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위기에 놓인 한 언론사의 모습입니다.”

13일 KBS 2TV <추적60분> ‘기자 없는 신문, 한국일보의 오래된 상처’에서 방송된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날 <추적60분>은 지난 6월15일 한국일보 편집국이 사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쇄된 이후 파행 지면제작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일보 사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날 <추적60분>이 주목받은 이유가 있다.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의 존재감을 오랜만에(?) 확인시켜 줬다는 점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존재이유인 시사프로그램은 MB정권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사실상 궤멸되다시피 했다. 최근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국정원 관련 아이템’이 불방된 것은 현재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일보 사태’가 <추적60분> 전파를 탔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좀처럼 공론화하기 힘든 언론문제를 지상파에서, 그것도 한국일보 못지않게 심한 내홍을 겪은 KBS에서 과감히 다뤘다는 점은 평가해 줄 대목이다. (물론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인사이드’에서 한국일보 사태를 다루기는 했다.)

   
7월13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KBS
 

권력과 자본에 대한 견제가 사라진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서 ‘언론문제’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지 않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일보 사태는 현재 한국 언론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루기 쉬운 아이템이 아니다.

한국일보의 파행적인 지면제작이 한 달여 동안 계속됐지만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게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한국일보 사태’는 한국 사회 권력과 자본의 문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축소판이다.

지금 한국일보 기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KBS 기자·PD들이 불과 몇 년 전에 겪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KBS 기자·PD들은 지난 2012년 3월부터 90여 일 동안 KBS가 정권 홍보방송으로 전락했다며 ‘낙하산 사장 퇴진 및 공정방송 쟁취’ 등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대선 공정방송위원회 강화(사장과 노조위원장이 대표로 참석) △탐사보도팀 부활 △라디오 주례연설 조만간 폐지 △징계 최소화 및 본부장 거취에 대한 책임 등에 노사가 합의하면서 파업을 접었지만 당시 후유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PD들은 여전히 KBS내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벌인 파업을 대놓고 반대하며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간부들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덕분에(?) ‘공정방송’을 요구했던 기자·PD들은 지금까지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내부에서 싸운다.

사측의 ‘편집국 폐쇄’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 이후 한국일보 기자들이 편집국으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기사를 쓸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KBS 기자·PD들은 취재를 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으며 기사도 쓸 수 있다. 하지만 <뉴스9>에서 보도되는 기사와 KBS 주요 시사프로그램에서 방송되는 아이템에 대한 기자·PD들의 자조와 한탄, 외면은 상상 이상이다.

   
7월13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KBS
 

편집국으로 복귀했지만 기사를 쓸 수 없는 한국일보 기자들과, 노사 합의로 제작현장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리포트와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없는 KBS 기자·PD들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사태 이후 한국일보 기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수많은 성명과 논평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이번 사태는 정상적인 신문 제작 절차 과정을 무시한 초법적인 행태이며 편집국 독립을 규정한 한국일보 편집강령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이자, 한국일보의 공정한 보도를 믿고 구독하는 독자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행위이다.” (5월16일자 한국일보 비대위 논평 가운데 일부)

지금은 ‘정상화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 KBS는 어떨까. 지난 7월1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발행한 노보 <창피해서 못살겠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올 봄 개편에서 유신정권 찬양하는 <다큐극장> 편성을 강행하더니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물타기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리고, 이제는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국정원 선거개입을 온 몸을 던져 덮고 있다.

KBS가 정권의 선무방송이 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번엔 정말 해도 너무한다. KBS게시판에는 KBS 뉴스를 비난하는 댓글로 도배가 되고 있고, 언론학자들은 ‘이런 식이라면 KBS가 공영방송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히 민란 수준이다. ”

비리 혐의로 사주를 검찰에 고소하고, 신문 정상화를 위해 싸우는 한국일보 기자와 KBS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 없는’ 한국일보와 ‘기자 있는’ KBS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13일 <추적60분>이 다룬 “2013년 위기에 놓인 한 언론사의 모습”은 한국일보만의 풍경을 의미하진 않는다.

KBS는 물론 MBC와 SBS 그리고 다른 신문사들도 ‘한국일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추적60분> 제작진은 이런 식으로나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일보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날 <추적60분>에서 주목받아야 할 사람은 ‘한국일보 기자들’보다 <추적60분> 제작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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