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임의 공개 사건과 관련해 이 대화록 작성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김만복 전 원장이 작성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이는 명백히 ‘1부만 남기고 모두 폐기하라’는 자신의 지시사항을 어긴 항명죄이자 2급기밀을 임의로 발간한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나섰다. 

김 전 원장은 대화록을 새로 작성하는데 관련된 책임자를 두고 모두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은 김 전 원장이 지시를 불이행한 일이 없으며 2008년 1월 작성된 자료도 김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이에 진위 여부에 따라 이른바 ‘NLL 대화록 공개’ 사태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3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단독인터뷰에서 국정원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정상회담 대화록 작성일자가 ‘2008년 1월 3일’로 기록된 것과 관련해 “당시는 내가 국정원장에 재임하던 시기였는데도 2008년 1월에 작성한 사실조차 몰랐다”며 “나는 분명히 (청와대 지시에 따라) 2007년 10월에 작성해 청와대와 국정원 각각 1부씩 보관하도록 담당 국정원 간부에게 ‘1부만 보관하고 나머지가 있다면 전부 파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지시는 구두로 이뤄졌으며, 담당책임자는 고위 간부였다고 김 전 원장은 설명했다.

   
국정원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2008년 1월' 작성된 것으로 돼 있다.
ⓒCBS노컷뉴스
 
이 때문에 이번에 국정원이 공개한 정상회담록이 ‘2008년 1월’에 새로 작성된 행위 자체에 대해 김 전 원장은 “항명죄이자 보안누설죄에 해당한다”며 “버젓이 1부가 남아있는데 왜 다시 제작하느냐”고 비판했다. 김 전 원장은 “이미 2007년 10월에 작성이 완료돼 국정원은 (1부에 대한) 2급 비밀 보관 관리만 하고 있어야하는데, 왜 새로 만들었는지 납득이 가질 않으며 이는 의법조치해야 한다”며 “(새로 작성한 자료를 정상 절차대로 보고한 일이 있다는 국정원측 설명에 대해) 정상적인 절차대로 보고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원장이던 내가 (2008년 이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없는데 어떤 절차대로 보고했다는 말이냐”고 강조했다.

김 전 원장은 “당시 작성과정에서 글씨가 잘 안보여서 정확하게 확인하고 수정하기 위해 작성됐던 작업중 부가물(작업본) 등이 여럿 있었을텐데 2007년 10월 지시한 이후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이란 청와대 원본 1부, 국정원 1부만 남았을 뿐 해당 기록물이라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며 “국정원의 경우 내가 ‘1부만 남기고 다 없애라’ 했으므로 그 외에 다른 대화록을 작성한 것은 항명죄이자 비밀누설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직원법 17조(비밀의 엄수) 1항은 “국정원 직원이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으며, 동조 5항엔 “직원이 국가정보원의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발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표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를 어길 시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32조 벌칙조항).

이와 관련해 앞서 국정원 대변인은 이날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대화록 작성이 2007년 10월에 이뤄진 것은 맞고, 청와대에 보고도 됐다”며 “2008년 1월에 작성한 것은 우리가 청와대에 보고도 하지 않고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우리만 갖고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는 순수하게 우리만 한 부 갖고 있는 원본으로 대통령 기록물로 보관된 자료와 동일하냐 안하느냐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우리가 정보 수집 기관으로서 중요한 회의록은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작성, 보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8년 10월 국정감사 때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이 대변인은 “2007년 10월 것은 청와대에도 보고됐으니 대통령기록관으로 가져갈 수도 있으나 2008년 1월 작성된 것은 청와대에 주지도 않은 ‘국정원 원본’”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료의 활용과 관련해 이 대변인은 “정상적인 보고과정을 통해 보고한 적은 있으나 다른 곳에다 빼돌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2007년 10월 작성된 원본을 현재 보관하고 있지 않으며 그 즈음 모두 폐기처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날 저녁 재차 통화에서 “‘2007년 10월 작성된’ 것은 폐기처분하고 없으며, 2008년 1월 작성된 자료만 있다. 2007년 10월 즈음에 폐기하라는 지시 이후에 다 폐기했다”고 말했다.

‘1부만 남기고 폐기하라’고 지시했다는 김만복 전 원장의 발언에 대해 이 대변인은 “그건 모르겠다. 제가 모를 수도 있으나 실무부서에서 내게 없다고 얘기를 해서 나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며 “우리는 당시 김 전 원장의 파기 지시를 이행했으며, 당시 작업한 사람만 (어떤 지시가 있었고, 어떻게 이행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1월’에 작성된 자료가 원장 몰래 작성됐다는 김 전 원장의 발언에 대해 그는 “실무자에 따르면 김만복 원장 지시로 2008년 1월 작성본이 만들어진 것으로 안다”며 “(‘항명죄’나 ‘비밀누설죄’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김 전 원장의 지시에 의해 2007년 10월 작성한 자료가 폐기되고, 2008년 1월 자료가 만들어졌다’는 말의 근거나 문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대변인은 “그걸 누가 알겠느냐. 김만복 원장 만이 알지 않겠느냐. 실무진에 지시했다는 것으로 안다. 이는 국정원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대변인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다. 실무진이 내게 얘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만복 전 원장은 이런 주장을 두고 “전적으로 틀린 사실이며, 한 부를 보관하고 나머지를 파기하라고 지시했다”며 “그 책임자가 지금 국정원에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현재 ‘2007년 10월’에 작성된 원본을 보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보안누설죄(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 반드시 ‘비밀관리기록전’에 남아있어야 한다”며 “지금 (대변인이) 잘못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관련자들이 처벌받아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2007년 10월 정상회담 때 사진. 청와대 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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