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저널리즘의 위기는 다층적이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관행과 심층 취재 부족은 뉴스의 전문성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프라인에선 광고에 의존하는 수익모델에 위기가 왔다. 온라인에선 조회 수를 올려 돈을 버는 ‘클릭 저널리즘’이 야만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공영방송은 여론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대신 여론을 잠재우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역언론은 고사 직전이다. 서울공화국의 단면이다.

미디어오늘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안적 모델을 찾는 연재를 기획했다. 건강한 저널리즘 없이 사회는 진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월 23일부터 2주간 영국·프랑스·독일 등 해외 언론현장을 찾아 저널리즘이 ‘사양산업’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으며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 공영방송, 온라인 뉴스 유료화에 성공한 탐사보도매체, 지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생존한 지역 언론까지 여러 도전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①] 지역신문의 살 길, 결국 지역에 있다 : 틴틀 미디어그룹 회장 레이 틴틀 경 인터뷰
[저널리즘의 위기, 뉴스의 미래②] 언론의 독립을 원한다면, 독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메디아파르’ 편집국장 에드위 플레넬 인터뷰

국경 넘어선 문화전문채널로 유럽 전역서 호평…국가 간 인식차이도 좁혀

국경 없는 공영방송이 유럽을 유유히 감싸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합작해 1992년 첫 방송이 나간 아르떼(ARTE)가 국가 간 협력 공영방송이란 유례없는 시도로 유럽의 문화전문채널을 지향하며 전 유럽인의 호평을 얻고 있다. 아르떼는 재원의 95%가 프랑스·독일 국민의 시청료에서 나오며, 방송 어디에도 상업광고는 없다. 이들은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는 대신 유럽의 상업방송에서 접할 수 없는 예술·역사 등 수준 높은 문화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월 27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아르떼 프랑스(ARTE FRANCE)를 찾았다. 취재진을 반겨준 건 앙드레 드 마르주리(ANDRE DE MARGERIE) ARTE 프랑스 국제부문 대외협력국장이었다. 그는 첫 인사와 함께 “아르떼는 요즘 2014년 제 1차 세계대전 100년 기획을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가해자인 독일이 이런 껄끄러운 기획에 쉽게 찬성했을까. 제일 먼저 든 의문이었다.

   
프랑스·독일 협력공영방송 아르떼(ARTE). ©정철운 기자
 
앙드레 국장은 “공영방송에서 1·2차 세계대전 아이템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껏 전쟁 아이템을 어떻게 다룰지 많은 논의를 해왔고, 그 결과로 많은 영상을 만들어왔다”며 “세계대전을 방송에서 다루기 원하는 나라는 오히려 독일이다. 독일은 죄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저널리스트들은 공동의 공영방송이란 틀을 활용해 독일 공영방송에서 다룰 수 없는 주제를 좀 더 자유롭게 다루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르떼가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정서적 이질감과 문화적 거리감을 줄여나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르떼의 탄생, EU 차원의 문화협력 결과물= 아르떼의 탄생과정을 살펴보면 아르떼의 현재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아르떼는 1990년 독일의 콜 수상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주도해 탄생한 정치적 결과물이다. 당시는 유럽연합(EU)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던 시기로, EU의 중심 국가였던 프랑스와 독일은 정치·경제 협력에 이어 문화협력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고, 아르떼를 탄생시켰다.

1990년 10월 2일 양국은 정부조약을 통해 아르떼 설립에 합의했고, 1991년 방송사를 만들어 1992년 첫 방송을 내보냈다. 아르떼의 토대는 샤를 드골의 1963년 엘리제조약(프랑스·독일 화해협력)부터 시작됐다. 미테랑 대통령과 콜 수상은 27년 만인 1990년 엘리제조약을 상기해내 아르떼를 탄생시켰다.

앙드레 대외협력국장은 “우리는 프랑스·독일 국민이 어떻게 하면 전쟁 이후 반감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고 TV가 굉장히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TV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TV를 통해 양국 간의 이해를 증진시키자는 아이디어는 처음엔 이상하게 비춰졌다. TV는 통상적으로 자국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르떼가 넘어야 하는 첫 과제였다”고 회상했다.

