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게시판에는 인사발령장이 하나 나붙었다. ‘인사발령, 김재호, 명 기획실 정규사원.’ 한 사람만 달랑 방이 붙은 것이 이례적이기도 했지만 이 방을 보는 동아일보 사원들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았다. 동아일보 김씨 가문의 4대가 입성하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김재호씨(31)는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의 장남. 동아일보 내부에선 이미 2년전부터 설왕설래하던 김씨의 경영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김재호씨는 경복고를 졸업, 미국 보스턴대학(경영학)을 거쳐 테네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91년 귀국 후 11월 금성사에 입사해 1년간 기획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1년동안 일본어 어학연수를 받았던 김재호씨는 동아일보 입문에 앞서 아사히신문에서 10개월에 걸쳐 ‘신문수업’을 받기도 했다. 김재호씨는 일단 기획실로 발령 받았지만 기자직으로 채용됐다.

편집국으로 발령이 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기획실로 먼저 발령이 난 것은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와 함께 터가 센 편집국 발령에 앞서 타 부서 근무를 통해 사내 분위기를 먼저 익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 주변의 분석이다. 그는 내년 1월까지 약 6개월간 출판, 광고, 판매, 제작 등 회사 각 부서를 순환 근무한 다음2월부터 편집국에서 정식 기자로 근무하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재호씨는 평소에도 기자직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내보인 <동우>지 8월호에 게재된 아사히신문 연수기에서 김씨는 가장 좋았던 경험으로 고베 지진 후 고베 현장을 두 차례 방문. 취재한 것을 들고 “처음 쓴 사건기사가 아사히신문에 실렸을 때 가장 설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김씨의 기자직 발령에는 김병관 회장의 의중이 더 크게 작용했으리라 관측이 많다. 광고국과 판매국 수업만 받았던 김회장의 기자직에 대한 미련도 그렇지만 앞으로 신문사 경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편집국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판다니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이다.

김씨의 입사에 대한 동아일보 사내 반응은 담담하다. 적극 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후계자로 동아일보를 경영할 사람이라면 빨리 들어오는 것이 낫다”는 반응들이다. 또 기자직 발령에 대해서도 “편집국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 언론사를 경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들이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편집국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

기자들의 술자리에서는 ‘그래도 찜찜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하지 않고 편법 특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에서부터 ‘함량 미달의 기사를 쓸 경우 관연 데스크가 지적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우려까지 다양하다.

한 중견기자는 “앞으로 결재를 맡아야 될지도 모를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두고 어떻게 일할지 솔직히 걱정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주변의 조심스런 시선 속에서 경영수업을 하게 될 김씨가 어떤 경험들을 쌓아갈지도 궁금하지만 차세대 경영인과 함께 일하게 될 편집국 풍경이 어떠할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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