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밤 잠실 종합운동장 메인 스타디움에서 5만여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광복 50주년기념 축전 음악회는 한마디로 거대한 축제였다. 경기장을 꽉 메운 청중의 열기와 세계무대를 넘나들던 화려한 음악스타들의 출연, 첨단 장비를 동원한 환상무대는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 같은 분위기였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지 어언 50년, 그 광복 50년의 의의를 되새기고자 기획된 이 음악회야말로 우리의 지나온 50년을 회고하는 이정표의 한 단면이자 우리민족의 저력이 얼마나 강인하고 우수한가를 가늠할 수 있는 감동의 한마당이었다.

그런데 관객의 한사람으로 축전을 바라보노라니 아쉬움을 넘어 분노의 감회마저 느끼게 됐으니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회복하자고 마련된 이 축제가 양악 일변도로 구성됨으로써 민족음악인 국악이 철저하게 배제된 음악회였기 때문이다.

민족정기가 무엇인가?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두말이 필요없는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얼과 전통이다. 일제 36년 동안 쇠퇴하고 말살되었던 이것을 회복하고 바로 세우자는 뜻에서 정부는 이번 50주년 광복절 행사를 여러 부문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장엄하게 개최했던 것이다. 그런 정부의 취지로 보더라도 이 축전음악회는 문제가 큰 행사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의 문화예술 담당부처인 문화체육부가 주최자가 된(물론 KBS,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했지만)이 음악회가 완벽하게 국악을 소외하면서 계획되고 거행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서양음악이 우리의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정체성이란 말인가? 아니면 우리민족이 해방 50년 동안에 서양족으로 변화했다는 것인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물론 이 음악회를 주최한 문화체육부 당국자들은 이런 불만에 대해 부제로 붙인 -세계에 떨친 한국의 음악인들-을 들먹여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한다. 양악 위주의 축전음악회를 조선일보나 KBS가 따로 개최했다면 우리는 이런 시비를 제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민간단체의 뜻으로 행하는 음악회니까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분노를 자아내는 대목은 정부 부처가 주최자라는 점이고 평소가 아닌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식민잔재를 걷어내고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구총독부 건물까지 헐어내는 판국에서 문화예술담당 부처가 양악 위주의 축전음악회를 열었으니 무엇으로 설명하며 국민들의 공감을 어찌 얻을 것인가 말이다.

2시간 넘게 짜여진 레퍼토리를 살펴볼 때는 정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동안 국위를 선양한 서양음악인물을 격려하고 환영키 위해 계획된 행사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레퍼토리의 4분의 1 정도를 할애하여 모든 국민들이 즐기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비롯, 국악곡 몇 곡과 국악기 몇 점쯤은 끼워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아닌가? 국악인 한사람, 국악기 한 점 등장하지 않은 축전음악회가 과연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광복 50주년을 기리기 위한 정부의 축전음악회로 타당했단 말인가 거듭 묻고 싶다.

이미 김영삼 정부의 많은 국정업무가 정상궤도를 벗어나 임시변통 식으로 겉돌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핵 문제가 그렇고, 각종 폭발사고에 대처하는 행정대책이 그렇다. 허나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문화예술 부분마저 그야말로 줄기를 못 찾고 방황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조선일보 출신의 주무 장관이 자신 몸담았던 신문사를 위해서 벌인 특혜적 행사였다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다. 그것은 정부 주도의 국가적 행사를 언론사가 공동 주최한 경우가 없었다는 선례로 비춰봐도 충분히 근거를 갖는 말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행사를 거울삼아 또다시 이런 일을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의 원대한 정책기조에 입각해 추호도 편파성이 없는 공명정대한 행사를 개최해야 할 것이다.

해당부처 담당자들은 이번 기회에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는 문화예술의 창조가 무엇인지도 널리 듣고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국민을 오도하는 문화예술 정책이 절대 재발할 수 없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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