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갑을문제와 관련해 계약서상 ‘갑을’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갑을관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 실효성을 두고 논란도 함께 일고 있다.

지난 5월 현대백화점은 모든 거래 계약서에 갑을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롯데마트는 계약서류상 갑과 을을 지칭하는 대상을 바꾸었다. 롯데마트를 ‘을’로 하고 협력업체를 ‘갑’으로 명시했다. 나아가 최근에는 ‘을’인 한국방송작가협회(회장 이금림)가 방송사와 제작사에게 갑을 명칭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회장 이금림)는 17일 갑을 용어를 사용치 않겠다는 입장을 지상파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등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방송작가협회는 “갑이 을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해온 사례가 발생했다”며 “더 이상 작가들의 권익이 침해되는 집필계약서에서 갑을 용어를 사용치 않겠다”고 밝혔다.

방송작가협회가 방송사들에 요구한 ‘개정’ 집필계약서에는 갑 명칭 대신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또는 ***제작사가’ 들어가고, 을 명칭 대신 ‘작가 ***’ 로 명시될 예정이다. 이어서 개정 계약서는 “상호존중과 평등정신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집필계약을 채결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키로 한다”로 마무리된다.

방송작가협의회 관계자는  “단지 단어만 바뀌고 내용은 똑같을 수 있지만 그동안 독소조항 수정을 여러차례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 이라며 “용어 삭제가 앞으로 갑을관계 해소에 첫걸음이 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방송작가들은 계약서상 용어 삭제를 요구한 배경에는 많은 부당계약이 있다. 집필 저작권을 제작사, 방송사에게 양도하는 내용도 많고, 상호간의 계약인데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배상을 물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작 이같은 을의 사정을 듣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갑’인 방송사측은 방송작가협회의 요구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작가협회가 직접 방송사에 요구한 것이 아니라 보도자료를 통해서 내용을 알게 됐다. 전체적인 내용을 확인 중에 있다”고만 답했다.   

‘갑을’ 관계에 있어 계약서상 ‘용어’만 없앤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달라지겠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오명석 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그런 방안에) 환영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내용이 바뀌는 게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글자 몇 개 바꾸는 것이 첫걸음이라 하는 것은 오히려 갑의 입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오 회장은 “오히려 본질을 왜곡한다”며 “본질이 아니라 갑을 단어에 집중이 된다” 고 강조했다. 특히 그 사례로 오 회장은 “(편의점에서도) 눈가림 형식의 변경이 있었다”며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서 점주님들에게 동의를 해주지 말자고 했다. 갑을 단어를 바꿀 것이 아니라, 다른 부당한 조항이 바뀌어야 한다” 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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