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 등 어니스트 허밍웨이의 소설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저작권 보호 기간을 ‘작가 사후 50년’으로 정한 국제저작권협약에 따라 1961년 사망한 허밍웨이의 소설에 대한 저작권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1962년 세상을 떠난 헤르만 헤세와 윌리엄 포크너의 책들이 국내 출판계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1963년 사망한 작가들에 대한 저작권은 내년에 소멸되지 않는다. 한-EU FTA 이행입법에 의해 올해 7월1일부터 저작권 보호 기간이 작가 사후 70년으로 연장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2034년까지 향후 20년간 저작권 소멸로 인한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은 저작권 수출보다는 저작권 수입 비율이 훨씬 큰 국내 출판계 상황을 고려했기보다는 “FTA 협상 과정에서 보호 기간 연장이 결정”됐기 때문에 출판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2011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한-미FTA 체결에 따라 향후 20년간 출판물과 관련해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할 저작권료는 연평균 31억6천만 원, 한-EU의 경우 연평균 21억 3천만원으로 추정했다. 연간 53억 원, 20년간 총 1060억 원가량의 비용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소장은 9일 “이 수치는 EU국가들과 미국의 출판물에 해당하는 최소 비용을 산정한 것이기 때문에 향후 저작권료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저작권법을 개정한 것이기 때문에 EU 27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사후 70년 이상 보호국의 저작권 보호 기간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됐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의 교보문고를 찾은 학생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만만치 않은 추가 비용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출판계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박 소장은 “출판계 이익률이 5% 미만인데, 원저작자에게 주는 인세(6~7%)를 향후 20년간 지속적으로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가 인세 부담보다 더 큰 문제는 작품성이 높지만 저작권료에 묶여서 출판되지 못했던 책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향후 20년간 박탈당한다는 점이다. 문학동네 염현숙 국장은 “저작권료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오랫동안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저자들의 책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하고 독자들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자체가 사라졌다. <위대한 개츠비>도 번역자에 따라 느낌이 다르지 않나”고 지적했다.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이 저작권법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남희섭 변리사는 “저작권이란 저작자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저작권을 이용하는 이들도 함께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이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하고, 그 척도가 저작권 보호기간인데 한국은 기간을 계속 늘리면서 저작자만을 보호해왔다”고 지적했다. 1957년 저작자 사후 30년이었으나 1994년 50년, 올해 7월부터 70년으로 연장됐다.

남 변리사는 “저작물이 공공영역으로 들어올 만하면 사적 영역에 묶어 놓은 셈”이라며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때 오는 혜택을 차단했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에는 추가 인세 부담뿐만 아니라 이 혜택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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