   
앙드레 드 마르주리 아르떼 프랑스 대외협력국장. ©정철운 기자
 
실제로 국가 간의 합작 공영방송은 유례가 없는 시도였다. 더욱이 불과 반세기 전 전쟁으로 총을 겨누었던 국가 간의 협력 방송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된다. 그럼에도 양국은 방송의 재원을 시청료로 꾸리고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며 유럽문화채널에 과감히 도전했다. 양국을 넘어 EU의 성공을 상징하는 방송이 되어야만 했다.

▷합작공영방송, 아르떼만의 특별한 구조=
때문에 아르떼의 설립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이뤄졌다. 우선 소유구조를 보자. 아르떼는 아르떼 프랑스가 50%, 아르떼 독일이 50%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아르떼 프랑스는 프랑스 텔레비전이 45%, 프랑스 정부가 25%, 라디오 프랑스가 15%, 프랑스 국립자료보관소가 15%를 소유하고 있다. 아르떼 독일의 경우 독일 공영방송인 ARD와 ZDF가 각각 5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양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흔들릴 수 없는 공영의 소유구조를 짜놓은 것이다.

아르떼 자문기구인 프로그램 편성위원회(PROGRAMME ADVISORY COMMITTEE)의 역할도 눈에 띈다. 총 16명인 편성위원회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각각 8명씩 문화계·사회계의 명망가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아르떼의 프로그램을 비평·연구·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결정권자는 아니지만 두 달에 한 번씩 소집해 시청자와 방송사 사이의 교량역할을 하는 일종의 전문 옴부즈맨 집단이다.

아르떼의 제작과정도 눈여겨볼만 하다. 프랑스·독일 아르떼에선 제작을 하고, 본사가 있는 스트라스부르에선 방영을 맡는다. 한 달에 한 번 프로그램 컨퍼런스라는 이름의 회의가 열리는데, 이틀간 양국의 제작진이 토의를 거쳐 차기 편성을 확정하고 제작에 들어간다. 프로그램 편성도 독일 아르떼가 50%, 프랑스 아르떼가 50%를 나눠 배치한다. 이와는 별도로 제작예산을 공동출자해 일 년에 여섯 편의 합작품을 만들고 있다. 앙드레 국장은 “1차 대전 100주년 다큐멘터리의 경우 예산을 같이 꾸렸다”고 전했다.

   
프랑스·독일 협력공영방송 아르떼(ARTE). ©정철운 기자
 
아르떼의 예산은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국회에서 처리한다. 예산은 시청료다. 프랑스의 경우 연간 시청료가 가구당 120유로(약 18만 원)다. 이 중 아르떼에게 배분되는 시청료는 연간 8유로(약 1만 2천원)다. 앙드레 국장은 “원칙상 상업광고는 절대 받을 수 없다. 재원이 더 있으면 좋겠지만 제작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U시민 모두를 포괄하는 문화채널 꿈꾼다=
아르떼가 설정한 스스로의 역할은 명확해보였다. “우리는 유럽의 문화방송국이라는 차별화된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 우리는 이미 전 유럽적인 규모도 갖고 있다. 아르떼만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시청률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라고 말했다. 현재 아르떼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폴란드, 그리스, 스위스, 핀란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유럽 대부분에서 아르떼를 시청할 수 있다.

아르떼의 목표는 독일인에게 프랑스의 문화를 소개하고, 프랑스에게 독일의 문화를 소개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르떼는 경제적·정치적 공동체인 EU 시민들이 서로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동질감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때문에 아르떼의 콘텐츠는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하다.

