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지금 정계개편을 앞두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제3정당 노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안철수 신당’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 신당’은 다자구도에서 새누리당에 이은 2위를 기록함으로써파괴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이 뜨면, 실제로 양당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양당제 구도를 형성해왔다. 공화당-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을 계승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신민당-새정치국민회의-열린우리당으로 이어오는 민주당이 그 주체다. 그동안 제3당으로 진보정당 계열인 조봉암의 진보당과 민주노동당, 보수정당 계열인 자유민주연합, 통일국민당 등이 있었지만 보수계열은 기존 정당에 흡수됐고 진보계열은 자생능력을 잃은 상태다.

이런 형태의 양당제가 고착된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한국의 정치구도가 오랫동안 독재 대 민주 구도로 맞춰졌다는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 체제를 거치며 한국 정치논쟁의 핵심은 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져있었고,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1987년 6월 항쟁 등을 거치며 야권 내에서는 민주화를 실현할 단일대오 형성이 핵심 전술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 간 단일화가 불발되면서 잠시 1개의 여당과 2개의 야당 체제가 꾸려졌지만, 1990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면서 거대 여권을 형성하고 여기에 야권은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를 중심으로 집결하면서 현재 형태의 양당구도가 고착화됐다.

물론 양당제가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사회경제적 갈등요소들이 폭발하기 시작했음에도 정작 한국의 정당 체제에서는 이 같은 갈등요소를 반영할 통로가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이 집권한 10년 동안 정치적 민주화는 한 단계 진전되었을지 모르나 경제적 양극화는 더 커졌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난달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신의 싱크탱크 격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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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회경제적 갈등요소에 대해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대변하는 계층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벌·족벌 구조는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확대됐고 노동자·서민의 이해관계가 정치를 통해 대변되는 일은 없었다.

박찬표 목포대 교수는 저서 ‘한국의 1948년 체제’에서 ‘노동’을 키워드로 이를 분석했는데, 박 교수는 “민주화 이전까지 의회에서 야당 대표자 연설에는 ‘노동자, 농민’을 호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민주화 이후 오히려 그런 의제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정부가 들어선 만큼 야만적인 노동탄압은 옛 이야기가 되었고 이제부터 외국자본과 국내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노사가 화합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 수락 연설에서 ‘민주화와 더불어 노동자 권익이 향상된 뒤에는 노사화합의 중재자로 현장을 뛰었다’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려 한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후 집권당의 교섭단체 연설에 ‘노동’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됐고, 최근에도 민주당이 사회경제적 갈등관계에서 약자들을 대변할 것이라 밝히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이를 주요 대선 공약으로 차용함으로써 외견상으로는 결국 양 당의 사회경제적 관점의 차이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점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점차 정치에 관심을 끊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는 민주화 이후 점차 증가하는 부동층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주화 논쟁이 첨예하게 맞붙었고 모처럼 직선제를 시행한 87년 대선에서 투표율은 89.2%, 92년 대선에서는 81.9%에 이르렀지만 97년 대선에서 80.7%, 2002년 대선에서 70.8%까지 점차 떨어지다가 2007년 대선에서는 63%에 머물렀다.

물론 2012년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다시 75.8%로 상승했지만 이번 대선이 전에 없던 양자 대결 형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높은 투표율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 10%정도에 그쳤지만, 대선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시 부동층이 25%대로 높아졌다는 점은 ‘정치에 관심을 끊는’ 유권자 층이 여전히 두텁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인기도가 떨어지면 야당 지지도가 올라야 하는데 그대로 있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기존 학자들은 부동층을 일종의 과도기로 해석하며 그들이 판단력과 정보가 부족하고 인식 체계가 불분명한 집단이라고 분석했지만 최근에는 그들이 정보도 많고 판단능력도 뛰어나다는 해석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들은 ‘상충성 모델’로, 진보나 보수의 두 정체성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안보정책은 보수적이고 경제정책은 사민주의에 가깝고 정치와 사회문화는 리버럴한 측면이 있는데 기존 두 정당이 이것을 담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때문에 최근 다시 제3정당 담론이 나오고 있다. 양당만으로는 정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주장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체로 최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안 의원은 그동안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말로 무당파 측을 공략해왔는데, 양 당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렬하고 공격적인 정쟁을 중점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양당 간 정치대립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장집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은 지난달 19일 토론회에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단원주의’”라며 “성장지상주의와 같은 단일한 국가 목표 내지 ‘일반 의사’가 먼저 정의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집단들의 경쟁을 중심으로 정치가 전개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때문에 ‘민주 대 반민주’ 등 대립적이고 공격적인 정치언어가 사용되고 이것이 정당정치의 역할을 오히려 축소시킨다고 지적했다.

