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검증 없이 보도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TV조선과 채널A에 대해 중징계인 ‘관계자징계 및 경고’ 조치가 결정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는 13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지난달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와 지난달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등에 대해 심의를 벌였다. 5·18을 앞두고 ‘북한군 개입설’을 보도했던 이들 방송은 이후 파문이 확산되자 사과 방송을 내보내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중징계를 피하지는 못했다.
 
9명의 심의위원들은 두 프로그램이 근거 없는 사실을 검증 없이 내보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왜곡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했다. 다만 일부 여당 추천 위원들은 ‘광주 사태’라고 표현하거나 이들 방송 내용을 ‘합리적 의심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과징금과 경고로 의견이 나눠졌던 TV조선의 <장성민의 시사탱크>가 먼저 심의 안건에 올랐다. 야당 추천인 김택곤·장낙인 위원이 모두 소위에서 낸 최고 수준의 제재조치인 ‘과징금’ 의견을 유지한 가운데, 여당 추천 위원들도 한 목소리로 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지난달 13일 방송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권혁부 위원은 “사실관계 확인이나 증언에 대한 허구성을 사전에 검증하지 못한 잘못이 명백하다”며 “우리가 이미 광주민주화운동은 시민들에 의한 평화적 항쟁이었다는 사실관계가 규명됐고 일반적 평가나 법적 판단이 확립되어 있음에도 여과 없이 방송해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현저히 위반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권 위원은 법정제재인 ‘경고’ 의견을 냈다.
 
엄광석 위원도 “현장에 없었던 탈북자의 일방적 주장을 방송한 것”이라며 “공정성과 객관성을 크게 어겼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금만 확인했어도 허구성이 드러났을 텐데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고’ 의견을 낸 엄 위원은 발언 도중 두 차례에 걸쳐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썼다. 
 
박성희 위원은 “새로운 사실을 규명하려고 시도했으나 결국은 아무런 진실에도 이르지 못했고 엄청난 사회적 파장만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이라며 “검증의 저널리즘을 어겼을 때 어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지 확인해주는 사례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소위에서 경고 의견을 냈던 박 위원은 한 단계 높은 수위인 ‘관계자징계 및 경고’ 의견을 밝혔다.
 
최찬묵 위원은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국민적 합의가 모아진 사안”이라며 “이런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려면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근거가 없거나 막연한 근거를 댔고, 그런 점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말했다. 최 위원도 ‘관계자징계 및 경고’ 의견에 동조했고, 박경신·구종상 위원도 같은 의견을 냈다. 
 
박만 위원장은 “의혹제기 차원이나 근거 없는 설로 국민 화합을 깨치는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관계자징계 및 경고’ 의견에 동의헸다. 이로써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돼 게릴라전을 벌였다는 ‘증언’을 방송한 TV조선은 ‘관계자징계 및 경고’ 조치를 받게 됐다.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대해서도 심의가 이어졌다. 채널A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북한군이라고 주장하는 인물과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내보낸 바 있다. 이후 소위원회 의견진술 과정에서 ‘출연자가 5·18 당시 북한에서 광주에 왔다는 근거가 있냐’는 심의위원들의 질의에 대해 채널A관계자가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냐’고 답변해 물의를 빚었다.

   
▲ 지난달 15일 방송된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여당과 야당 추천 위원들은 역시 방송 내용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의견은 엇갈렸다. ‘사과방송 등 후속조치가 미흡했고, 변명으로 일관한 점에서 TV조선보다 더 강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그마나 검증 노력을 했고, 합리적 의심을 갖기 충분한 내용을 용기있게 보도하려 했다’는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최고수위 제재조치인 ‘과징금’ 의견을 낸 김택곤 위원은 “사실확인을 하지 안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규명해보겠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며 “TV조선보다 더 심한 상처를 주고 있고, 저널리즘의 모습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역시 ‘과징금’ 의견을 낸 장낙인 위원도 “(TV조선은) 보도를 통해 방송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고 사과도 했고, 의견진술 과정에서도 방송 내용이 잘못됐다는 걸 진솔하게 얘기했다”며 “<김광현의 탕탕평평>의 경우는 사과를 하긴 했지만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박경신 위원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박 위원은 “TV조선은 ‘전언’을 보도했는데 여기에서는 출연자가 본인이 증인임을 자인하고 있어 훨씬 더 대중을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TV조선에 대해서도 과징금 의견이었지만, 채널A를 더 과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단계 (제재수위를) 낮췄다”며 채널A에 대해 ‘과징금’ 의견을 냈다. 
 
반면 엄광석 위원은 “문제는 크다고 본다. 구체적 입증이 어려우면 방송을 자제했어야 한다”면서도 “TV조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엄 위원은 “진술이 상당부분 구체적이어서 방송사에서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있다”며 “합리적 의심이 드는 사안에 대해서는 이걸 추적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라고 말했다. 
 
엄 위원은 “광주사태에 불순세력이 개입됐을 지도 모른다는 건 엄청난 폭발성을 가지고 있다”며 “부담감 때문에 여간 용기를 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보도인데, 채널A는 그런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또 “이런 추적활동이 결코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훼손할 의사가 없었다고 소명했고 저도 그렇게 판단했다”며 법정제재 중 가장 낮은 ‘주의’ 의견을 냈다.

   
▲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가 지난 7일 광주지방검찰청에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한 종편출연자와 일베 회원 등 10명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연합뉴스
 
 
권혁부 위원도 비슷한 이유로 ‘주의’ 의견을 냈다. 권 위원은 “제작 의도가 합리적 의심에서 진실을 규명해봐야겠다는 저널리즘에서 비롯됐다는 (채널A의) 소명이 있었고, 집접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한에 침투해서 시민군 행세를 했다는 육성증언을 한 건 처음이기 때문에 이 증언의 진위여부를 가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TV조선하고는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권 위원은 “새로운 증거, 인적 증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증거를 통해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이 어떤 작동을 했는지는 한 번 접근해 볼 기회가 온 것 아닌가”라며 “(채널A는) 직접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성희 위원은 “채널A가 TV조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검증을 하려는 노력을 나름대로 많이 했다는 점”이라면서도 “결과적으로 검증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점을 이유로 TV조선과 마찬가지로 ‘관계자징계 및 경고’ 의견을 냈다. 박만 위원장과 구종상·최찬묵 위원도 같은 이유를 들어 ‘관계자징계 및 경고’ 의견에 합의했다. 
 
심의위원들의 의견이 과징금 3명, 관계자징계 및 경고 4명, 주의 2명 등으로 나눠져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자 박만 위원장은 위원들에게 ‘합의’를 권유했다. ‘과징금’ 의견을 냈던 장낙인 위원이 결국 합의하면서 채널A는 TV조선과 마찬가지로 ‘관계자징계 및 경고’ 조치를 받게 됐다. 
 
한편, 퍼블릭액세스 채널 RTV에서 방송한 <뉴스타파N(3회)>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행정지도인 ‘권고’ 조치를 의결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문제없음’ 의견을 냈으나, 권혁부 위원은 “편향된 시각에서 객관성을 결여한 일방적 주장을 방송했다”며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9명의 위원들은 주의 1명, 권고 5명, 문제없음 3명으로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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