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련 등 현직 언론 3단체가 합의 발표한 ‘통일언론 실천선언’이 공허한 울림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을 ‘조선’으로 표기하자는 준칙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언론노련과 기자협회 및 프로듀서연합회는 조국이 외세에 의해 분단된 지 꼭 50년이 되는 8월15일을 맞아 ‘통일언론 실천선언’을 결의했다. 이날 3단체는 올해 초부터 공동으로 준비해온 ‘평화통일과 남북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준칙’을 확정 공포하면서 이를 적극 실천해 나가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라리 ‘통일언론실천선언’이 없었기를 바랄 만큼 우리 신문방송의 지면과 화면은 선언의 정신과 동떨어져 있다. 물론 선언에서도 밝혔듯이 우리가 통일언론실천선언 뒤에 모든 언론이 준칙대로 보도하리라는 성급한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 각계 인사들을 불러 공청회(5월29일)를 열었고, 최종안을 발표(7월4일)한 뒤에도 전국의 모든 신문 및 방송 편집국장이나 정치부장들에게 공문을 보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던 만큼 어느 정도 변화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언 직후에 우리 언론들의 남북문제 보도자세는 어떠했는가.

앞장서서 정부의 통일정책을 ‘유화적’이라고 비판하고 특히 ‘쌀회담’을 둘러 싼. 문제에서는 진실 추구라는 언론보도의 기본 상식마저 저버리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실체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남과 북의 국호를 있는 그대로 쓰자는 ‘통일언론준칙’의 제1 총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도 이같은 보도 방향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언론은 그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모르나 보도태도로 볼 때 북쪽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인공기 사건’이나 ‘사진촬영 사건’을 보자. 상대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볼 경우 남북관계 진전에 큰 걸림돌이 안될 것임에도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보도하면서 언론의 기본적 금기사항인 흥분만 하고 있다.

왜 굳이 ‘북한’이 아니라 ‘조선’일까. 무엇보다 먼저 ‘이름’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경구를 굳이 상기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우리들의 북쪽에 있는 사회는 그 옛날 ‘북괴’가 아니었듯이 오늘도 ‘북한’이 아니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없고 조선반도만 있는 것도 물론이다. 바로 그 쓰라린 갈라짐의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냉철한 현실인식 위에서만이 갈라진 겨레가 하나로 부활할 수 있다. 우리에게 ‘조선’은 어쩌면 낯설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은 얼마나 우리에게 다가와 있을까. 우리에게 ‘북한’이라는 말의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본다면 조선이라는 표기는 낯설기보다 오히려 신선할 터이다.

더구나 오랜 냉전체제에서 굳어진 ‘북한’의 이미지는 북쪽을 인정하지 않는 저 케케묵은 국가보안법의 ‘정신’과 잇닿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왜 ‘북한’이 아니고 ‘조선’이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때 진정한 대화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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