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폰은 이렇지 않아.”

스티브 잡스의 빈 자리는 컸다. 세상의 스마트폰은 아이폰과 아이폰이 아닌 것들로 나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애플이 지난달 10일 공개한 모바일 운영체제 iOS7을 한 달 동안 써본 결과, 눈물겹게 잡스가 그리워졌다. 아이폰을 아이폰이게 했던 것들이 사라졌다. 다른 건 다 됐고 도대체 잡스가 살아있다면 도저히 용납하지 않았을 블링블링 형광색 파스텔톤 아이콘이라니.

   
확 달라진 iOS7의 미니멀리즘적 디자인. 물론 스큐어모피즘과 미니멀리즘이 상반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잡스의 색깔을 확 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잡스의 일화가 떠올랐다. 구글 부사장 빅 군도트라가 어느 일요일 아침 잡스의 전화를 받았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당장 시정했으면 하는데. 이미 우리 팀 누군가한테 당신을 도우라고 시켜놨어요. 아이폰에 있는 구글 로고를 들여다봤는데 아이콘이 맘에 안 들어요. ‘Google’에서 두 번째 ‘o’의 노란색 농도가 잘못됐어요. 분명 잘못된 거에요. 그래서 그레그한테 내일 수정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죠?"

실제로 그때 아이폰에 들어간 구글 로고 두 번째 ‘o’의 색깔은 미묘하게 달랐다. 놀라운 건 그 작은 실수를 알아차린 사람이 세상에 잡스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게 일요일 아침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자기네 직원도 아닌 사람에게 굳이 직접 전화를 걸어 지적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잡스의 집요한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그랬던 잡스가 죽고 난 뒤 애플은 뭔가 달라졌다.

iOS7은 우선 개발자들에게만 공개됐고 일반인들에게는 오는 9월 공식 업데이트될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업데이트에서는 달라질 수도 있지만 뭔가 근본적인 디자인 철학의 변화가 감지된다. 현란한 컬러도 컬러지만 디자인도 후졌다. 말랑말랑 어딘가 20대 여성 취향에 애플 특유의 시크하고 쿨함이 사라졌다. 어딘가 구글 안드로이드 짝퉁 같은 느낌도 난다. 오죽하면 디자인팀이 아니라 마케팅팀에서 임시로 만든 것 아니냐는 루머가 나돌 정도였다.

돌아보면 애플의 혁신은 2011년 5월 잡스가 죽고 난 이후 멈췄다. 살아생전에 잡스는 3×2 황금 비율의 3.5인치 화면을 고집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출시된 아이폰5에서는 화면이 16×9 비율의 4인치로 늘어났다. 잡스가 살아있었으면 펄쩍 뛸 일이다. 잡스는 작은 사이즈의 아이패드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애플은 지난해 10월 결국 어정쩡한 사이즈의 아이패드 미니를 출시했다.

심지어 애플이 저가형 아이폰을 만든다느니, 삼성전자 갤럭시S 시리즈처럼 화면을 키울 거라느니 하는 루머도 나돈다. 살아생전에 잡스는 좀 불편하더라도 가장 아름다운 완벽한 디자인을 고집했다. 그런데 잡스 없는 애플에는 그런 고집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큰 화면을 원하니까 큰 화면을 만든다? 잡스가 살아있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일이다. 잡스라면 싫으면 사지 말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iOS7 구석구석에서 잡스의 색깔을 빼려는 시도가 보인다. 애플의 디자인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조나단 아이브 수석 부사장은 잡스 시절 잡스의 아이디어를 충직하게 구현해 냈지만 이제는 잡스 없는 애플의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 내고 있다. 취향에 따라 선호가 엇갈릴 수는 있지만 분명한 건 잡스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브는 잡스의 아이폰이 아니라 아이브의 아이폰의 선을 그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흔히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으로 설명한다. 스큐어모피즘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Skeuos’와 ‘morphe’를 더한 말이다. 스큐어스는 도구, 모프는 형태, 스큐어모피즘은 원래 도구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의미다. 아이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보던 조리개가 열렸다 닫히는 짧은 애니메이션 효과가 대표적인 스큐어모피즘의 구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박음질된 가죽의 느낌을 살린 캘린더나 카지노의 펠트 재질 테이블을 흉내낸 게임센터, 나무로된 서가의 느낌을 흉내내고 실제로 책장을 넘기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아이북스 등 어린아이들도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쉽게 아이폰에 적응하는 건 아이폰의 인터페이스가 철저하게 현실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폰의 페이지 스크롤링에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효과는 다른 스마트폰이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iOS6의 스큐어모피즘 디자인. 노트는 진짜 노트처럼 게임은 카지노 게임판처럼 보인다.
 
