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d_6mrLc_mEw (링크 9:35부터)
 
하이든은 1791년 초, 런던에 도착해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현지 언론은 “그런 명예를 받은 사람은 50년 내에 없었을 것”이라며 놀랐습니다. 하이든의 회상입니다. “내가 도착하자 도시 전체에서 커다란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사흘 동안 연달아 온갖 신문에 내 소식이 실렸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고 싶어했다.” 1월 8일 성 제임스 궁에서 열린 첫 연주회에 참석한 황태자는 입장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이든에게 인사를 해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영국왕 조지 3세는 하이든이 런던에 남아있도록 설득하려고 애를 썼고, 왕비는 그에게 윈저성에 머물라고 제안했습니다. 헨델 이래 이렇게 열렬히 영국 왕실의 환대를 받은 사람은 하이든이 처음이었습니다.

런던의 교향악단은 에스터하치 공의 악단보다 2배 정도 규모가 컸고, 하이든은 이에 걸맞는 대(大)교향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의 팬들을 위해 하이든은 연주회 2부의 첫 곡으로 늘 교향곡을 연주했고, 청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음악사가 찰스 바니는 “청중들은 거의 광란이라고 할 정도로 열광적”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도 연주회 도중 조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하이든은 94번 교향곡의 2악장에서 특유의 유머러스한 장난을 칩니다. 첫 주제를 조용히 연주합니다. 조금 단조로운 선율이지요? 주제를 좀 더 작은 소리로 반복합니다. 한가로운 청중들 중 일부가 이제 졸 준비를 하는 찰나, 오케스트라 전체가 ‘꽝~’ 큰 소리로 졸음을 쫓아 버립니다. 이 대목 때문에 <놀람> 교향곡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 주제는 나중에 오라토리오 <사계>에서 일손 바쁜 농민들의 즐거운 노래가 됩니다. 
   

   
 
 
하이든이 런던 청중들을 위해 쓴 교향곡은 모두 12곡으로, 이 곡을 의뢰한 음악 기획가 잘로몬의 이름을 따서 ‘잘로몬 시리즈’라고도 합니다. 하이든이 남긴 104개 교향곡의 대미(大尾)을 장식하는 이 곡들은 내용이나 규모가 가장 충실해서 하이든 교향곡의 최고봉을 이룹니다. 하이든은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각 작품마다 재미있는 특징을 하나씩 집어넣곤 했습니다. 그래서 하이든 작품에는 <놀람>, <군대>, <시계>, 심지어 <곰>, <암탉>, <철학자> 같은 별명이 붙은 곡이 유난히 많습니다.
 
대개 작곡가 자신이 아니라 청중들이 재미있다고 느껴서 자연스레 별명을 붙였지요. 출판업자들은 별명을 상업적으로 이용했고, 그 덕분에 더 유명해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 전통인지, 지금도 하이든의 교향곡이나 현악사중주곡에 붙일 새로운 별명을 공모하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한국의 장난꾸러기 조윤범씨는 하이든 현악사중주곡에 ‘병아리의 춤’, ‘다람쥐’, ‘오아시스’, ‘결심’ 같은 별명을 맘대로 붙이며 재미있어 했지요.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살림, p.43~p.47)

96번 <기적>은 별명이 잘못 붙은 경우입니다. 하이든은 두 번째 런던 체류 중인 1795년 개막 공연 때 교향곡 102번 Bb장조를 초연했는데, 연주 도중 천장에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바람에 연주회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음악 자체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기적>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엉뚱하게도 이 별명은 96번 교향곡에 붙어버렸습니다. 하이든이 영국에서 제일 먼저 초연한 게 96번이었고 그만큼 인구에 많이 회자되다 보니, 이 에피소드가 그 쪽으로 따라간 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100번 <군대>는 매력적인 악상이 넘쳐나는 곡입니다. 2악장과 4악장에서는 팀파니 뿐 아니라 큰 북, 심벌즈, 트라이앵클을 사용해서 화려한 색채감을 더해 줍니다. 2악장은 평화시의 멋진 군대 행진곡인데, http://youtu.be/vrf3XF__jhQ 링크 4:58부터 진군 나팔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나폴레옹의 유럽 정벌이 시작될 무렵이라 군대풍의 음악은 청중들에게 호소력이 강했겠지요? 4악장에서는 팀파니가 솔로 악기로 깜짝 등장해서 음악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모닝 크로니클>은 2악장에 대해 “전쟁의 지옥 같은 고함소리가 무시무시한 숭고함의 절정으로 높아진다”고 묘사했습니다.

   
 
 
101번 <시계>는 2악장에서 제1바이올린이 주제를 연주할 때 반주하는 목관악기 소리가 시계 소리 같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한때 KBS-FM 심야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쓰였지요. <모닝 크로니클>은 “저 끝도 없이 경이롭고 숭고한 하이든!”이라고 격찬했습니다. http://youtu.be/7p8MwpIvvos

103번 <북소리>는 1악장 서주에서 팀파니 솔로가 긴 트릴을 혼자 연주합니다. 매우 이색적인 출발인데, 서주의 모티브가 중간부에 나오고, 팀파니의 트릴이 1악장 끝부분에 다시 등장합니다. 서론와 본론을 섞어 놓은 기발한 구성이지요. http://youtu.be/DcpWifRc8aQ 2악장은 정겹고 재기발랄한 변주곡으로, 초연 때 앙코르 연주됐다고 합니다. 톤 쿠프만 지휘의 이 링크에서도 2악장이 끝나니까 박수가 나오는군요. <더 선>은 “하이든의 새 교향곡이 많은 갈채를 받았고 장대함과 환상이 훌륭하게 어우러진 작품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런던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 교향곡 104번 <런던>은 하이든의 교향곡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거장 마리스 얀손스 지휘, 바이에른 라디오 방송 교향악단 연주입니다. http://youtu.be/ffBK-EYjs90 1악장은 장엄한 서주로 시작, 약동하는 알레그로로 이어집니다. 4악장 피날레 스피리토소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예감케 하듯 에너지가 넘칩니다. 하이든은 자필 악보에 “이것이 내가 영국에서 작곡한 12번째 작품”이라고 자랑스럽게 써 넣었고, 런던 <모닝 크로니클>은 “그의 다른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곡“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원숙한 하이든은 ‘질풍노도’ 운동과 거리를 두고, 대중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여러 방법을 구사했습니다. 이런 음악을 처음 듣는 평민 청중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배려한 탁월한 기교가 이 시절 하이든 음악에 섬세하게 자리하고 있는 거지요. 하이든은 자기를 환영해 준 영국 팬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내 평생 지난 한해만큼 많은 곡을 써 본 적이 없어요.” 1792년, 지인에게 쓴 편지 대목입니다. 런던에서 알게 된 연인 베카 슈뢰더는 하이든이 과로로 건강을 상할까봐 몹시 걱정했습니다.

두 번째 런던 체류 기간인 1795년 2월 1일, 영국왕 조지 3세는 하이든의 노고를 위로하는 말을 건넸습니다. “하이든 선생, 당신은 참 많은 곡을 썼지요?” 이에 대해 하이든은 특유의 겸손과 유머로 대답했습니다. “네, 전하, 그저그런 곡도 참 많이 썼습니다.” 이에 대한 왕의 대답. “아, 아니요,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비커스 <하이든, 그 삶과 음악>, 김병화 옮김, 낙소스북스, p.132)

하이든은 훗날, 영국에서 보낸 시절이 평생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맘껏 재능을 발휘해서 최선을 다할 때 인간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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