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오랜 진보 정치의 역사를 자랑하며 2011년 중부지역 노동권 투쟁의 공간이었던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여당이자 보수 성향인 공화당이 공익을 위해 움직여온 한 탐사 저널리즘 기관을 탄압하는 조치를 취하고 시민사회와 언론계가 저지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대상이 된 것은 위스콘신 탐사저널리즘 센터(WCIJ) 로, 2009년 설립 이래로 지역 정부의 지원금 없이 민간 재단과 개인 후원금만으로 운영되어온 곳이다. 그런데 2013년 6월 6일,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 주의회 예산위가 예산안에 새벽 2시에 두 가지 내용을 담은 조례를 긴급 추가시켜 상정했다. 하나는 주립대인 위스콘신대학의 언론학과가 센터에 대해 더 이상 사무공간을 제공해서는 안되며, 다른 하나는 언론학과의 교직원들이 업무시간에 센터와의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위스콘신 탐사저널리즘 센터 홈페이지 화면 
 
이것이 어째서 큰 문제로 받아들였는지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수년간, 미국에서는 탐사저널리즘을 전문으로 추구하는 비영리 뉴스룸들이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규모나 화제면에서 확실하게 주류화된 프로퍼블리카는(ProPublica) 물론, 2013년 퓰리쳐상 전국보도부문 수상자인 에너지-환경문제 전문 초소형 매체인 인사이드클라이밋뉴스(InsideClimateNews) 역시 그 흐름 안에 있다. 변화하는 뉴스매체 환경 속에서 개별 언론사들이 상업적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와중에 공공 사안에 대한 심층취재를 통한 사회적 감시견이라는 저널리즘의 사회적 순기능이 점차 위축되고 있는 현실에서, 비영리 탐사저널리즘 뉴스룸들이 한 가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비영리라고 해도 존속을 위한 일정한 수입은 필요하고, 더욱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다른 조직들과의 일정한 협력 - 인원 교육부터 제보 관리와 뉴스 유통까지 - 관계가 필요하다. 특히 소규모 비영리 탐사저널리즘센터들이 대부분 풍부한 예산보다는 성원들의 높은 소명감과 집요한 취재력에 중점을 두는 만큼, 후자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이런 부분에서 위스콘신 탐사저널리즘 센터는 여타 지역 언론과의 협력관계와 함께, 주립 위스콘신대 언론학과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언론학과에서 학과 건물 안에 사무실 공간을 제공했고, 반대급부로 센터는 학생들을 유급 인턴 취재기자로 고용하며 탐사 저널리즘의 실전 투입 기회를 주었다. 학과와 센터 양측은 각종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론과 실제를 아우르는 시너지 효과를 자랑하며, 지역 탄광 산업의 환경 영향에 관한 심층 데이터 분석부터 정치단체들의 후원금 출처 내역 전체 공개 등 굵직한 탐사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이뤄낸 바 있다. 지역 공공 이슈의 수준 높은 담론을 만들어내는 이런 파트너십은 위스콘신주의 오랜 정책 모토인 ‘위스콘신 아이디어’, 즉 주립대학교의 연구는 주 시민들의 생활 향상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기조에도 명확하게 부합했다.

그러나 센터는 그간 정치적 당파성을 배제하고 사실 전달과 데이터 분석 중심으로 공익을 추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의 중부지역 노동권 투쟁 정국 속에서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매서운 감시 때문에 여당인 공화당의 불만을 사왔다. 결국 그들은 주립대학 예산 배정이라는 자신들의 권한을 악용하여, 대학과의 협력 관계를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견제를 시도한 셈이다.

이에 대해 언론학과 및 대학교 행정본부측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즉각 반발했으며, 위스콘신의 현지 언론사들도 평소의 전반적 보수 또는 진보 성향과 관계 없이 이런 조처를 비판하고 나섰다.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콜룸비아 저널리즘 리뷰, 니만 저널리즘랩 등의 미디어 전문매체와 허핑턴포스트 등 유력 전국 온라인매체들도 비판적 입장에서 이 사안을 소개하고 있는 중이다. 조그마한 지역매체의 사무실 자리 다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비영리 지역 탐사저널리즘센터와 대학의 협업을 통한 저널리즘의 사회적 기능 회복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방식의 탄압의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전 노동법 국면에서도 드러났듯, 위스콘신에서의 움직임은 현재 공화당이 여당을 이루고 있는 다른 중부주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 비영리 탐사저널리즘센터라는 언론 형태는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굵직한 특종을 터트렸고 최근에는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 설립자들 탐사보도로 맹활약중인 뉴스타파 역시 올해 조직명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로 정한 바 있으며, 형식 역시 영리기업이 아닌 비영리 독립언론을 표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영리 탐사저널리즘센터 방식이 다양한 방식의 협력 관계라는 발전 노력을 막 시작해야 할 무렵, 한 발 먼저 그 형식이 개가를 이뤄냈던 미국의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적 탄압 방식의 가능성을 먼저 목도하게 된 셈이다.

위스콘신에서 의회 예산위가 문제 조례들을 포함시킨 예산안은 다음주 중 의결이 시작될 예정이다. 시민단체들, 대학 관계자들, 언론관계자들, 일반 시민들 등은 결의문을 발표하고 서명을 모으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직접적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없는 지구 반대편이라고 할지라도,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 특히 탐사 저널리즘의 가치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지지의 메시지로 힘을 북돋아줄 수는 있다.

*관련자료 모음 페이지 (영어):
http://blog.journalism.wisc.edu/2013/06/06/resource-page-for-wcijsjmc-budget-bill-amendment-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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