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이 입소문을 타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94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후 일본세대의 우울한 세계관을 반영하면서도 미래세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작품으로 전 세계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2008년 <벼랑위의 포뇨>까지 총 10편의 애니메이션을 감독했다. <붉은 돼지>를 제외한 작품의 주인공은 어린이며, 여성이다. 세상을 바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주체로 기성세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선 민족도, 국경도 없으며,신비로운 마법과 현실이 공존하며 자연이 살아 숨쉰다.

그의 작품은 종종 급진적 생태주의에 기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학시절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던 그는 몇몇 인터뷰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했다. 그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고 나무를 심자는 주장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 또는 세계의 ‘정화’를 원했고, 이는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스로가 영화의 콘텍스트였다.

   
▲ 최근 출간 된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좌)과 반환점(우). ⓒ대원씨아이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최근 한국에 번역 출간된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1979-1996>과 <미야자키 하야오 반환점 1997-2008>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연구를 위해 유용한 자료다. 지금껏 그가 썼던 글과 인터뷰·강연·영화 기획안 등이 1000여 쪽에 걸쳐 소개됐다. 책에서 드러난 그의 비판의식, 행복, 아름다움, 지향점, 분노는 곧 나우시카와 모노노케의 눈빛이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가진 자체,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79년 월간 <에혼>에 실린 글에서 “인간은 태어나 세상에 나올 때 다른 시대에 태어날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늘 공상의 세계에서 놀게 된다. 잃어버린 가능성을 향한 동경이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원동력이다”라고 말했다. 상상력이 없는 사회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공상과학만화는 필연적인 결과물인 셈이다.

감독이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기계에 종속되어 있다”며 메카닉물에 비판적인 점은 흥미롭다. 그는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메카닉물에 집중하는 후배들을 가리키며 “이 세계에 뛰어들기 전 이것저것 공부해 사물을 보는 법이나 사고방식을 다졌으면 한다. 자신만의 이미지로 비행기를 날리려면, 비행기에 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라”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가진 자체,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지만, 정작 뭘 해야 할지 모르며 살고 있다. 감독은 그런 관객을 떠올리며 “우리는 풍요 속 빈곤의 사회를 살고 있다. 내게 있어 작품의 토대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떠도는 사람들에게 기운 내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천공의 성 라퓨타'(1986)
 
1985년 <시네 프런트> 기고글에선 좀 더 적극적으로 ‘토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술운동으로서 애니메이션을 할 생각은 없고, 독립영화 형태로 문제를 제기할 생각도 없다. … 다만 나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나 분배의 문제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겠다는 것을 기본으로 일하려고 한다.” 그렇게 작품에는 자본주의 모순과 해방의 철학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절망적이었다.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를 두고서는 “우리의 일은 썩어버리고 말았다. 도쿄에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끈질기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나의 분열은 관객도 해방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멍에와 같다. 버텨갈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내 출발점으로 몇 번이라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1988년 <일본영화의 현재>에 실은 기고글에서 “관객이 일상에 꽁꽁 얽매여있거나 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해방되어 우울한 감정을 분출하고 생각도 못했던 동경과 순수함과 긍정을 자신 안에서 발견해 조금은 기운차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통속작품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들이 균형을 이뤄 지금의 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

“안이하게 희망을 얘기할 순 없다”

   
▲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철학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생태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나무 한 그루에도 그 안에 함께 기생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그는 돌멩이와 바람에도 인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애니미즘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생산력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 기인한다.

돌멩이에도 인격이 있다고 생각해야, 생산력주의에 의한 자연파괴를 멈추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 그는 1994년 7월 기고글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줄거리를 두고 “애초에 자연이 사람이 오염시킨 환경을 회복하려고 부해를 만들어 내거나 어떻게든 해줄 것이란 건 거짓말이다. 목적적인 생태계는 있을 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안이하게 희망을 얘기할 순 없다. 희망이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생하는 것”이라 밝혔다.

그의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모순을 넘어 민족의 문제, 전쟁의 문제, 지구평화의 문제로 이어졌다. 그 결과 나무와 바람이 살지구사회가 행복하기 위해선 인간문명이 절멸하거나 또는 인간이 나무와 바람을 동반자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게 된 것 같다.

