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인간의 마지막 투쟁은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위해 43년 10개월을 복역, 세계 최장기수로 기록된 미전향 장기수 김선명씨(70)와 안학섭씨(65)는 자신들이 겪었던 지난 세월의 형극을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잡했다.

0.7평의 공간에서 벌어졌던 44년 동안의 사투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가장 나쁜 자기 실현’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용없는 ‘반공’과 천박한 ‘자유민주주의’가 그것이다. 그 작은 공간에서 자행된 40년 동안의 폭력을 용인하는 이념이나 체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이 그 이념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광복 50주년 기념행사가 화려하게 치러진 지 사흘 뒤인 지난 18일 오후2시 서울 종로성당 3층 강당에서는 ‘8·15 특별사면·복권조치’로 출소한 김선명·안학섭씨와 이미 출소한 장기수를 포함한 장기수 4명과 기자들의 만남의 자리가 민가협 주선으로 마련됐다.

어떤 언론이 ‘전향을 거부, 스스로 기사발길을 선택한 골수 공산주의자’(조선일보 17일자 <기자수첩> 중에서)로 묘사한 이들 장기수들은 이날 간담회를 통해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살풍경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을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일까. “내가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폭력에 굴복하면 그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과 공범이 된다. 이데올로기 그 자체는 잣대가 아니다.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뎠다. 그것은 일종의 기쁨이다.” “일제 시대의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옳은 것을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옳은 것은 무엇인가. 분단국의 이데올로기 풍토에 익숙한 기자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식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북한에 가고 싶지 않은가” “동구권이 몰락한 지금 김일성 주석이나 공산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질문자들을 실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기도 내 조국이며, 여기도 내 조국이다.” “난 그런 것 모른다.”

그들은 언론이 그려낸 ‘이념의 전사’이길 단호하게 거부한 셈이다. 그들은 이념으로 옳고 곧은 것보다 인간의 존엄성으로 옳고 곧고자 한다. 질문은 그토록 긴 시간의 감옥살이를 어떻게 감내했는가로 이어졌다.“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처음부터 죽을 각오를 했다. 맞아 죽을 각오, 고문 받을 각오를. 그러나 막상 닥치니 외롭고 긴장됐다.”

지난 51년 철원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중 인민군 신분으로 체포돼 영어의 몸이 된 김선명씨는 그 긴장감을 삭이기 위해 반복된 일상을 규칙으로 채워 나갔다. 건강을 위해 맨손체조와 냉수마찰 등을 했다. 유일한 낙이 독서였는데 “무위무탁자라 도서반입이 없었으며, 교도소 안의 책 대출마저 전향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바람에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0.7평의 공간은 그가 내몰린 ‘세상의 끝’인 동시에 그가 누린 ‘세상의 전부’였던 셈이다. 더욱이 지난 73년을 즈음해 본격적으로 진행된 박정희 정권의 전향공작 테러는 그의 자그마한 육신을 여지없이 파괴했다. “깡패들과 한방에 집어넣고서는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건장한 장기수들은 끼니를 굶긴 후 구타했다. 심지어 간부와 합세해 바늘로 찌르는 등 잔인한 공작이 행해졌던 이때가 수형생활 중 가장 힘든 때였다."

이같은 비인간적인 조건에서의 수형생활에 육신은 날로 쇠약해져 갔다. 오랜 독방생활로 눈이 침침해져 진찰 받은 결과 양쪽 눈 모두 백내장에 걸렸다는 선고가 내려졌던 것. 그러나 그 치료마저 전향을 조건으로 내세워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 점 혈육의 면회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40여 년이 채워졌다. 그래도 탄압하지 못한 것 한가지. “기자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양분된 조국의 통일을 원하십니까” 기자들의 미묘한 침묵 끝에 사회자의 대답이 이어졌다. “원한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아직도 감옥에 있는 장기수와 양심수를 석방시키기 위한 좋은 기사를 많이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나직한 ‘부탁’의 한켠에 ‘언론의 왜곡보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통일에 대한 답이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보탰다.

감옥 안과 밖의 차이에 대해 “작은 형무소에서 큰 형무소로 나왔을 뿐”이라는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가혹하다. ‘잃어버린 가족’이 또 다시 그들을 감금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국분단의 와중에 ‘이쪽 편’이 아닌 ‘저쪽 편’에 가담함으로써 결코 두번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악몽을 겪어야했던 가족들을 되찾아야만 한다.

김선명씨는 호적에 사망으로 등재됐으며, 그의 늙은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김씨는 늙은 어머니가 정신적 충격을 받을까봐 집을 찾아 “어머님, 제가 왔습니다”고 울음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그저 기자들 앞에서만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다.

자, 이제쯤 우리도 ‘큰 형무소’의 수인으로서 그 눈물을 받아든 죄 일 수는 없을까. ‘옳은 것’과 통일과,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