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뉴스가 핵심을 흐린 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최근 뉴스의 핵심은 5·18고소 고발사건 전원 불기소 처분과 DJ 신당 창당,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으로 모아진다. 이 세 가지 주요 뉴스를 놓고 볼 때 방송사의 편집이 지나치게 왜곡돼 있다는 것이 방송 민실위의 판단이다.

우선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사고 원인 규명이나 관련 비리 공무원 수사, 실종자 처리문제, 범정부 차원의 피해 보상과 복구 대책보다는 생존자 영웅 만들기와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의 미담 등에 치우쳐 대형참사의 본질을 파헤치기보다는 주변 취재에 너무 경도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지방선거 참패 이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집권 민자당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대형참사가 발생하자 이를 어떻게든 빨리 덮어버리는 청와대측의 보도 협조 요청을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현 민자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숙명적인 정치 라이벌인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정계복귀와 이에 따른 민주당의 분열사은 키울 수 있는 한 크게 부풀려 보자는 게 현 정부와 방송사 사장, 보도 간부간의 일치된 입장인 듯하다.

그래서 각 방송사들은 김대중씨의 정계 복귀를 반대하는 여론 조사 결과와 신당파와 구당파, 이기택 총재와의 갈등을 부각시키는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복잡한 배경이 깔린 정치 현안을 집권당 측의 시각에서 편파적으로 다루는데 이미 길들여져 있는 언론사들의 고질적인 관행으로 권언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다.

위에 언급한 뉴스들에 있어서는 편집의 방향이 문제라면 검찰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피고소인 전원 불기소 처분 보도를 전하는 방송뉴스에 대해서는 도대체 편집진들이 어떤 언론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5·18 은 우리의 현대사를 논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5·18 관련 피고소인들에 대한 사법처리문제는 범국민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내란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의 폭동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피고소인 전원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지난 6일부터 방송은 축소보도로 일관했다. 검찰의 이같은 결정은 5·18의 역사적인 의미를 훼손하고 신군부의 정권 찬탈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인 광주 시민뿐 아니라 국민의 감정을 무시한 처사로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리고는 이는 5·18정신을 계승한다는 현정부의 말이 거짓이고 3당 합당으로 탄생한 YS정부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결정이었다. 또한 검찰이 군사독재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사례였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당일 저녁 메인 뉴스에서 이를 앵커 멘트로 축약시켜 뉴스 말미에 보도함으로써 언론의 비판 기능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더구나 후속기사는 이후로도 전혀 보이지 않다가 열흘이 지난 16일 MBC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공수부 대원들이 양민을 사살한 행위가 검찰조사에서 사실로 밝혀졌다고 특종보도하면서 뉴스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이 사실은 검찰의 5·18 관련 피고소인에 대한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던 지난 6일 이미 MBC 법조 취재팀에 의해 취재가 돼 보고가 됐었는데 편집진들이 차일피일 미르다가 열흘이나 묵혀서 나간 기사라는 것이 민실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그것도 뉴스 말미에 ‘양민 학살’이란 제목 대신 ‘새로운 진실’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제목으로 방송이 돼 방송사 편집진이 자사의 특종보도까지 희석시켜 가면서 정부의 눈치를 살핀다는 반증이 되고 있다.

KBS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해 5·18 관련 뉴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가 검찰이 공식적으로 수사 결과를 밝힌 18일 타사들이 이 뉴스를 머릿기사로 오려 보도할 때야 비로소 DJ 신당창당 관련 뉴스 다음에 9번째 꼭지부터 여섯 꼭지로 나눠서 보도하는 소심함을 보였다.

MBC는 당일 피해 당사장인 광주의 반응을 리포트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앵커 멘트로 축소 보도함으로써 논란을 애써 피해가는 경향을 보였다. 이후 5·18관련뉴스는 뉴스가치와 사회적 파장에 비해 현저히 축소돼 방송되거나 아예 뉴스에서 사라지고 있다.

민실위은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5·18관련 수사를 적당히 마무리하려는 검찰이나 치열한 비판의식과 역사의식이 결여된 채 권력의 눈치만 보는 현재의 언론이 후일 역사적 심판을 함께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무고한 시민을 폭도로 규명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나 지금이나 권력과 언론은 한 치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지각하게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