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체제 도입하자는 건데 왜 ‘민영화’라고 비판하는 겁니까?”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정부는 철도, 전력, 가스부문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했거나 이를 추진하고 있다. 영리병원과 메디텔은 이미 법안이 통과돼 들어와 있다. 상하수도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을 책임지던 방식에서 지자체별로 수자원공사 등과 위탁계약을 맺는 추세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하나 같이 “경쟁체제 도입은 민영화 우회로”라고 지적한다. 영국과 미국의 실패를 예로 든다. 실패한 민영화 사례는 가까이에 있다. 한국통신, 현 KT다. 정부는 KT를 민영화한 뒤 시장에 내맡겼다. 주주는 배당금을 챙겼지만 노동자들은 절반 정도 줄었다. 이제 통신요금 인상을 견제할 ‘공적 장치’는 없다.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 상황이라면 절대 못 막는다.” 1998년 IMF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시작한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문 합리화로 이어진다. 미디어오늘이 공공부문 민영화 현황과 쟁점을 짚는다. /편집자주

사기업은 언제나 돈을 보고 움직인다. 공공 서비스인 ‘가스’를 취급하는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2007년 직수입을 허가받은 GS는 가격이 폭등하자 이를 유보했다. 대신 가스공사에 물량을 요청했다. SK는 2007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연료가 비쌀 경우, 아무리 전력거래시장이 민간에게 유리하더라도 수익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GS와 SK 등 민간 가스사업자들은 원산지에서 천연가스를 산업 및 발전 목적으로 직수입하고 있다. 전체 가스 사용의 70% 정도를 차지하는데 민간 직수입 비율은 5% 수준이다. 2000년대 초반 가스공사 분할 및 매각식 민영화 정책이 중단됐고, 정부는 직수입권을 재벌에게 개방했다. 2002년 SK와 포스코는 가스 직수입을 시작했다. 가정용 가스는 모두 한국가스공사가 수입해 사업자들에게 넘기고 있다.

지난 4월 새누리당은 일명 ‘가스민영화 법안’으로 불리는 도시가스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SK, GS 등 민간사업자의 ‘자가소비용’ 천연가스 직수입을 대폭 확대하고, 수입 물량을 국내외 판매를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은 한국가스공사 독점하는 가스 도매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은 사실 기존 법률과 큰 차이가 없다. 물량이 남았을 때 이를 사업자끼리 사고팔 수 있게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GS와 SK 등 민간사업자는 현행법으로도 산업·발전용 가스를 ‘자가소비’ 목적으로 직수입할 수 있다. 그런데 민간사업자들은 대부분 가스를 가스공사에서 산다. 가스는 석유보다 가격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굳이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가 없다.

   
▲ LNG를 실은 선박의 모습. 사진=한국가스공사.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이종훈 지부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재 공사는 산업, 발전, 가정용 구분하지 않고 수입하고 있다”며 “재벌은 지금이라도 산업, 발전용 가스를 직수입할 수 있지만 관리비용 때문에 전체 5% 수준만 수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2017~8년께 미국에서 셰일가스(전통적인 가스보다 매장위치가 깊은 셰일층에 존재해 채산성이 낮았던 가스)가 대량으로 생산돼 수입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 법안은 수입한 뒤 남은 물량을 사업자끼리 판매할 수 있다는 ‘규제 완화’라 민간사업자의 리스크는 크게 줄어든다. 민간사업자는 산업·발전용 가스 직수입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가스공사의 수입비중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법안이 ‘민영화’ 법안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현행 민간사업자의 직수입 비율은 5% 남짓이다. 그런데 이 비율이 늘어나면 가스공사의 비중은 줄게 된다. 가스공사의 역할이 축소되고, 민간사업자의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회공공연구소 송유나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정유시장 같이 재벌이 독점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회한 민영화’로 민간부문의 시장 진입을 허용해 온 정부가 민영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재벌이 수입한 물량을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새누리당 법안의 핵심”이라며 “재벌이 가스수입을 늘리면 가스공사는 리크스만 떠안는 ‘석유공사’나 파이프 관리만 하는 ‘송유관공사’와 같이 껍데기만 남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스공사는 부실기업이 되고, 결국 공중분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재벌의 수입경쟁이 심할수록 가정용 가스요금이 오를 것은 확실해 보인다. 가정용 가스는 계절별 공급량이 크게 9배까지 차이난다. 겨울이 9라면 여름은 1이다. 가스공사가 사계절 내내 일정한 산업용, 발전용 가스를 포기하는 만큼 원료수입비용은 계절에 따라 천지차이가 된다. 가정용 가스비의 90~91%가 원료비인데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종훈 지부장의 의견이다.

   
▲ 산업용 수요 이탈시 가정용 요금 인상 가능성. 지난 2008년 9월 11일 한국도시가스협회가 가스산업선진화방안 세미나에 제출한 자료. 2013년 5월 사회공공연구소 이슈리포트 ‘박근혜 정부의 친재벌 에너지(전력·가스) 정책’에서 재인용.
 
이 지부장은 “민간이 발전용과 산업용을 가져가면 가정용 요금이 20~30%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서 가스공사의 민영화가 유보됐던 이유도 요금인상 때문이다. 2008년 9월 한국도시가스협회는 “산업용 수요를 재벌이 가져갈 경우, 손실 보전을 위해 가정용 요금이 최소 5.2%(인천도시가스)에서 최대 467.6%(서해도시가스)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같은 해 삼일회계법인은 산업용 직수입이 확대된다면 가정용 가스요금이 지역별로 최소 6.99%(수도권 사업자 삼천리)에서 84.66%(충남지역 사업자 서해도시가스)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산업용 요금은 줄어들 가능성도 나온다. 가스공사노조는 “경쟁 도입을 추진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 가정용 요금은 산업용 요금에 비해 230%가 높다”고 전했다.

새누리당의 민영화 법안은 6월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다. 민주통합당 등의 반대로 처리되지 않고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찬성론자들은 “발전용 가스를 재벌이 직수입하면 수입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이 하락분이 전력요금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 SK E&S의 영업이익은 설비용량이 26배 이상인 한국수력원자력보다 많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정유시장처럼 완전 민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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