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삼성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은 14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은수미 민주당 의원 등도 참석해 지지를 표했다.

비가 오늘 궂은 날씨에도 이날 회의장은 전국 각지에서 온 400여명 조합원의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이들은 “위장도급 불법파견 삼성을 규탄한다” “배고파서 못살겠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직접고용 쟁취하자 민주노조 사수하자” 등을 외쳤다. 이들의 남색 셔츠에는 흰색의 ‘SAMSUNG(삼성)’로고가 선명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온 이아무개(35)씨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에서 2년간 근무했다. 여름이면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하기도 하지만 월급은 채 150만원이 안 된다. 그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다 일하는 셈”이라면서 “그래도 월급에서 기름값 밥값 빼면 최저임금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 것 같다”며 “월차 연차 개념도 없고 쉰다고 이야기를 해도 일을 못하는 사람이면 쉬지 못하게 한다”면서 “오늘도 두 명이 더 오려고 했는데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혼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이 월급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요? 못하죠” 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산다.

   
이하늬 기자 hanee@
 
남성들이 대부분인 행사에 하늘색 옷을 입은 여성노동자 몇몇이 보였다. 이 날 오전 지역에서 동료들과 함께 서울로 온 유아무개(30)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서클렌즈를 낀 모습이 한 눈에도 앳되보였다. 유씨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휴대폰을 수리하는 기술자다.

유씨는 “일을 시작한 지는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신문 등을 통해서 보니 다 맞는 말이고 실제로 휴가나 업무 쉬는 시간 등에서 부당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씨는 “여기 오니 모두 단결되는 것 같아서 좋다”며 “회사의 압박은 고려해보지 않았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옳은 이야기니까 잘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날 총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된 위영일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은 개회사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원청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릴 때 우리 협력업체 직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피울음을 삼켜야 했다”면서 “삼성전자서비스는 일을 시킬 때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 치켜세우다, 법적 책임을 지는 일에는 너희 회사에다 요청하라며 가족을 부인했다”며 비판했다.

위 위원장은 “여기에 선 우리들은 금속노조를 통해 한뜻으로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창립하고 삼성봉건왕조에서 벗어나 노동조합을 통해 대한민국이 헌법으로 보장하고 노동법으로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삼성전자서비스에게 요구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날 조합원 뿐만 아니라 노조 창립을 지지하는 이들이 참석해 연대의 뜻을 보였다. 행사장 입구에서 “학생들도 지지합니다”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던 ‘학생변혁모임’ 이아무개(이화여대·20)씨는 “학내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 청소노동자가 학교를 위해 일하지만 용역으로 고용한다. 삼성이라는 거대자본, 일은 다 부려먹으면서 삼성직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등의 최소한도 지켜지지 않는 것에 분노해서 오게됐다”고 말했다.

은수미 의원은 지지발언에서 “삼성이 방해한다는 문건을 보고 조금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면서 “돈돈돈하는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걸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날 오전 은수미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전자서비스가 고액수당으로 주말 특근을 유도해 노조 설립총회를 무산시키는 방안을 사전에 모의했다"고 밝히며 관련 이메일을 공개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경영방침을 무노조로 정하는 그런 회사가 어디있나”라며 “삼성은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을 깡그리 무시하고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그런 불법적인 삼성그룹 75주년 무노조에 맞서 여러분이 민주노조의 깃발을 힘차게 꽂았다”며 삼성서비스노조를 지지했다.

양성윤 민주노총 비대위원장 또한 “이처럼 설렌 적이 없었다, 소풍가기 전날의 기분”이라며 “75년만에 드디어 무노조 경영의 벽이 깨졌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삼성을 “오늘 근무를 하면 5만원에서 10만원 더 준다는 저 천박한 자본”이라고 비판하며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간접고용노동자, 비정규노동자에게 큰 영웅”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총회에서는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라두식 수석부지회장·신장섭 사무국장 등이 노조 지도부로 선출됐다. 라두식 수석부지회장은 “우리는 최고의 기술 가진 기술자”라며 우리 기술자의 자존심을 반드시 돌려놓고 싶다“고 결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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