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관, 서울의 중심 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KT의 여의도빌딩. KT는 지난 5월 말 이곳에서 ‘비밀 공사’를 진행했다. KT에스테이트 경영진이 직접 방문했다. 여의도빌딩에 근무하던 직원들 사이에서는 “높으신 분이 오니 조용히 하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KT가 뜯어고친 곳은 이 건물 5층 한편. 본사 소속 중부네트워크 여의도지사가 있던 사무실 5-26이다. 방 3개짜리 사무실은 새 주인을 맞았다. KT가 경영 자문 등을 목적으로 영입했다는 ‘친박’ 낙하산 김병호 전 한나라당 의원이 주인공이다. KT는 지난 3월 ‘친박 좌장’ 홍사덕 전 의원을 경영자문으로 영입한 데 이어 김 전 의원도 영입했다.

5일 기자가 찾은 이 사무실에는 ‘명패’가 없었다. “환기를 위해서 잠깐 열어뒀다”는 출입문을 통과하니 이 사무실을 관리하는 두 명의 노동자가 기자를 맞았다. 좌측에는 김병호 전 의원이 사용한다는 방이 두 칸 있었고, 오른편에는 ‘공조실’이 있었다. 30평 가까이 돼 보였다.

   
▲ 5-26 사무실 출입문 밖에서 본 내부 모습. 정면에는 이 사무실을 관리하는 직원 두 명의 책상이 있고, 오른편에는 공조실이 있다. 왼편에는 김병호 전 의원이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이 두 칸 마련돼 있다. 사진=박장준 기자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 두 명은 ‘KT소속이냐, (부동산 관리하는) 에스테이트 소속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 “아직 소속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직무는 김병호 전 의원을 모시는 일이다. 그런데 “아직 명함도 나오지 않았다”고 A씨는 말했다. A씨는 이름을 밝히는 것조차 꺼렸다.

A씨는 “일주일 동안 딱 한 번 (김병호 전 의원이) 오셨다”고 전했다. “아직 (직함 등이) 결정되지 않아 명패도 비어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B씨는 “여기에 온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어떤 목적인지 모르겠다”며 “그냥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대기만 했다’고 한다.

KT의 한 직원은 “대단한 분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아주 급하게 공사를 시작해서 일주일 정도 만에 끝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이석채 회장이 특별히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누가 오는지 ‘보안’이 걸려 있어 직원들도 몰랐다”고 말했다. 복수의 여의도빌딩 직원들은 “누가 오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 김병호 전 의원이 사용하는 KT여의도빌딩 사무실. 사진=박장준 기자.
 
KT새노조 이해관 위원장은 “KT는 비용을 줄이려고 장비, 물품, 사무실 공간도 줄이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친박 낙하산에게 사무실을 내줬다”고 비판했다. 이해관 위원장은 “여의도 ‘낙하산’ 사무실은 이석채 회장이 KT를 사유화한 결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실제 KT의 광화문지사에는 스마트워킹이 구현하는 사무실이 있다. 4050세대 직원들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새로운 자리에 찾아 앉는다. 정해진 자리가 없어 매일 사물함에 짐을 넣어둔다. 이 직원들은 밤늦게까지 회사가 요구하는 ‘자질’을 암기하고 퇴근한다. 다음 날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을 확률은 적다.

익명을 요구한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KT가 김병호 전 의원 사무실을 어디에 차려줄지 궁금해 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석채 회장의 목적에 딱 맞는 곳에 마련한 것 같다”며 “친박 정치인을 영입해 여의도에 사무실을 차려준 건 결국 ‘정치적 목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02년 민영화를 전후로 KT 노동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이석채 회장은 이마저도 줄이고 있다. KT 노동자들 다수는 ‘영업조직’ 가는 것을 사실상 정리해고라고 생각한다. “KT 노동자들 카카오톡 프로필엔 상품 가입 독려가 적혀 있다”고 이해관 위원장은 전했다.

5-26. KT 내부와 업계에서는 바로 이 사무실에서 이석채 회장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민영화된 공기업, 주인 없는 회사 KT가 정권의 전리품이 됐다. KT 노동자들은 오늘도 ‘낙하산’에게 자리를 뺐기고 쥐 죽은 듯 산다. 이석채 회장은 노동자를 쫓아낸 사무실에 낙하산을 내려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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