아이브는 iOS7에서 잡스의 스큐어모피즘을 배격했다. 음성 메모 앱을 열면 마이크 이미지가 뜨고 메모장을 열면 줄이 쳐진 노란 노트가 뜨던 친숙한 디자인이 사라졌다. 계산기도 진짜 계산기 같았지만 이제는 별다른 감동이 없는 사각의 버튼으로 바뀌었다. 원목으로 짠 서가를 둘러보는 듯 했던 뉴스스탠드는 그냥 평범한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처럼 바뀌었다. 특별히 바뀐 데가 없는 아이북스와 디자인의 일관성도 깨졌다.

과도한 스큐어모피즘 효과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차피 아날로그가 아닌데 아날로그를 흉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발상이겠지만 문제는 달라진 디자인이 일관성도 없고 불친절하다는 데 있다. ‘밀어서 잠금해제(slide to unlock)’는 아이폰의 가장 대표적인 인터페이스였는데 바뀐 디자인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밀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됐다. 스큐어모피즘과 미니멀리즘이 뒤섞여 지저분한 느낌을 넘어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마저 준다.

iOS7에 추가된 콘트롤 센터 등의 기능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 안드로이드에서는 진작부터 지원되는 기능인 데다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도 없고 뭔가 차별화된 아이폰만의 바로가기 기능을 기대했던 애플 마니아들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 개편된 캘린더에 대한 불만도 많다. 디자인은 산뜻해졌지만 정작 날짜를 터치하기 전에는 세부 일정을 확인할 수 없다. 디자인이 기능을 잠식한 최악의 개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웹 브라우저 사파리의 조악한 아이콘은 그렇다 치고 개편된 인터페이스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주소창과 검색창을 결합한 것은 이미 크롬이나 파이어폭스에서 구현된 아이디어지만 크롬보다 훨씬 불편하다. ‘간격’ 버튼 옆에 바로 ‘.com’ 버튼을 실수로 눌러서 검색을 하려다 엉뚱한 사이트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류철을 넘기는 듯한 페이지 전환 기능도 새롭긴 하지만 디자인 과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왼쪽이 iOS6, 오른쪽이 개발자들을 상대로 베타 테스트 중인 iOS7.
 
문제는 스큐어모피즘이 아니다. 아이폰은 애초에 미니멀리즘적 외형에 스큐어모피즘적 요소를 더한 디자인으로 출발했다. 스큐어모피즘적 요소를 좀 덜어냈다고 해서 이렇게 망가질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애플이 혁신의 방향을 잃고 있다는 데 있다.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어야 돼.” 잡스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직 베타버전이라 좀더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지금의 iOS7은 미니멀리즘의 철학조차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잡스의 공백이 아니라 이미 나올 만한 건 다 나왔다,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가 혁신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다. 애초에 기술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터치 스크린의 감도나 중앙처리장치의 속도, 하드웨어 사양 등은 애플이나 삼성전자나 다를 게 없다. 결국 인터페이스와 디자인, 아이디어의 경쟁인데 이제는 스큐어모피즘이니 미니멀리즘이니 따지면서 적당히 아이콘이나 바꾸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성공한 많지 않은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애플은 자기네 하드웨어에 가장 맞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왔는데, 그래서 맥이나 맥북, 맥북에어 등에도 애플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이폰5나 아이패드미니, iOS7 등 잡스 사후 이후 나온 제품에는 2006년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의 충격, 2010년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불러왔던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없다.

   
 
 

애플은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PC 시장 점유율은 5%가 채 안 된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의 연대에 밀렸는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나온다. 구글이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을 휩쓸고 있는데 애플은 여전히 폐쇄적인 앱스토어 플랫폼에 스스로를 고립하고 있다. 그게 애플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애플의 고집스러운 플랫폼 전략이 자칫 소수 마니아 그룹의 취향으로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잡스와 아이브의 인연도 주목된다. 아이브가 1년 동안 개발한 디자인을 들고 갔더니 잡스가 단칼에 잘랐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아이브는 다음날 오후 새로운 스케치를 들고 왔다. 아이브는 잡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다고 불평하곤 했지만 늘 그런 기대를 완벽하게 만족시켰다. 잡스가 영감의 원천이라면 아이브는 그 영감을 구현하는 사람이었다.

한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돌아왔을 때는 아이브도 짐을 싸기 직전이었다. 아이브도 잡스의 부재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말한 적 있다. 아이브의 혁신적인 발상을 이해할 사람이 잡스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돌아온 잡스는 아이브를 신뢰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랬던 아이브가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송두리째 허무는 걸 지켜보는 건 정말 씁쓸한 일이다.

물론 애플의 혁신을 잡스 혼자서 이뤄낸 것도 아니고 잡스 역시 수없이 많은 실수를 거듭했지만 잡스 사후 애플이 혁신의 한계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게 잡스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랫 동안 잡스의 그늘에 있었던 아이브의 새로운 철학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iOS7 이후 더 이상 아이폰은 아이폰이 아니게 됐다는 사실이다. 아이폰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계속해서 잡스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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