기자들의 공동성명을 읽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눈시울 흠뻑 적셨습니다. “소속 언론사의 이념과 성향을 떠나 연대”한 젊은 기자들은 “우리가 존경하는 모든 선배기자들이 눈앞에 엄존하고 있는 언론 탄압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불의와 마주쳤을 때 눈 감거나 침묵하지 않고, 더욱 당당한 태도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기자정신의 본령이라 믿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어 2011년에 입사한 8개 언론사 ‘막내기자’들도 동참했지요.

이형. 물론, 희망만 말해선 안 될 때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젊은 기자들이 선배들에게 침묵하지 말 것을 촉구했지만 그 기개를 받아 안지 못하더군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자정신의 본령에 호소한 아래로부터의 ‘젊은 움직임’이 왜 2011년, 2010년, 2009년 기자들로 올라가지 못했는지 그 까닭을 면밀하게 성찰해야겠지요. 보수적 사법부조차 옳지 못하다고 결정한 사주의 횡포를 비판하는 데 곰비임비 나서는 걸 대체 누가 가로막았을까요.

이형. 빛나던 형의 얼굴에도 오십으로 몰아가는 세월의 바람이 흔적을 남겼습디다. 우리가 기자로서 젊음을 바친 곳, 그곳에 엄존하고 있는 권력 앞에 기자란 대체 무엇일까요?

‘막내’들의 기개 꺾이지 않도록

그런데 이형, 과연 그 권력 탓만 해도 좋을까요. ‘막내 기자’들의 바로 위 기자들로 성명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가 과연 사주 때문만 일까요? 기자로서 우리의 순수성, 수습기자 시절의 푸른 뜻을 시나브로 잃어온 것은 아닌지요. 더러는 포악하지만 달콤한 사주로, 더러는 패거리들의 ‘줄 세우기’로 기자를 기자답게 하는 고갱이 ‘기자 정신’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어온 것은 아닌지요. 기자 2년차로 넘어가면서 내면의 속살에 짙은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면, 정말이지 우리 언론에 내일이 있을까요?    

권력이 기자들 내면까지 이미 깊숙이 들어가 똬리틀고 있지 않은지, “존경하는 선배들”이 나서주기를 촉구했던 ‘막내 기자’들이 혹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지 ‘기우’에 잠기기도 합니다.

이형. 저와 형이 젊음을 바친 곳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용기 있게 나선 각 언론사 ‘막내’들,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저 기개 꺾이지 않도록, 남은 나날 우리 조금 더 뜁시다. 조금 더 가슴 열어갑시다.


(언론인·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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