1988년 간행물 <세계>에 적힌 내용을 보자. “나는 어느 샌가 일본을 싫어하는 청년이 되어있었다. 전쟁기록물을 읽으며 기분 좋은 승리담의 뒷면에 숨겨진 일본군의 어리석은 면에 깊이 낙담했다. 나의 싸구려 민족주의는 열등감으로 바뀌었다. 중국과 한국, 동아시아를 향한 죄의식에 전율하며 내 존재 자체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경했던 스위스의 농촌에서 나는 짦은 다리를 가진 동양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책이 있었다. <재배식물과 농경의 기원>이었다. 그는 책을 읽으며 “국가도 민족도 역사도 발끝 아래로 멀어졌다. 내가 무엇의 후예인지를 알려주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 지구사회를 통찰했다. 그는 물질문명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병도 운명으로 감수하고 70세까지 사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집을 짓고 30년이 지나면 더 좋아지는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그는 1985년 아사히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물질문명이 정점까지 왔다. 인간사회가 바란 것은 기아나 병이나 빈곤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걸 위해 강을 더럽히고 땅을 파며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업보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 다른 철학을 손에 넣지 않는 한, 같은 실수는 무제한으로 반복 될 것이다. …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수가 늘어나고 많은 걸 소비해 환경을 악화시키는, 낳아준 엄마를 마치 암세포처럼 갉아 먹어가는 것이다.”

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티브가 일본 미나미타현의 환경파괴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미나미타만이 수은으로 오염돼 죽음의 바다가 됐다. 인간들은 고기잡이를 그만뒀다. 몇 년이 지나자 미나미타만에는 물고기떼가 몰려오고 바위엔 굴이 엄청나게 붙었다. 등골이 싸늘해지는 감동이었다.”

사람도 짐승도 나무도 물도, 모두 동등하게 살아가야…“희망은 아이들에게 있다”

그의 사고방식은 진화해간다. <모노노케 히메> 개봉 이후인 1997년 한 인터뷰에선 “자연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지브리라는 이상한 브랜드화를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언론이 떠드는 것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이었다. 

   
▲ '모노노케 히메' (1997)
 
그는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생물들은 인간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 무시무시한 저주를 품어 재앙신이 된다. 그런 생물들의 참을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문제는 콘크리트 위에 사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니까 남겨두자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지 않아도 남겨두자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997년 또 다른 인터뷰에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인간은 업보가 많은 생물이란 사실을 전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 판단하게 된다. 사람도 짐승도 나무도 물도, 모두 동등하게 살아갈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구상의 생물들 중 가장 추한 생물은 인간”이라 밝히기도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계적 흥행을 한 2001년의 한 인터뷰에선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부추기는 인간욕망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하며 “우리에겐 모두 가오나시가 숨어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오나시는 말한다.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 나 더 갖고 싶어 / 이거 필요해? 이거 갖고 싶어? / 그것 봐, 갖고 싶잖아 / 줄게 다 줄게 / 외로워, 그러니까 먹고 싶어 / 먹고 싶어, 먹고 싶어.”

그는 2002년 인터뷰에선 “대량소비문명은 30년 정도 이어질 것이다. 대혼란이 일어나 병도 전쟁도 많이 일어날 것이다. 큰일이지만 대량소비문명이란 불쾌한 것이 끝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희망을 덧붙인다.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으면 어른들의 얼굴도 온화해진다. 세계가 재밌다고 생각하면 호기심을 갖고, 어른들로부터 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만큼을 알지 못하면 안 된다고 들으면, 정말 그런 줄 안다. … 나는 아이들한테는 절망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는 1982년 6월의 한 강연 자리에서도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세계를 어른들이 노골적으로 상품화해가는 것이 현실”이라 개탄하며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어른들의 물신성이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1992년 6월 센다이 하치만 초등학교 강연에서 “일본 열도의 태평양판이란 맨틀이 1년에 3센티 움직입니다. 계속 보고 있어도 절대 보이지 않겠지요. 혹시 여러분이 천 미터 높이의 생물로 수명이 100만 년이라면, 맨틀이 움직이는 것이 보일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바라고 있었다. 

   
▲ '이웃집 토토로'(1988)
 
그는 2008년 5월 쓴 글에서 자신을 두고 “분노, 증오, 그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의 배 이상으로 강하게 가진 인간”으로 소개한다. 그는 늙음을 잿빛 세계로 표현하며 “삶이 번거로워졌다”고 냉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끈질기게 다시 말했다. “아이들은 그냥 재미없는 시시한 어른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나 희망입니다. 좌절해가는, 희망의 영혼입니다.” 해방을 위한 답은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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