물론 반드시 안철수 의원의 세력화가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동안 제3정당 형태로 세력화를 모색한 정당들이 소멸되거나 힘을 상실했다는 점은 한국 정치 풍토에서 제3정당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음을 드러낸다. 박찬종 변호사는 1992년 대선에 출마해 6.4%를 얻는데 그쳤고,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도 제3세력화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5.8%를 얻는데 그쳤다.

최장집 교수는 이러한 제3정당의 실패는 “중도화 전략”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념적 특색 없이 극단적인 양당 대립 관계에서 중간자적 포지션을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 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경제민주화와 노동 문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현연 진보정의연구소장(성공회대 교수)은 “안철수 그룹이 노동과 평등에 대해 명확한 말을 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과 평등 문제에 정치적 레토릭이 아닌 실효성 있는 담론을 개발할 수 있다는데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정책연구소 김장민 연구원도 “과거 제3정당이 지역구도에 기대거나 문국현·안철수 등 인물 위주로 갔는데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있는 제3의 부분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나마 가장 의미 있었던 제3정당을 형성했던 진보정당도 의미 있는 제3정당으로 재도약할 가능성이 있다. 진보정당이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최초의 정당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면서 진보정당도 의미성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조현연 진보정의연구소장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정당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당정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실효정당을 따져보면 거대양당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문제는 한국사회의 제반 이해관계, 갈등요소를 정치영역으로 전혀 갖고 오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를 대표하고 이를 정치 이슈를 끌어올 수 있는 진보란 이름의 제3정당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장민 진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양당제 하에선 국민의 평균적인 의견을 대변하는 두 개의 정당만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정치가 사회균열을 대변하지 못해 정치 외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생기면서 정국이 불안정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지금 진보정당이 어려운 것은 물론 주체적인 측면이 있지만 절대적으로 정치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민주노동당이나 초기 통합진보당이 의미있는 역할을 했듯 진보정치의 지지율을 모아낸다면 제3정당으로서 유의미한 자기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국면, 안철수-진보정당 ‘존재감’ 찾기
안철수, 민주당과 차별성 강조…심상정 “‘안철수 이어’가 아닌 ‘심상정 이어’”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국가기록원이 소유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공개키로 하면서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이 일제히 민주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사태가 불거지면서 정치구도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맞춰져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안 의원 및 진보정당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낸 장면이다.

그동안 안 의원과 진보정당은 존재감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정원 사태 자체가 새누리당-민주당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고, 국정원의 대선개입 자체에 대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정원 국정조사도 양당 협의를 통해 구성돼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과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서 정치적 공간을 만드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8일 ‘국정원 어떻게 바꿀 것인가’ 토론회 인사말에서 국정원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민주정부 10년이)중정·안기부의 핍박을 받았으면서도 국정원이 물어주는 달콤한 정보에 무너진 것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대해 “정상회담 회의록은 결국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담합에 의해 공개되는 것”이라며 민주당을 비판했고,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5분 발언을 통해 대화록 공개에 반대했다.

그나마 안철수 의원은 트위터 발언 등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반면 진보정당은 별다른 공간을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향후 제3정당을 통한 정계개편이 본격화돼도 진보정당은 안 의원 정계개편의 종속변수가 되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축소될 수도 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7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지난번에 대화록 공개입장 관련해서 (언론에)좀 섭섭하더라”며 “나는 사실 작년 대선 때 NLL 논란이 있을 때부터 절대 공개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 확고했고 이번에 다시 공개 이야기가 거론되던 날 절대 (공개는)안 된다고 목소리를 냈는데 나중에 보니 ‘안철수에 이어’로 보도됐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심상정에 이어’가 팩트에 가깝다”며 “원래 정치의 시계는 무거운 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라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