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광복 50돌’을 맞아 단행한 특별사면과 복권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이미 지난달부터 역사적인 대화합 조처를 ‘예고’하면서 정국 전환을 요란스럽게 ‘선전’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사면은 기만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싶다.

양심수들의 대거 석방을 가슴 한켠에서 기대했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도 “우리는 더 이상 김영삼 정권에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겠다. 우리는 김영삼씨가 집권하는 한 양심수 석방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에 슬픔을 감출 수 없다”며 분노에 찬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결코 김영삼 정부의 기만적 대사면 때문만이 아니다. 그나마 ‘문민정부’의 ‘치적’이라 할만한 집권초기의 사정 대상자들이 대거 복권되고 재벌 회장들마저 모두 ‘혜택’을 받았음에도 구속 노동자들을 비롯한 절대 다수의 양심수들은 여전히 창살에 갇히거나 쫓기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번 사면 복권에 포함된 인물들을 잠시라도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쉽게 그 ‘편파적 성격’을 알만한 8·11 사면을 바로 우리 언론들이 앞다퉈 떠들썩하게 ‘찬양’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기막히고 절망스러운 것이다. ‘파격화합으로 국정 새 출발 의지’이고 ‘광복 50돌 대화합 의지’라며 너도나도 ‘파격’과 ‘대화합’을 강조하는 언론의 모습은 차라리 안쓰럽기조차 하다.

언론은 여기서 그친 것만이 아니다. ‘대사면을 대화합으로’라거나 ‘파격적인 대특사’라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설은 그나마 지켜야 할 상식마저도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가령 조선일보는 미리 “일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개혁과 사정의 정신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비판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사면-복권의 존재이유나 그 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적반하장격인 논리적 비약으로 정부를 변호하고 있다.

심지어 동아일보의 경우 사설 맨 끝에 “남북관계가 미묘한 시점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을 사면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권 결집’을 겨냥한 정치적 사면에 ‘끼워넣기’식으로, 그것도 무려 45년 동안이나 복역한 장기수 몇 명을 석방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아일보의 ‘용기’앞에서는 할 말을 잊을 뿐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언론이 이번 사면의 성격을 분명히 알면서도 이처럼 일방적인 평가를 한다는 점에 있다. “이번 사면의 두드러진 특징은 군인, 경제인, 정치인들에 대해 가장 큰 혜택을 주었다는 점”이라고 다름 아닌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스스로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기만적 사면 못지않게 언론의 기만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만적인 언론 앞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절망만 할 수는 없다. 언론을 바로 세우지 않고 진정한 사회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새삼스러운 현실인식은 그래서 소중하다.

언론 바로세우기에 우리 모두가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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