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소와 오종은 프랑스의 촉망 받는 감독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큰 활약을 보여주는 못했다. 거의 매해 장편 영화를 만들다보니 빛나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보여주기 어려웠던 것 같다. 어쩌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인 더 하우스>를 만났다. 이 영화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영화제의 좋은 평가가 반드시 좋은 영화라는 증명은 아닐 테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오종의 초기작에 드러난 발랄한 장점들이 완숙하게 녹아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한 때 작가를 꿈꾸었고 그래서 소설도 한 권 상재했지만,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지금은 고등학교 문학 교사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제르망에게 클로드의 작문이 눈에 들어온다. 하찮은 수많은 작문에 비해 단연 군계일학이었던 것이다. 주말에 한 일을 글로 쓰라고 한 과제인에, 클로드는 친구 라파의 가족 이야기를 써냈다. 그런데 그 글을 보면서 제르망은 묘한 매력을 느끼면서 클로드의 재능도 인정하게 된다. 이제 제르망은 클로드에게 개인 지도하다시피 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가르친다.

   
영화 <인 더 하우스> 포스터.
 
그런데 글쓰기에 대해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문제가 발생한다. 클로드가 쓰는 글이라는 것이 라파의 가정에 대해 쓰는 글인지라, 라파 가정의 은밀한 부분을 글을 통해 봐야하기 때문이다. 라파의 글을 통해 생활의 활력을 되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순간 클로드의 글을 보는 제르망과 그의 아내 쟝은 자신들이 관음증 환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 느낌은 영화를 보는 관객도 마찬가지로 가지게 된다. 영화라는 매체가 원래 관음증을 부추기는 매체인지라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클로드는 매 시간 과제를 제출하면서 “다음 호 계속(to be continued....)”이라는 표현을 통해 다음 글을 기대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마치 연속극의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라파의 집에서 발생하는 은밀한 비밀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클로드가 라파의 가정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클로드의 아버지는 부상을 당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클로드가 돌봐야 한다. 클로드의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가정은 좋은 곳이 아니다. 이에 비해 라파의 아버지는 아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라파의 어머니는 신비한 아우라를 지닌 여성이다. 적어도 클로드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자신의 가정에 비하면 라파의 가정은 완벽한 가정인 것이다.

클로드가 욕망하는 가정이 라파의 가정이지만, 결국 클로드의 욕망은 라파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으로 귀결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16살의 그 시절, 클로드는 라파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강하게 지니게 된다. 라파는 클로드를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하지만, 클로드는 라파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클로드의 욕망은 라파 어머니에 대한 욕망으로 귀결되는데, 사건의 파국도 결국 어머니에 대한 욕망 때문에 발생한다.

   
영화 <인 더 하우스>의 한 장면.
 
클로드에겐 그가 쓰는 글이 그의 세상의 전부이다. 그의 글은 비루한 현실에서 그를 벗어나게 해주는 판타지와 같은 것이다. 클로드는 점점 더 글에 빠져들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위험한 욕망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제르망이 클로드에게 “넌 욕망과 글을 혼동하고 있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글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는 순간, 그의 욕망도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클로드는 영일하면서 영악하기 때문에 제르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현실에도 개입하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제르망의 역할이다. 그는 클로드의 글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계속 글을 쓰게 만들고 심지어 학교에서 선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르망은 자신의 인생이 지닌 권태와 지지부진함을 클로드의 글을 통해 에너지를 느끼며 견디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제르망이 클로드의 글을 지도하면서 현실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명목상으로는 글쓰기 지도이지만, 클로드가 쓰는 글이 라파의 집에서 겪은 일들 적은 것이기 때문에 그 집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제르망이 지도하게 되면서 글쓰기와 현실의 개념이 서서히 그 고유한 경계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현실을 글로 쓰는 것인지, 글로 쓰기 위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인지 혼동하게 되면서, 결국 현실이 단순히 글의 소재가 되지는 않게 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클로드의 글이 그의 글을 읽는 제르망과 그의 부인 쟝의 삶에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이 복잡한 고리들!

   
영화 <인 더 하우스>의 한 장면.
 
영화는 점점 파국으로 향해간다. 클로드의 욕망은 점점 심해져, 이제 제르망이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심지어 제르망도 클르도에게 당한다(?). 라파의 집에도 균열이 일어나는데, 클로드는 그 균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클로드의 글을 함께 읽으며 조언을 주던 제르망의 아내 쟝의 사업도 위기에 처했다. 

악화일로의 길을 가던 영화는 마무리를 해야 한다. 클로드의 글은 어디에서 멈 출 것인가? 클로드의 글이 곧 현실이고 픽션인 이 기묘한 관계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클로드와 라파와 제르망과 쟝과 라파의 부모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존재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제르망과 클로드의 판타지에 불과한 것인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마지막 줄에 앉은 소년>을 영화라는 매체에 맞게 각색한 프랑소와 오종은 글쓰기라는 단순한 소재를 통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는 우리의 은밀한 욕망과 그 관계를 역시 관음증의 매체인 영화를 통해 적절하게 그려놓았다. 한동안 주춤하던 오종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이 작품이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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