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 MBC <라디오 스타>에서 한 출연자(강성진)는 자신이 혈액형이 ‘AA형'이기 때문에 당연히 소심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견해에 대해 전 출연자가 동의했다. 대부분은 ‘A형’이었다. 한 출연자(장호일)는 자신의 A형을 숨겼다. 왜 숨겼을까. 소심하다는 A형의 부정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A형들이 어떻게 연예인을 할까. 어느 조사에 따르면, 한 방송국 아나운서도 A형이 가장 많았다.

이는 혈액형에 따른 혈액형 성격론이다. 시중의 서점에는 많은 혈액형 성격론 관련 책들이 있다. 종수도 예전보다 더 많아지고 내용도 외연을 확장하여 심지어 혈액형 별 음식 섭생론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혈액형 성격론은 이미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이론으로 판명난지 오래다.

이 때문에 학술논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점은 마치 주류 학술계에서도 인정하지 않은 숨겨진 이론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점과 허구성을 언론의 보도뿐만 아니라 다큐, 심지어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차례 다룬 바가 있다. ( 혈액형의 진실, 2006.8.20, 김헌식 ‘혈액형 신드롬 그 실체와 허구’, 2004.11.3. 참조)

A형은 정말 소심한 걸까 … 혈액형 성격론을 신봉하는 대중문화

이렇게 근거가 없는 혈액형 성격론을 믿는 심리적 이유로 꼽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는 이제 광범위하게 알려졌다. 19세기 말 미국의 링링 서커스단 단장 바넘은 신통력으로 이름이 높았다. 사람들의 성격을 정확하게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때론 소심하지만 때론 활달하다고 말했다. 거꾸로 다소 활달하지만 때론 소심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해했다.

   
7월11일 MBC <라디오스타> 화면캡처
 

이는 포럼 효과라고도 한다. 1940년대 말 심리학자인 포러(Bertram Forer)가 성격 진단실험을 통해 증명해 ‘포러 효과’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성격진단 실험을 한 다음 똑같은 성격판정 내용을 전학생에게 똑같이 배포했다. 그러자 87%의 학생이 4-5점의 높은 척도점수를 주면서 지지를 보냈다.

심리학자 미셀 고클링은 신문에 컴퓨터 점괘를 봐준다는 광고를 내고, 150명에게 같은 내용을 주었다. 그 내용은 매우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무려 94%가 찬성했다. 하지만 사실 그 점괘는 악명 높았던 살인자의 것이었다.

사람은 대개 부정적인 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대체적으로 혈액형 성격론에서 사람들이 맞다고 여기는 부분은 부정적인 요인이다. 사람은 긍정적인 점보다 부정적인 요인에 더 신경을 쓰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은 혈액형 성격학에서 말하는 성격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사람은 때론 소심하고 때론 활달하다. 진득하게 하나에 집중하다가도 쉽게 싫증을 내는 게 사람이다. 일관성이 있다가도 때론 제멋대로 이거나 변덕스럽다. 때로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창조적이었다가 너무 개성이 넘쳐나기도 한다. 때론 얌전하다가도 광기를 갖기도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혈액형 성격론은 그 태생부터가 의심스럽다. 혈액형 성격론은 1880년대 독일에서는 우생학적인 관점에서 발생 했다. 칼 란트슈타이너가 1901년 ABO식 혈액형을 만들었고 그 이후 연구한 결과 1910년대 아시아 인종은 B형이 많고, 유럽은 A형이나 O형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인을 낮추고 백인을 높이기 위해 B형을 열등하게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일본인들이 유럽인과 같이 A평과 O형을 강조하면서 혈액형 성격론이 굳어진다. 그래서 B형 성격론은 적은 혈액형이므로 매우 편파적인 측면이 많다. 문제는 B형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태생부터가 의심스러운 혈액형 성격론을 신봉하는 한국 사회

독일에서 유학한 후루카와 다케다가 성격론을 혈액형과 연결시키는데 319명만 조사했다. 무엇보다 1970년대는 일본 방송작가 노미 마사히코가 후루카와 다케다의 논지를 상상력으로 쓴 혈액형 성격론 책이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하면서 일반인의 의식에 남아 있게 되었다. 혈액형 성격 론은 일본에 근거하고 있는 이유다. 과학자나 의사가 쓴 책이 아니었다. 의학계에서는 성격은 성격 유전자나 뇌의 구조에 따라 만들어지고, 혈액 자체에는 성격을 좌우하는 유전인자가 없다고 말한다. 만약 혈액을 바꾼다면 성격이 달라져야 한다.

