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豫想)이란 낱말의 쓰임새가 요즘 수상하다. ‘생각하다’ ‘상상하다’와 아예 같은 뜻으로 이 말을 ‘지르는’ 이들이 있다. 현장의 사례(事例)다.

(…)A씨는 “상한 음식을 판매한 것(…)고객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마트 측은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영상 31.6도의 기온을 기록하면서 이동 과정 중에 일부 식품이 상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 30일자>

‘뉴스 도매상’이라는 통신사의 홍성 지역 기사 일부다. 다른 몇 개 신문에도 이 기사를 그대로 (아무런 검토 없이) 전재(轉載)한 기사가 실렸다. 더위 탓에 상한 것으로 생각되는 식품을 판 유통회사에 관한 기사다. 기사 중 ‘예상’을 ‘생각’이나 ‘상상’으로 바꿔보니 비로소 뜻이 통한다. 난삽(難澁)하나 그제야 무슨 말 하려는 것이었는지 알겠다.

사전은 예상을 ‘어떤 일을 직접 당하기 전에 미리 생각하여 둠. 또는 그런 내용’이라 푼다. 예(豫)자는 ‘미리’라는 뜻이니, 미리 생각[상(想)]한다는 말인 것이다. 그 뜻을 기사에 대입해 읽어보면, 그 말이 잘못 쓰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미리’라는 뜻이 들어가지 않아야 했다.

대부분 예상이란 말의 뜻을 안다. 그러나, 이렇게 미리 豫와 생각 想의 뜻이 레고 같은 퍼즐 조각놀이처럼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라고 이해하는 이는 일부다. 어릴수록 낱말의 이런 구조가 생소하게 여겨질 것이다. 상당수 우리말의 뜻을 속으로 붙들어 주는 한자(漢字)의 존재 때문이다.

한자 개념을 가지지 않은 이들은 ‘연상’을 한 무더기로 생각한다. 소리가 같은 聯想[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부름], 年上[자기보다 나이가 많음]과 같은 낱말들도 마찬가지다. 뜻은 각각 따로 익혀야 한다. 교육받은 방식의 차이가 빚고 있는 현상이다.

생각 또는 추측을 뜻하는 말로 ‘예상’이란 단어를 쓰는 이들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언론 종사자 중에도 있다. 예를 든 연합뉴스 뿐 아니라 KBS 같은 방송사의 뉴스에서도 관찰된다. 방송의 다른 프로그램이나 일반 대중의 말글에서는 더 흔하게 본다.

‘미리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미리’가 있고 없음이다. 연관되는 점은 있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너무도 당연하기에 이런 차이를 지적해주는 이들이 없어서일까? 어느덧 큰 언론사의 뉴스까지 이렇게 얼룩지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미 이를 무심코 봤다. 어그러진 말이 잘못 퍼지는, 즉 와전(訛傳)되는 경로 중 하나다. 언론이 본보기가 될 만한 바른 말을 갖지 못하면, 세상은 잘못된 뜻을 갖는다. 언론은, 실질적으로, 교과서다. 시민들의 언어도 시나브로 얼룩진다.

필자의 이런 걱정에 대해 하늘이 무너지면 어찌할까 걱정했다는 ‘기우(杞憂)’라는 중국 고사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짜 신문의 이런 기사를 보면 필자의 걱정이 괜한 것이 아님을 공감하실 수도 있겠다.

(…)영남제분 회장이 담당 PD를 찾아오면서 프로그램은 시작됐다. 방송 이후 회사가 어려워졌다는(…)시청자들은 죗값을 치러야 할 가해자 회장부인이 10여 년간 호위호식 해왔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후안무치한줄 알아야 한다고 일축하는 분위기다. <국민일보 6월 30일자>

이 글의 ‘호위호식’은 사전의 호의호식(好衣好食)과 어떻게 다를까? 또 ‘후안무치한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는 무슨 뜻일까? 뜻이 아닌 소리 무더기로만 글 (잘못) 배운 이의 ‘작품’이다. 뜻 모르는 말은 왜 쓰지? 최후의 보루(堡壘)인 사전마저 이 글의 필자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도, 외면하고 말았다.

   
강상헌 언론인 ·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무기(武器)가 없는 자는 전쟁터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그로 인해 동료 전우(戰友)와 후방(後方)의 백성들이 위험에 빠진다. 보병의 소총(小銃)처럼, 언론 종사자의 기본 무기는 말글이다.

<토/막/새/김>
글자의 구조, 그 틀엔 일점일획(一點一劃) 쓸 데 없는 것이란 없다. 점, 획 하나하나가 오롯한 뜻 지니고 말을 이룬다. 그림글자 한자는 더 말할 나위 없고, 우리말이나 영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원리를 마음에 지니지 않고 글을 보면, 낱말들 사이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뚜렷이 구별하게 해주는 요소들을 직감적 또는 본능적으로 알아채기 쉽지 않을 터다. 독서의 저해(沮害)요소 중 하나다. 보는 대로 글자가 뜻으로 바르게 변환되어 인식(認識)되지 않는다면, 책 오래 못 읽는다. 다른 차원의 난독증(難讀症)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한글을 얼마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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