앙드레 국장은 “아직은 진정한 의미의 유럽화를 이루지 못했다. 유럽 내 국가들과 협력 문제를 개선해 방송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유럽 선진 국가에선 시청이 가능한데 아직 동유럽국가에선 시청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직면한 첫 번째 과제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외에 스페인어와 영어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아르떼와 같은 합작공영방송은 EU라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 탄생 가능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동아시아 정세를 비춰보면 합작 공영방송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아르떼는 우리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한국과 일본 언론인이 협력해 만든 프로그램을 공유한다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남북통일을 위한 여러 교류의 갈래 중 하나로 남한·북한 제작진이 함께 편성과 제작에 참여하는 채널을 만들어 서로에 대한 이질감을 줄여나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뜬구름 잡는 얘기 같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이뤄냈다. (통역=정영옥)

위 특별기획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아르떼의 편성에도 국경은 없다
시청률 압박 없이 실험적이고 심층적인 아이템 다뤄

프랑스의 최대상업방송 TF1은 한 때 공영방송이었다. TF1은 미테랑 정부 때 민영화된 이후 가장 정치편향적인 방송이 됐으며, 미국수사드라마나 오락물 같은 콘텐츠를 대거 편성해 25%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2% 시청률에 불과하지만 공영방송의 틀을 유지하며 수준 높은 콘텐츠로 호평을 얻고 있는 아르떼와는 대조적이다.

프랑스·독일 의회는 아르떼에 TF1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르떼 역시 이를 알고 있다. 아르떼는 소수일지라도 누군가가 찾고 있을 수준 높은 교양물을 만든다. ARTE는 주로 예술·교육·역사·여행 등의 콘텐츠를 다룬다. 때로는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 등장하는 고전 예술을 다루고, 때로는 현대적 감각의 비디오 아트와 길거리 예술을 주제로 삼는다.

프랑스에서 27년째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이지용 프로듀서는 ARTE를 두고 “시청률을 신경 쓰지 않고 3시간짜리 오페라를 풀로 방송할 수 있는 전 세계 유일한 채널”이라고 소개했다. 이지용 프로듀서는 “오페라 표를 살 수 없는 사람들도 관심만 있으면 TV앞에 앉아 오페라를 볼 수 있다. 아르떼는 시청자들이 다양한 문화를 찾고자 하는 노력만 있다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독일 협력공영방송 아르떼(ARTE). ©정철운 기자
 
이는 아르떼의 방송 목표에도 드러나 있다. 베로니크 카이라(VERONIQUE CAYLA) 아르떼 회장은 “아르떼는 유럽의 관점에서 문화의 표준과 탐사보도를 추구하며 대중에게 문화접근권을 주고자 한다. 아르떼는 계속해서 공영방송의 기본에 충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아르떼는 고전부터 현대까지 항상 혁신적이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이 되고자 한다”고 전했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이들의 목표인 셈이다.

아르떼의 아이템은 시청자를 고려해 늘 국제적인 면모를 갖게 된다. 프랑스·독일 뿐 만 아니라 한국·이란·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콘텐츠가 등장한다. 아르떼를 시청하는 EU시민 가운데엔 무슬림도 있고 라티노도 있고 한국인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앙드레 대외협력국장은 “문화다양성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EU가 추구하는 지향점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아르떼에 광고수익이 전혀 없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프로듀서들이 시청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르떼에선 언론인들의 의지에 따라 최근 이슈와 상관없이 유고슬라비아 전쟁 3부작을 다룰 수 있다. 대신 이 사건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심층적으로 전달하려 한다. 아르떼의 강점 중 하나는 이처럼 방송에 국경이 없는 만큼 지정학적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앙드레 국장은 “아르떼 콘텐츠에 가십은 없다. 우리는 매회 프로그램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시청자를 늘리고 싶다면 오락이나 드라마를 하면 되지만 하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아르떼는 시청자와 저널리스트 모두에게 자유의 공간이다. 때문에 다소 난해하거나, 전위적인 작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도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아르떼가 엘리트들만의 소유물이란 지적도 있다. 이를 두고 앙드레 국장은 “시청층이 주로 엘리트라고는 하지만 엘리트만이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집중한다면 방송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2012년 기준 아르떼 연 예산의 63%가 프로그램 제작에 쓰이고 있다. 인건비는 14%에 그치고 있다. 정규 인원은 독일과 프랑스 인력을 합쳐 424명이며, 제작파트에선 독립저널리스트에 의존하는 편이다. 편성비율을 보면 다큐멘터리가 29%로 제일 높다.
정철운 기자 pie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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