MBC 다큐 <아마존의 눈물>에서 아마존 지역의 조에족 혈액형은 A형 밖에 없었다. 같은 종족 내에서만 결혼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종족 사람들은 하나의 성격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 페루의 인디오는 모두 O형이었다. 마찬가지로 페루 인디오는 하나의 성격만 있어야 한다. 이런 논지라면 성격 검사 MBTI는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의 성격을 어찌 네 가지 범주로 맞출까. 더구나 확률이 25-50%다. 지난 2월 8월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이민호는 “혈액형은 A형이다. 성격 좋은 O형이라는 소리를 듣고 매력적인 B형 소리도 듣는다”라고 했다.

동북아시아는 B형이 많은데 그렇다면 동북아시아에는 B형 남자의 성격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자유분방한 연애를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혈액형을 잘 못 알아 의기소침했지만 진짜 성격을 알고는 좋은 행동을 보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2004년, MBC <실험쇼 진짜?, 진짜!>에 대해 B형 남자들이 집단 항의 했다. B형 남자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규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MBC는 문제를 인정, 전격 폐지시켰다. 그러나 쉽게 없어지지 않고 더욱 콘텐츠는 많아졌다.

   
7월11일 MBC <라디오스타> 화면캡처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잘 없어 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후천적으로 혈액형 성격론에 맞게 성격이 사회화되어 변하거나 적응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대중매체에서 이런 혈액형 성격론을 확대 재생산한다. 그것은 단지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일수록 강하다. MBC <라디오 스타>도 결국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즉 즐김 유희의 대상이 된다. 그것도 남을 골리는 주제가 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물론 오락 프로, 드라마를 막론하고 이런 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혈액형 성격론 확대 재생산하는 대중매체…방송에서 퇴출시켜야

2012년 3월 31일 방송된 KBS 주말연속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A형 소심성격론이 등장했다. A형이라 소심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2012년 10월 KBS2 주말극 <내 딸 서영이>에선 “나는 A형이라 생각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 의식을 자주 하는 편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2012년 6월 10일 방영된 KBS <해피선데이 ㅡ남자의 자격>에서 혈액형 때문에 김국진은 활달하기 때문에 형인 줄 알았다고 하거나 윤형빈은 A형 성격과 O형 성격이 궁합 면에서 잘 맞다고 했다. 2011년 8월 KBS 2TV <개그콘서트> ‘슈퍼스타KBS’에서 ‘혈액형 브라더스’는 2주 동안 DJ DOC의 ‘Run To You’노래를 부르며 A, B, AB, O형의 대표 4명이 나와 춤과 함께 노래를, 그 성격론에 맞게 구사했다. 심지어 2013년 7월, MBC 축구해설위원은 “B형은 성취욕이 강한 반면 O형은 성격은 좋지만 덜렁거리고 종종 집중력을 잃는다”고 했다.

   
2012년 방송된 KBS 주말연속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 ©KBS
 

수많은 연예인들은 자신의 성격을 혈액형과 연결시켜 언급한다. 지난 6월, 송승헌은 드라마  <이 남자가 사랑할 때> 관련 언론 인터뷰에서 “저는 B형이 가진 단점을 다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이승기는 캐릭터와의 일치율에 대해 “B형이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B형의 성격도 있다. 하지만 연예계 일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할 것들이 많다”고 했다. 심지어 지난 1월, 한 매체에는 드라마 속 여성들의 혈액형별 복수 방법이 기사화되었다. 2012년 10월 MBC뮤직 <트루로맨스>와 함께하는 혈액형 탐구 프로그램 ‘트루로맨스 ABO’는 혈액형별 성격과 음악적 재능을 연결 시켰다.

‘A형은 내성적이다’, ‘B형은 예의가 없다’, ‘O형은 집중을 못 한다’ 등 혈액형별 성격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관계 경험이 적은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회 초년생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편견을 작동하게 하며 그 편견 때문에 대인 관계 장애를 낳을 수 있다.

혈액형 성격론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즉 혈액형 성격론은 인권 차원의 문제를 야기한지 오래다. 또한 교육관점에서도 부정적이다. 아동들은 A형이라 발표는 소질이 없다거나 O형이기 때문에 산만하다고 여긴다. 아예 자신의 진로를 혈액형으로 간섭받게 된다. 결국 인생이 바뀐다. 이런 정보들은 너무나 쉽게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주입된다. 심지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소중한 인연이나 사랑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이 순간에도 특정 혈액형은 어떠하다는 편견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많다. 세상 사람을 이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다면, 이미 많은 고민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혈액형 때문에 사람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21세기 인권의 시대에 모순적이다.

잘못된 혈액형 성격론은 바로잡혀져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혈액형 성격론은 이제 방송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적절하게 주의토록 할 필요성이 있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문제의식조차 없으니 말이다. 2004년 일본에서는 1년 동안 40편이 넘는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방송프로그램 윤리증진기구(BOP) 청소년 위원회는 혈액형 성격에 관한 내용이 근거 없는 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곧 그런 프로그램들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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