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것은 그렇게 경쟁 교육에 치여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고작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니다. 인생이라는 긴 시간대에서 보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꿈 많은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이들은 이미 패배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과연 이것을 교육(敎育)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말 그대로 가르치고 육성하는 것인가?
영화 <명왕성> 포스터. | ||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빠질 수 없다. 고위층의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하고, 고액 과외를 통해 자기 자식만 집중 관리한다. 자식들보다 못한 99%는 철저히 무시한다. 그런 것이 일상화된 교육 현장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이런 내용만 다루었다면, <명왕성>은 입시 교육을 고발한 현실성 있는 영화라는 평가에 그쳤을 것이다. <명왕성>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흥미롭게도 신 감독은 입시 교육 문제를 스릴러와 미스터리 형식으로 그린다. 영화가 시작되면 명문사립고에서 항상 1등만 하는 유진이 학교 뒷산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당연히 떠오르는 질문, 범인이 누구이고 왜 죽였을까? 이제부터 관객은 학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의혹 속으로, 그 미스터리 구조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형사는 현장에 떨어진 핸드폰을 토대로 준을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영화 <명왕성>의 한 장면. | ||
때가 되면 조직에 들어온 새로운 학생을 내치는데, 그 방식이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다. 여학생은 강제로 성폭행한 뒤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위협해 자살하게 만들고, 남학생은 학원 강사를 폭행한 범인으로 몰아 퇴학시켜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여학생에게 잔혹한 육체적 폭행을 가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게 만든다.
영화 <명왕성>의 한 장면. | ||
흥미롭게도 이들이 다닌 학교는 안기부 건물이 있던 자리였다. 때문에 지하에는 일반인이 모르는 비밀 공간이 있는데, 그 음습한 공간이 바로 스터디 그룹의 아지트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온갖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신수원은 이 스터디 그룹이 결국 군부 정권의 국민 통제 방식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더 확대하자면, 이런 엘리트 교육을 노골적으로 육성한 것이 군부 정권이라고 비판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신수원이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하다. 지금의 학교는 음모와 계급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었고, 그 뿌리는 군부 교육과 밀접히 닿아있다는 것. 그래서 <명왕성>은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가 때로는 지독히도 비현실적인데, 기묘하게도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영화 속에서 적절하게 조우한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적이지만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마지막으로, 제목인 <명왕성>은 태양계의 행성이었다가 행성의 지위를 잃은 별을 말한다. 영화의 광고 카피처럼, 태양계가 되고 싶은 작은 별의 항변을 입시 교육의 현실에 빗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