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50년이다.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벅찬 감격으로 맞아 마땅한 이 50주년은 그러나 동시에 분단 50주년이기도 하여 비감하다. 현대사의 비극이란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이 해방과 분단의 동시성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이번 8·15경축사에는 뭔가 다른 ‘획기적인’내용이 담기기를 기대한 것은 한국민이라면 당연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이 같은 기대와 소망을 저버렸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진취적인 제안은 없이 지극히 원론적인 선언에 머물러 버렸다. 올바른 민족관과 통일관을 가진 언론이라면 당연히 이런 점을 지적했어야 했다. 김대통령의 경축사가 어떻게 소리만 요란한 빈깡통인지를 조목조목 따졌어야 했다. 김대통령의 8·15경축사를 보도한 우리 언론은 그저 사실을 윤색하거나 부풀리기에 바빴다.

기실 김대통령의 이번 8·15경축사에는 과거와는 뭔가 다른 큼직한 제안이 들어갈 것으로 다들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간 대다수 우리 언론은 남북관계의 진보적인 흐름을 차단하고 옆길로 새게 만드는 데만 온힘을 쏟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15경축사가 빈 껍데기로 끝난 데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신문들이 사설과 논평을 통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집요하게 비판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대북관계의 진전을 물고 늘어지는 언론의 보도태도는 이번 쌀수송 사건을 다루는 데서 또 한번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난 16일 국회 통일외무위가 나웅배 부총리를 출석시켜 쌀수송선 억류사건을 추궁했다. 이날 통일외무위원 가운데 여야의원 일부가 이 사건을 계기로 쌀지원을 전면 중단하라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일자 중앙 일간지의 거의 대부분이 이 건을 1면 톱으로 실었다.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동아·서울), “대북정책 시행착오 질타”(한국), “여야 대북 저자세 맹공”(중앙), “대북정책 시행착오 추궁”(조선). 이 신문들이 컷으로 뽑은 1면 톱 제목이다.

분명한 건 이들이 이런 제목을 통해 남북관계의 발전적 변화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 정부가 비틀거리면서도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지고 추구하고 있는 남북관계개선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려고 안달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을 확인해 보건대, 이번 쌀수송선 선원의 사진촬영은 상대 쪽의 법을 어긴 것이고, 따라서 지난 번 인공기 게양에서 한국 정부가 조선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낸 것처럼 사과함으로써 일단락 될 사건이었다. 때문에 이 사건은 남북의 화해와 통일의 진전이라는 대의의 차원에서 보면, 실무적 차원에서 저질러진 사소한 잘못에 불과한 것이었다.

올바른 태도를 가진 언론이라면 마땅히 이런 점들을 지적해 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정부가 사사로운 사건에 얽매이지 말고 일관성 있게 남북관계를 풀어가도록 촉구해야 했음에도 오히려 정반대의 보도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민실위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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