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의 외신의존도는 거의 맹종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특히 외신 중 한국관련, 그중에서도 북한관련 보도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무조건 쓰고 보자는 식이다.

경향신문94년 2월 15일 1면 머리에 “북한 이미 핵실험”이란 충격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이 보도는 일본 지지통신과 프랑스의 AFP통신을 인용한 것이다.

지지통신과 AFP통신은 러시아 안보전략연구소 고문 블라디미르 쿠마초프의 말을 빌려 “북한이 이미 핵 폭탄을 제조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실험까지 마쳤다고”고 보도했고 이를 경향신문이 받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동안 설왕설래했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가시화된 것이고 이는 한반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올 것이 자명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지하 핵실험이 인공위성에 감지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다 북한핵 개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정보왕국 미국이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경향신문은 다음날 15면 과학면에 미국 과학주간지 사이언스를 인용, “어떤 나라가 1kt의 핵실험을 숨기기 위해 지하에서 핵실험을 한다면 그에 따른 핵폭발은 지상에서의 0.0015kt 규모의 핵폭발과 마찬가지의 지진시그널이 발생할 뿐이기 때문에 소규모 핵실험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하핵실험 보도가 나간지 하룻만에 이 기사는 사실상 오보인 것으로 판명났다. 경향신문 기사를 본 본사로부터 확인지시를 받은 중앙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이 보도가 나가게 된 경위를 역취재함으로써 근거없는 보도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발언 당사자인 쿠마초프는 근거를 묻는 질문에 “단지 러시아 언론과 일본 언론에 보도된 사실 등을 보고 개인적인 의견을 낸 것일 뿐”이라고 발뺌했다. 쿠마초프가 근무하는 안보전략연구소는 러시아 외무부나 국방부 등 전문기구의 산화기관도 아닌 존재 자체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단체고, 쿠마초프 또한 전무가도 아닌 무명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처럼 근거없는 보도가 비중있는 기사로 처리된데 대해 경향신문의 한 국제부 기자는 “일단 북한핵과 관련된 자극적인 기사는 키우고 보자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기자들이 기사가 안 된다고 주장해도 타사에서 나갈 경우 책임지겠느냐고 데스크가 닦달하는 데는 견딜 재주가 없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외신기사에 오보가 많은 이유에 대해 국내 언론사의 외신 맹종 외에도 △마감시간대 확인의 어려움 △일부 사회주의 국가권의 폐쇄주의로 인한 확인의 어려움 등을 부수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는 몇 가지 부수적인 문제 해결로는 개선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언론사주와 간부들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언제나 우물안 개구리로 남아 있을 것이고 입맛에 맞는 음식만 골라 먹는 편식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이미 핵실험’ 보도는 그같은 맥락에서 우리 언론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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