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기준 평균시청률 4.15%(AGB닐슨미디어, 케이블 가입가구 기준). 최고 시청률 5.39%. 수도권 기준 가구 시청률 최고 6.62%. KBS에서 CJ E&M으로 옮긴 나영석PD의 케이블 데뷔작 <꽃보다 할배>의 5일자 1회 시청률이다. 첫 방송으로 판단하긴 이르지만, <꽃보다 할배>, 기대했던 만큼 재밌다. 조만간 6%대에 머물고 있는 KBS <1박 2일> 시청률을 넘어설 것 같다.

CJ로 옮긴 나영석 PD는 분명 고민이 많았을 거다. 주변의 기대는 높고, KBS처럼 섭외는 쉽지도 않고, 새로운 포맷을 선보여야 하는데 30%대 시청률을 자랑했던 <1박2일>의 성공이 눈앞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KBS를 대표하는 예능PD였던 만큼, 지난해 <응답하라 1997>을 연출한 신원호PD 만큼의 센세이션을 기대하며 욕심도 컸을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꽃보다 할배>는 성공을 위한 여러 장치를 갖고 안정적으로 탄생했다. 우선 그는 톱스타처럼 섭외가 어렵지 않으면서 지금껏 예능에 등장하지 않았던 ‘신예’를 발굴했다. 이순재(80세), 신구(78세), 박근형(74세), 백일섭(70세). 모두 시청자 눈에 익숙한 국민배우들이다. 아이돌과 20대 위주의 출연진이 대부분인 tvN에서 등장한 역발상이다.

   
▲ tvN '꽃보다 할배'. ⓒtvN
 
케이블을 보는 중년층 이상 시청자는 자신이 모르는 젊은이들이 나오면 자연스레 채널을 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상파 주말드라마 대부분을 섭렵한 이들 H4(<꽃보다 남자>의 F4를 차용한 할배 4명)가 나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평균연령 76세인 연기파 할배들이 ‘1박 2일’의 확장판 격인 해외여행에 나선다? 기본 콘셉트만으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나영석PD가 본인의 장기가 된 여행 포맷을 이적 후 첫 작품에 가미한 것은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대중의 관심이 높은 본인의 인지도를 이용해 꾸준히 누리꾼을 중심으로 타겟마케팅을 해온 점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1박2일>에서 발굴했던 ‘미대오빠’ 이서진(43세)을 할배들의 짐꾼으로 활용한 점도 자칫 고리타분해질 수 있는 출연진 구성에 변주를 주는 점에서 좋다.

H4는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치는 자유배낭여행에 나선다. 올해 80세인 이순재는 마지막으로 배낭을 메던 때가 6‧25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멤버들은 여행계획과 숙소예약 등을 모두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제 여행을 가볼만해지니까, 나이가 다 들었다”고 말하며 출국 전 설레는 신구 할배의 모습은 몰입도를 높인다.

   
▲ tvN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 tvN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젊은이에게 자유여행은 낭만이지만, 할배들에겐 모험이다. 시청자도 다 알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지하철 계단을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다 힘들어 아내가 싸준 장조림통을 던져버리는 백일섭 할배의 모습에선 리얼함이 느껴진다. 이윽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시청자도 이서진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하지만 여행은 이제 첫날을 넘겼을 뿐이다.

<꽃보다 할배>는 팔팔한 아이돌과 꽃미남, 천하장사가 등장하며 정작 왜 해외에 나가야 하는지 찾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 최근 국내에서 다이빙에 열중하고 있는 <맨발의 친구들>과 비교가 된다. 나영석PD는 할배들을 통해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여행’을 이야기하며 시청자가 할배들의 여행을 응원할 수 있게 연출했다. 나영석PD는 늘 그랬던 것처럼 사건과 갈등에 적절히 개입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젊은 감각의 화면구성과 자막배치는 10~20대 시청자도 끌어들일만 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기대수명은 80.8세다.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노인의 일상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삶의 전형이다. 역사와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노인의 위대함은 스마트미디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래서 할배에 주목한 예능이 반갑다. 나이 팔십에도 부인 말을 잘 듣는 ‘순한 양’ 이순재, 손주바보 박근형‧백일섭, 살인미소 둘째형 신구의 자유여행을 바라보며 우리도 언젠가 떠나게 될 여행의 이유를 찾게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