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화제작은 역시 조용필의 19집 [Hello]였다. 1980년대를 지배한 한국 대중음악의 가왕 조용필이 10년만에 내놓은 이 음반은 현재 23만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중이다. 조용필이라는 이름의 역사성과 무게감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지금껏 조용필이 해왔던 음악과는 다른, 트랜디한 음악을 시도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전략과 트랜디한 음악을 손색없이 소화해낸 음악적 저력은 최근 다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소비자로 복귀한 중장년층 소비자들과 조용필을 당대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 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조용필 19집 [Hello] 앨범 표지. | ||
재즈보컬 나윤선 [Lento] 앨범 표지 | ||
어떠한 작품도 시대와 무관할 수 없겠지만 반드시 모든 작품이 시대적 맥락으로만 사유되지 않고, 상품으로만 연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의 내적 완성도는 어느 것 하나 답답하지 않은 일 없었던 2013년 상반기에 거의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조용필과 나윤선 사이에서 제 목소리와 제 세계를 보여준 이들의 음악이 이어졌다. 이승열은 [V] 앨범으로 그가 시도하지 않았던 사운드를 실험하고 그 안에서 유영했다. 모던 록 안에서 머무르는 것처럼 보였던 이승열의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가장 돋보인 음반으로 음악의 일반적 기승전결을 고려하지 않은 흐름과 그 흐름을 이끌고 가는 이승열의 칼라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사운드로 말하자면 모즈다이브(Modsdive)의 [The Stasis Of Humanity]와 두 장으로 나눠서 발표한 샤이니(SHINee)의 음반 [The 3rd Album Chapter 1. `Dream Girl-The Misconceptions Of You`]과 [The 3rd Album Chapter 2. `Why So Serious? - The misconceptions of me`] 역시 잊혀지지 않는 소리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모즈다이브는 록 밴드들의 신보 가운데 기억나는 작품들이 많지 않은 2013년 상반기에 포스트록의 어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서정미를 잘 구현해냈다.
샤이니는 일렉트로닉 팝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다양한 매력을 살려내는 현란한 방법론으로 그동안 구축된 케이팝의 제작 시스템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샤이니를 제외하면 대체로 기존의 관성 안에서만 머물렀고 결국 후퇴했다.
새로운 발견은 가령 대형연예기획사와 함께 일하고 있으면서도 인디 레이블의 이름으로 새 음반을 발표한 선우정아의 유니크한 몫이었다. 소울풀하면서도 가요의 매력을 잃지 않고, 도식적인 스타일로 주저앉지도 않은 선우정아의 재기와 능수능란한 에너지는 그녀의 음악과 활동 모두를 주목하게 했다.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이효리의 변신 역시 흥미로웠다. 이미 주체적이고 생태적인 예술가로서의 고민을 내비친바 있었던 이효리는 자신이 직접 쓴 곡들을 통해 진행 중인 변화의 일단을 드러냈다.
이효리 5집 - Monochrome | ||
김대중의 [씨 없는 수박] 앨범 표지. | ||
이들이 젊은 감각을 드러냈다면 13년만에 돌아온 김창기는 오직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말들을 공명할 수 있는 노래로 건넸다. 새롭지 않은 사운드로도 얼마든지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노래가 있어 나이 든다는 것이 서글프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재즈쪽에서는 곽윤찬과 배장은, 허소영, 윤석철 트리오가 퓨전과 서정, 고전과 새로움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훌륭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이제 음악 시장은 음반만으로, 음악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2013년 상반기 내내 늘어난 내한공연과 페스티벌, 쉬지 않고 이어진 음악 저작권 관련 논쟁과 음원 징수 규정 논쟁, 그리고 국내 뮤지션들의 해외 진출이야말로 현재의 대중음악이 어디에 있는지를 더 잘 보여줄지 모른다. 이미 오래전부터 음악은 상품으로만 존재하고, 이제는 음악이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BGM으로 소비되는 시대 아닌가. 장르와 사운드의 진전과 혁신, 주체와 시대의 교감과 대응이라는 음악적 책무를 감당하는 이는 여전히 적고, 이를 모두 감당해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직립할 수 없는 시대다. 그래서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음악을 어디에서 어떻게 듣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